아침(전쟁없는세상 피망팀)

 

전쟁없는세상 비폭력프로그램팀에서 제공하는 민주적 조직운영 워크샵에서는 그동안 사회운동을 위한 조직이 비민주적인 이유와 조언들, 비민주적 조직운영에 대한 경험 나누기, 과업중심과 관계중심의 조화, 주류들에 대해 알아보기, 조직 내의 권력을 다양하게 분석해보기,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조직 내에서 갈등 다루기,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의사소통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어왔다. 그 중에서 갈등을 분석하는 양파기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양파기법은 갈등 당사자들이 갈등에 대해 주장하는 것과 그 숨은 의미에 대해 분석하는 기법이다. 갈등은 보통 갈등의 당사자들이 양립할 수 없는 의견의 충돌로 여겨진다. 양파기법은 각 당사자들이 표면적인 입장을 넘어서서 당사자들의 실익(이해관계 interests)과 욕구(needs)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공통기반(common ground)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갈등 상황의 다이내믹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을 시도할 때나 갈등 당사자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준비할 때 조정이나 협상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

 

양파

 

양파의 껍데기에 놓여있는 ‘입장’은 당사자가 모두가 알도록 공적으로 취하고 있는 내용이고 그 안의 ‘실익/관심사’는 표면적으로 원한다고 주장하는 것 혹은 이면의 내용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양파의 한 가운데에 놓인 욕구는 실익의 본질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가 좋고 신뢰도가 높은 안정적인 시기에는 우리의 행동과 전략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기반 해 취해질 수 있는데, 상대방에게 자기의 욕구를 주저 없이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상대방이 쉽게 분석하거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아도 먼저 파악해 낼 수도 있다.

불신이 만연하고 불안정한 시기에는 특히 위계적인 조직에서 본인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의 실익이나 욕구를 숨기고 싶어 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약점이 노출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지배당할 수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본인의 실익이나 욕구를 표현하지 않으면 정보부족의 결과로 인해 불신을 증가시킨다.

갈등과 불안정한 상황에서 취해지는 행동은 욕구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집합적이고 추상적 차원의 실익/관심사에 초점을 두고 이에 기초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실익이 공격을 받게 되면, 기본적 욕구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장’을 취해서 공격을 막아내려 하게 된다.

양파기법은 사람들의 개인적·집단적 행동의 토대가 되는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갈등과 불안정 및 불신의 결과로 쌓인 껍질들을 얼마나 많이 까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도표로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교사들 내에서 업무분장과 관련된 갈등을 다루었던 워크숍을 예로 들어 보겠다. 갈등당사자 A는 연차가 10년 전후의 교사, 갈등당사자 B는 2년 정도 된 신입교사였다. 학교행사를 맡는 업무와 관련하여 A는 이제 젊은 사람이 맡을 때가 되었다는 입장이다. B는 경험 있는 사람이 맡아야한다는 입장이다. 서로의 표면적인 주장에 따르면 서로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양립불가능해보이며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지는 게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뒤의 실익/관심사/이해관계 부분을 살펴보면 A는 늘 비슷한 행사를 해오는 것이 지루하다는 전년도의 평가가 부담스럽고 젊은 교사가 새로운 활기를 넣어주길 바란다. 정보도 빠르고 문서나 동영상편집 능력이 뛰어난 젊은 교사가 해주면 비슷한 행사를 하더라도 폼 나는 보고서를 써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B는 이 행사 이외에도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연차가 있는 선배 교사들의 잡일을 돕느라 바쁜 상태였다. 보고서를 예쁘고 폼 나고 꾸밀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보조 업무를 맡아 와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B는 선배 교사들의 일에서 뒤치다꺼리만 하느라 전체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선배들이 하면 어차피 후배교사들이 도울 수밖에 없으므로 A교사가 맡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A의 욕구는 새로운 기획으로 학교행사를 잘 진행해보고 싶은 것과 비난받는 것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것 그리고 보고서작성이나 부족한 부분에서의 도움과 협조이다. B의 욕구는 기획이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지원 그리고 효율성이다.

A와 B가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좀 더 평등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했다면 서로의 실익과 욕구부분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눌 수 있었겠지만 교사회의의 짧고 전달 위주의 분위기에서 질적인 대화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밝혀진 실익과 욕구 이외에도 회의 분위기와 그 이후의 어색한 상황에서 다른 행사준비에도 불편한 감정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나중에 실익과 욕구를 찾는 과정에서도 긴 시간이 필요했었다.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건들에서의 가벼운 갈등들도 다루어졌었고 조금씩 서로의 입장에서 물러나 실익과 욕구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맡은 업무를 효율적이고 잡음 없이 처리하는 것,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싶은 것, 서로 지원을 주고받는 것 등의 공통지반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고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서로의 서운함과 실망 등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까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 되었고 후에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들도 수월하게 처리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서로 다른 정보와 의견들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등 역시 일상적이고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위계적인 구조의 조직에서는 갈등이 어떤 커다란 문제나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와중에 상처를 입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후의 갈등상황에서도 좀 더 경쟁적이 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이다. 만일 좀 더 평등한 관계라면, 자신의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자유롭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히 표현해도 비난받지 않고 안전하리라는 신뢰가 있는 조직이라면 갈등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다양성과 창조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