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운 (다큐멘터리 감독)
2025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힌드의 목소리〉는 동시대 영화 예술인들의 긴급 행동이자 절규에 가까운 영화이다. 튀니지 여성 영화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2024년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다섯 살 여자아이 힌드 라자브의 사건을 듣자마자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는 그렇게 속전속결로 만들어졌고 이 긴급함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고 목소리이고 전부이다.
가자지구 도심 한복판 도로에서 이스라엘군에 총격받은 차 안, 죽은 친척들의 시체 속에서 다섯 살 아이 힌드는 적신월사에 구조 전화를 건다. 영화는 구조를 요청하는 힌드의 실제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해 적신월사 사무실의 그날을 그리고 있다. 당시 적신월사 직원이 찍은 핸드폰 영상도 그대로 영화에서 사용된다. 핸드폰 영상 속 적신월사 실제 직원들과 매우 닮은 배우들이 구조 요청 녹취 음성과 번갈아 연기하는 영화의 구조는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관객의 호감을 사기 어려운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에서 실제 사건의 목소리와 영상을 직접 사용하면서 지게 되는 위험은 2년이 넘어가는 팔레스타인 참상의 긴급성 앞에서 시도할 수밖에 없는 영화 작법이 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들리는 다섯 살 힌드의 녹취 음성은 처음부터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갈 준비가 되기도 전에 눈물이 차오르고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든다. 힌드의 구조 요청 전화를 받은 적신월사 직원은 8분 거리에 떨어진 힌드에게 구조대를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정’을 거쳐야한다. ‘조정’이란 가자지구를 점령, 통제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구조대를 보낼 수 있는 루트를 보장받는 절차이다. 적십자, 유엔 등 인도주의 국제단체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정부 관료들을 설득해서 안전루트를 보장받는 과정은 정말 어처구니없다. 적신월사 내부 조정자 한 사람이 관료주의 그물망을 타고 올라가며 무수한 전화로 조정이라는 단계를 거쳐 간다. 8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다섯 살 여자아이를 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하루가 다 가도록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힌드의 전화를 받은 주인공과 동료 직원은 분노를 터트리고 영화를 보고있는 내 속도 터질듯 분노가 차오른다. 다시 공격하는 이스라엘군의 총소리와 함께 상황을 전하는 힌드의 목소리 그리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직원들의 눈물겨운 통화가 날카로운 분노가 되어 화면을 뚫고 전해져온다. 마치 힌드의 목소리가 심장과 피부에 하나씩 박히는 것 같은 경험이다. 이쯤되면 영화관은 여기저기 소리 없이 통곡하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로 공명한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적신월사 사람들은 ‘조정’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좌절감과 8분 거리의 아이에게 왜 뛰어갈 수 없는가 하는 무력감으로 하나씩 무너져 간다. 그리고 영화는 배우들 옆에 실제 핸드폰 속 촬영된 영상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게 프로파간다를 위한 극적 장치가 아니고 사실임을 알린다. 이 믿어지지 않는 장면을 실제 촬영된 화면과 교차로 보여주며, ‘이게 말이 돼? 인도주의, 제네바 협약, 아니 최소한의 동정심이 존재하는 거야?’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다섯 살 여자아이가 친척들 시체 사이에서 공포에 질려 총알 세례를 받고있는 걸 뻔히 알고도 구조할 수 없다니? 세계가 인도주의적 원칙을 세우고 국제기구를 만들어 냈던 지난 반세기의 일들은 모두 헛꿈이었나 아득한 생각이 든다.
〈힌드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인종학살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정’이라는 절차를 통해 학살자인 이스라엘군에 민간인 구조를 구걸하는 모습은 팔레스타인의 목숨이 얼마나 이스라엘군에 종속되어 있는지 폭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 고위관료와 국제구조기구는 이 ‘조정’을 마치 일상화한 적법절차처럼 처리하고 있다. 점령, 봉쇄와 학살로 이어지는 통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진행되었는지 이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숨이 이스라엘군에 조정되는 일상이 당연하게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다. 민간인 지역에 폭격하거나 아이가 탄 차에 총을 쏘아대는 일은 극악한 반인륜 범죄이다. 영화 속 장면처럼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담은 수 많은 영상이 SNS에 범람해도 소용없다. 아이, 어른 구별 없이 죽이고, 국제기구 종사자이건 기자이건 상관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스라엘군 앞에서는 학살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반세기가 흘러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벌어지는 학살의 참상이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식이 새롭게 쓰여도 미디어가 전하는 전쟁 뉴스는 이번 몇 번째 중동 전쟁인가를 꼽으며 국제 정치 역학관계를 분석하고 전쟁을 일상으로 전하고 있다. 영화의 조정 담당자는 팔레스타인인의 종속성을 드러내는 인물인데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팔레스타인의 급진 강경 무장 정파 하마스, 팔레스타인 ‘화해위원회’를 구성했던 자치정부 모두 이스라엘군의 인종학살로 조종되는 인종적 식민주의의 종속변수일 뿐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조정’이 이루어지고 구조대를 보내기로 한 후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이상 없어 보인다. 〈힌드의 목소리〉가 전하는 긴급성은 죽어가는 아이들의 부모,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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