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인터뷰 때 정희완 기자가 찍은 사진)
나단
2020년 10월 13일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대체복무 신청
2021년 7월 16일 대체역 심사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나단의 대체복무 신청 기각 결정
2021년 9월 6일 입영일에 병무청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2021년 10월 25일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결과에 대해 행정소송 시작
2024년 10월 28일 행정소송, 대법원에서 나단의 상고 기각
2025년 2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 1심 재판부 실형 1년 6개월 선고
2026년 1월 20일 서울북부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에서 나단의 항소 기각, 법정 구속(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
*나단은 현재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병역거부자 나단의 평화의 길에 함께 해주세요.
면회 신청: 최준환(010-3062-0255)에게 연락한 뒤 접견 날짜를 조율해주세요. 면회 횟수가 제약이 있기 때문에 꼭 연락하고 조율한 뒤 가셔야 합니다.
영치금: 283-185356-18-058 우리은행 나단,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가상계좌입니다. 이 계좌로 이체하면 나단의 영치금으로 송금됩니다. 4시부터 5시30분 사이에는 입금이 되지 않습니다.
편지: 서울 송파구 송파우체국 사서함 177호(우편번호 05661) 1233 나단, 이 주소로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책이나 문서는 반입이 가능하지만 기타 물품 들은 반입 금지 항목을 찾아본 뒤 보내셔야 합니다.
나단의 병역거부 선언 소견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저는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어떤 모습으로 보여져야되는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대체역 심사를 위해 대전을 방문할 때도 매번, 같은 고민을 해야 했었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병역거부자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사회주의자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조금이라도 더 선한 모습으로 비춰져야 되는 건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비폭력적으로 보여야 되는 건지, 그렇게 해야 된다면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기도 힘든데, 마음속의 양심을 제대로 꺼내어 보는 일은 그보다도 훨씬 더 고된 일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행동이나, 옷가지가 저를 어떻게 보이게 할지 막상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가 설명하는 양심에 빗대어 가늠할 때, 그것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충분치 못했던 것인지, 내놓은 모양새가 좋지 못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양심을 제대로 내놓는 것이 결국에는 불가능한 것이지 모르겠지만, 돌고 돌아 오늘의 기자회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제 양심을 판단한 후에, 기각, 즉 저를 대체역에서 떨어트렸습니다. 보내주신 결정문을 여러 번 읽었음에도, 저는 기각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내 양심은 대체역을 하기에 충분한 양심이 아니라는 것인가, 혹은 사실은 군대에 갈 수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비록 심사위원회의 판단은 저를 대체역에서 떨어트렸지만, 저는 오늘 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 양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이려고 합니다. 판단은 잘못되었습니다. 입대해야하는 날인 오늘, 저는 입대를, 병역을 거부합니다. 이제 이어지는 소송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저는 꼼짝 없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양심은 감옥에 가는 것으로 비로소 증명이 되겠지만,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교도소가 개인의 양심을 증명해주는 기관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스무 살에 신체검사를 받고, 지금 서른두 살이 되어 병역거부 선언을 하기까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감옥에 갈 것은 두려우나,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해방감이 결정의 어려움을 덜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왜 군대를 가지 않을 것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겠지만, 사실 군대를 가기에 마땅한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가지 못할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청춘들이 군대라는 곳의 비민주적인 운영, 폐쇄적인 제도와 문화, 일일이 말하기도 힘든 비리와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다치고, 심지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대체역 심사를 받는 동안에도 두 명의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 모두 부사관으로, 군인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고 싶어 지원한 일임에도 목숨을 끊을 만큼 힘든데, 하물며 끌려가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폐쇄적인 공간이 주는 보잘 것 없는 권력에 취해 서로를 괴롭히는 일들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일까요? 또 그렇게 피해 받은 인생, 갖게 돼버린 상처는 누가 보상해주나요? 저 역시도 군대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고, 어쩌면 저의 병역거부도 사상과 신념으로 포장된 두려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가야되는 곳으로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당연히 가기 싫은 곳, 할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은 곳. 이 간극에 대한 설명은 끌려가는 이들이 아닌, 끌고 가는 자들이 져야 할 의무입니다. 군대라는 집단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국가를 지키는 일은 국가를 향한 충성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배워왔습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제 진술서는 이 역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는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제게는 없습니다. 저에게는 국방의 의무와 애국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 병역거부와 대체역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지키는 것이 주어진 의무라면, 그 안에서 국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제 자유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제 자유를 그나마 인정하며 의무를 버리지 않도록 해준 제도가 대체역이었지만, 저는 그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은 나라라면 민주주의의 본질이 의무보다는 자유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내기보다는,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넬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나라는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대체역이라는 제도도 도입하고, 여러 측면에서 민주적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의 변화가 온전한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지배와 피지배가 명확한 계급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계급은 타인에게 빌붙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할 때 생겨납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에게 빌붙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숨이 자본에게 달렸는데 민주적인 결정이 가능하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겠지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계급은 온존합니다. 계급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국가는 오직 지배계급을 위한 통치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한 번도 지배계급이었던 적이 없는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추상의 존재는 우리에게 공인된 폭력, 즉 공권력이라는 구체적 존재로 다가옵니다. 공권력은 평소에는 스스로의 성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급의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만큼은 본모습에 충실합니다. 일제로부터 막 해방되어 아직 국가의 틀을 갖추기도 전에 이 나라 공권력은, 제주도에서 자국민을 죽이면서까지 친일 잔존 세력과 자본가, 지주 계급의 이익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박정희는 무려 18년간이나 온갖 부정한 방법과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핍박했고, 그 모든 것이 이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자본의 거름이 되기 위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야했습니다. 광주를 틀어막고 숱한 사람을 죽여 가며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전두환의 속내 역시 자신과 자본의 공동의 이익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독재정권만의 만행이라고만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여기는 시기에도 이런 이해관계는 명확히 드러납니다. 자본이 스스로 몰락을 자처한 IMF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재원을 그들을 위해 투입했고, 정리해고법을 통과시켜 사태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시체를 디디어 쓰러지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용산참사는 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했던 자본가를 위한 공권력의 과잉 충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재벌총수들은 죄를 면제받고 감옥에서 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나라가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배받는 자로서의 제 스스로의 위치를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지배는 결코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는, 그들이 가진 총과 칼은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다면 언제나 국민이라 불리는 이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돌아서왔습니다. 제가 이런 사회, 이런 국가의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스스로를 파괴시키며, 스스로를 점점 더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군대를, 병역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또 거부해야만 합니다. 비록 저는 ‘위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고, 제가 무죄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증명되어야하는 것은, 정말로 국가라는 것이 내 삶을 바쳐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저 지배하는 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곧 ‘죄’인 사회에서는 제가 ‘유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 당당히 ‘무죄’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몸으로 저항하며 살려합니다. 이 저항의 끝에 반드시 자유와 평등의 사회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21년 9월 6일 나단
참고자료
- 2021.9.6.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보도자료
- 2021.10.25. 대체역 심사위원회 기각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 제기 보도자료
- 2023.7.2. [경향신문 인터뷰] “병역거부는 단순 공식에 따라 도출된 게 아니다”
- 2023.8.18 . 당신들은 나를 감옥에 가둘 수는 있어도 나의 양심을 기각할 수는 업습니다 – 병역거부 재판을 앞두고
- 2024.10.28. [성명]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둘 순 있어도 양심을 가둘 순 없다 – 병역거부자 나단 상고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에 부쳐
- 2025.1.21. [성명] 병역거부자를 가두는 나라에 양심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 병역거부자 나단의 항소심 유죄 선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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