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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신 군인권센터,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담당 :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010-2878-0851, peace@withoutwar.org)
제    목 [보도자료] 양심적 병역거부자 나단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날    짜 2021. 9. 6 (총 2 쪽)

보 도 자 료

양심적 병역거부자 나단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일시·장소 : 2021. 09. 06. (월) 11:00, 서울지방병무청 정문 앞

 

 

취지와 목적 

 

  • 오는 2021년 9월 6일(월) 오전 11시 양심적 병역거부자 나단은 입영일을 맞이하여 군대에 입영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 병역거부자 나단은 2020년 10월 13일 병역거부자로서 대체복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대체역 편입 신청을 했습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2021년 7월 16일(금) 전원회의에서 나단의 신념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체복무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 대체역 심사가 진행되는 중에 나단은 2021년 9월 6일까지 신병훈련소에 입소하라는 입영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단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입영일에 입소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합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작년 6월 29일 창립 이후로 지금(2021년 9월 3일)까지 총 2,261명의 대체역 신청을 받았고 그 가운데 1,669명의 심사를 완료했습니다. 모두 1,667명이 인용 결정이 나왔고, 나단을 포함해서 두 명이 기각 결정이 나왔습니다. 인용된 1,667명 가운데 1,661명이 여호와의 증인이고 6명은 여호와의증인 신자가 아닙니다.
  • 심사위원회에서 결정서를 통해 밝힌 기각 사유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심사위원회는 “ 신청인은 교정시설에 복무하는 것은 국가폭력에 직접 가담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진술하였으나 이와 같은 진술만으로는 국가 폭력기구라는 점에서 동일한 군대는 거부하고 교정시설은 받아들이는 모순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대체복무제도가 교정시설에만 국한된 것은 병역거부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시민사회에서는 대체복무제가 교정시설에 국한되지 말고 더 넓은 사회복지와 재난 등의 영역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대체복무를 교정시설에만 국한해놓고 복무영역에 대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교정시설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기각의 사유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신청인은 대체역 복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표현할 수 없다면 중간에 대체역 복무를 그만둘 수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는 것도 기각의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당연하게도 군복무와 마찬가지로 대체역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양심에 어긋나는 불합리를 감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양심의 일관성에 부합할 것입니다.

-“군복무 거부로 인한 형사처벌을 감수하기보다는 망명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것도 기각의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다양한 병역거부의 방법을 두고 고민하며, 망명은 다양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형사처벌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것만이 병역거부의 방법이라고 하면 이는 양심을 지극히 교조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심사위원회는 신청인의 양심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 뿐이지, 양심의 내용이나 양심이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적으로 폭력에 대한 실존적이고 추상적이고 복잡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청인의 발언 일부만을 맥락을 삭제하고 문제 삼아 내린 기각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심사위원회의 심사 과정에 양심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 인권 침해가 있었습니다. 일부 심사위원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신청인에게 질문하였는데, 이는 심사위원과 신청인의 관계가 위계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침해입니다. 또한 신청인의 이야기를 꼬투리 잡아서 비속어를 사용하여 비아냥 대는 행동 또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 침해입니다.
  • 특히 종교적 사유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장시간 동안 양심의 내용을 공격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평화주의를 내세운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에게만 이런 심사를 하는 것은 차별적인 조치입니다.
  • 이후 나단은 심사위원회의 기각 결정에 불복하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행정소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심사과정에서 일어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계획입니다.

 

기자회견 순서

  • 사회 : 황수영(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 발언 
    •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나단 친구): 지지 및 연대 발언
    • 시우(병역거부자, 무죄 선고 후 대체역 편입): 지지 및 연대 발언
    • 이용석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앞으로의 계획
    • 나단 (병역거부자): 병역거부 소견서 발표 
  • 문의 :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010-2878-0851, peace@withoutwa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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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임1.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 지지발언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나단 친구)

 

안녕하세요, 나단의 친구로 인사드립니다.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김형남입니다.

나단을 처음 만난 것이 2009년이니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인데, 투쟁의 현장에서 자주 만나곤 했었습니다. 학내 청소 노동자, 경비 노동자 투쟁에서, 반값등록금 투쟁에서, 그리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투쟁에서 진지하게 분노하던 그를 기억합니다. 때론 함께하는 이들과 격한 토론과 논쟁도 망설이지 않았던 모습에서, 특이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하곤 했었습니다.

저는 그런 그의 활동이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때론 논쟁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마지막 논쟁은 학교에서 제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로 기억합니다. 선거의 방향성에 대해 토론하던 나단은 결국 저를 도와주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저는 그 선거에서 낙선했었고요. 그렇다고 나단을 미워하거나, 나단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는 길도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리다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우리 사회는 어떤 생각은 맞고, 어떤 생각은 틀렸는가를 따지고 구분 짓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취지의 법과 제도들이 온존하고 있끼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2018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병역거부를 형사처벌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결정한 일은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는 한 걸음의 진전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습니다. 평소 병역거부의 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있던 이들도, 대체역 심사를 받으러 가면 왠지 떨리고, 긴장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수십명의 위원들이 둘러 앉은 자리에서 나홀로 양심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심사장에서 진술하는 말 몇 마디와 위원회에 제출한 종이 서류 몇 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양심이고, 신념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론 편견에 사로잡힌 황당한 질문도 견뎌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양심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대체역 심사 제도의 한계점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언젠가 이를 두고 더 나은 제도를 모색하는 싸움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오늘 제 친구 나단이 시작합니다. 오랜 싸움을 시작하려는 나단을 선뜻 응원할 수만은 없습니다. 소송에 승소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수감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감옥에 갈 것이 자명한 싸움을 하는 친구를 응원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저는 나단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기로 했습니다. 승소하지 못해 감옥에 갈 지언정,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양심과 신념의 곁에 설 것입니다.

싸움의 시작과 동시에 나단의 양심이 견실하고 깊지 않다고 함부로 재단한 대체역심사위원회의 결정은 오류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의 싸움이 그의 삶을, 그리고 우리 함께 사는 세상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 붙임2.  병역거부자 시우 지지 발언 

시우(병역거부자, 무죄 선고 후 대체역 편입)

 

안녕하세요, 월요일 오전 이른 시간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단 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발언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오늘 기자회견을 하는 서울지방병무청은 제가 10여 년 전에 신체검사를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신체검사를 받고 나와서 ‘다시 오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던 기억이 여전한데, 10년 후에 동료 병역거부자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변화가 얼마나 더디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 경험을 잠시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늘 나단 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2017년 병역거부를 결심했고, 그 이후로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재판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얼마 후 심사위원회에서는 대체역 편입을 결정을 알려왔습니다. 제게 보내온 결정문은 다소 건조하고 담백한 어조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근거해서” 대체역 편입을 결정했음을 밝혔습니다.

‘병역거부를 선택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라는 이 한 마디를 듣기까지, ‘대체복무를 희망하는 신청인은 대체역으로 편입됐습니다’라는 이 한 마디를 듣기까지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싸워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2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3만 년, 4만 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전쟁과 지배에 저항하는 일이 왜 지금 당장 필요한지 외쳐왔습니다. 그 기나긴 노력 끝에 새로운 제도가 드디어 도입되었고,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 제도가 조금씩 더 의미있는 변화를 약속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또 한 명의 동료 병역거부자가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내하고 어려운 선택을 내린 순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심 재판을 받던 중 한 판사님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피고인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사실은 잘 알겠지만, 단지 군대에 가기 싫다는 게 아니라 정말 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달라.’ 답답함을 토로하는 판사님의 질문에 저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재판에서 제가 왜 군인이 될 수 없는지 셀 수 없이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판사님은 ‘피고인이 주장하는 이유로는 불충분하다’ ‘아직 부족하다’ ‘여전히 이해가 어렵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 판사님은 저를 절망시킨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을 기억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 군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는 것, 군사훈련을 거부한다는 것,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이른바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고 존재가치를 실현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병역거부자는 언제나 수많은 질문을 마주하곤 합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군대가 힘든 건 모두 매한가지인데도 그저 가기 싫은 것을 그럴싸할 말로 포장한 건 아닌지,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결정을 하고도 안 바뀐 사회가 본인의 결정으로 달라질 거라고 믿는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언제 끝날지도,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줄지도 모름에도 불확실한 삶의 시간을 감수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양심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묻고 다시 질문하고 또 다시 고민하고는 합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집요하게 던지는 사람은 병역거부자 본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솔하기로 결단하는 과정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말했던 “깊고 확고하고 진실한 양심”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런 속상함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누군가가 삶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이른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인지 아닌지 평가하고 판단하고 측정하는 방식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결정을 존중하는 동료 시민이 아니라 그의 혐의를 추궁하고 입증하려는 수사관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다 나은 선택지는 정말 없는 것일까요.

제가 병역거부자를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만났던 병역거부자 가운데 제게 병역거부를 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고민이 어떤 결에 맞닿아있는지 살폈고, 재판과정과 수감생활이 예상보다 어려울 수 있으니 많이 지치지 않도록 좋은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란고 조언했을 뿐입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그게 참 이상해 보였습니다. ‘좋은 선택을 했다’ ‘의미있는 결정이다’ ‘정말 잘한 일이다’ 이렇게 한두 마디 건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의아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비슷한 시기에 병역거부를 했던 이들이 어쩌면 제가 가늠할 수 없는 힘든 여정을 거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저 역시 누군가가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할 때 ‘뜻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개인적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방법을 넘어서 이 비극적이고 부정의한 일을 하루라도, 아니 일초라도 빨리 끝낼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나서야 한다고 다시 마음먹게 됐습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는 시기에 우리는 불안정한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불확실한 시간을 견딘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지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험난한 시기에도, 더 불안정하고 더 불투명하고 더 불확실한 삶이 예견되는 상황에도, 양심과 신념에 따라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러한 선택을 내린 나단 님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단 님에게 ‘기각’이라는 말보다 더 나은 답변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붙임3. 병역거부자 나단 병역거부 선언 소견서 

병역거부자 나단 병역거부 선언 소견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저는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어떤 모습으로 보여져야되는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대체역 심사를 위해 대전을 방문할 때도 매번, 같은 고민을 해야 했었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병역거부자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사회주의자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조금이라도 더 선한 모습으로 비춰져야 되는 건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비폭력적으로 보여야 되는 건지, 그렇게 해야 된다면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기도 힘든데, 마음속의 양심을 제대로 꺼내어 보는 일은 그보다도 훨씬 더 고된 일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행동이나, 옷가지가 저를 어떻게 보이게 할지 막상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가 설명하는 양심에 빗대어 가늠할 때, 그것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충분치 못했던 것인지, 내놓은 모양새가 좋지 못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양심을 제대로 내놓는 것이 결국에는 불가능한 것이지 모르겠지만, 돌고 돌아 오늘의 기자회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제 양심을 판단한 후에, 기각, 즉 저를 대체역에서 떨어트렸습니다. 보내주신 결정문을 여러 번 읽었음에도, 저는 기각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내 양심은 대체역을 하기에 충분한 양심이 아니라는 것인가, 혹은 사실은 군대에 갈 수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비록 심사위원회의 판단은 저를 대체역에서 떨어트렸지만, 저는 오늘 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 양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이려고 합니다. 판단은 잘못되었습니다. 입대해야하는 날인 오늘, 저는 입대를, 병역을 거부합니다. 이제 이어지는 소송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저는 꼼짝 없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양심은 감옥에 가는 것으로 비로소 증명이 되겠지만,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교도소가 개인의 양심을 증명해주는 기관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스무 살에 신체검사를 받고, 지금 서른두 살이 되어 병역거부 선언을 하기까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결코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감옥에 갈 것은 두려우나,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해방감이 결정의 어려움을 덜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왜 군대를 가지 않을 것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겠지만, 사실 군대를 가기에 마땅한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가지 못할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청춘들이 군대라는 곳의 비민주적인 운영, 폐쇄적인 제도와 문화, 일일이 말하기도 힘든 비리와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다치고, 심지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대체역 심사를 받는 동안에도 두 명의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 모두 부사관으로, 군인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고 싶어 지원한 일임에도 목숨을 끊을 만큼 힘든데, 하물며 끌려가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폐쇄적인 공간이 주는 보잘 것 없는 권력에 취해 서로를 괴롭히는 일들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일까요? 또 그렇게 피해 받은 인생, 갖게 돼버린 상처는 누가 보상해주나요? 저 역시도 군대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고, 어쩌면 저의 병역거부도 사상과 신념으로 포장된 두려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가야되는 곳으로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당연히 가기 싫은 곳, 할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은 곳. 이 간극에 대한 설명은 끌려가는 이들이 아닌, 끌고 가는 자들이 져야 할 의무입니다.

군대라는 집단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국가를 지키는 일은 국가를 향한 충성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배워왔습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제 진술서는 이 역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는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제게는 없습니다. 저에게는 국방의 의무와 애국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 병역거부와 대체역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지키는 것이 주어진 의무라면, 그 안에서 국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제 자유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제 자유를 그나마 인정하며 의무를 버리지 않도록 해준 제도가 대체역이었지만, 저는 그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은 나라라면 민주주의의 본질이 의무보다는 자유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내기보다는,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넬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나라는 비록 충분하진 않지만 대체역이라는 제도도 도입하고, 여러 측면에서 민주적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의 변화가 온전한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지배와 피지배가 명확한 계급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계급은 타인에게 빌붙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할 때 생겨납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에게 빌붙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숨이 자본에게 달렸는데 민주적인 결정이 가능하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겠지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계급은 온존합니다. 계급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국가는 오직 지배계급을 위한 통치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한 번도 지배계급이었던 적이 없는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추상의 존재는 우리에게 공인된 폭력, 즉 공권력이라는 구체적 존재로 다가옵니다. 공권력은 평소에는 스스로의 성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급의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만큼은 본모습에 충실합니다. 일제로부터 막 해방되어 아직 국가의 틀을 갖추기도 전에 이 나라 공권력은, 제주도에서 자국민을 죽이면서까지 친일 잔존 세력과 자본가, 지주 계급의 이익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박정희는 무려 18년간이나 온갖 부정한 방법과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핍박했고, 그 모든 것이 이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자본의 거름이 되기 위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야했습니다. 광주를 틀어막고 숱한 사람을 죽여 가며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전두환의 속내 역시 자신과 자본의 공동의 이익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독재정권만의 만행이라고만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여기는 시기에도 이런 이해관계는 명확히 드러납니다. 자본이 스스로 몰락을 자처한 IMF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재원을 그들을 위해 투입했고, 정리해고법을 통과시켜 사태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시체를 디디어 쓰러지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용산참사는 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했던 자본가를 위한 공권력의 과잉 충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재벌총수들은 죄를 면제받고 감옥에서 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나라가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배받는 자로서의 제 스스로의 위치를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지배는 결코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는, 그들이 가진 총과 칼은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다면 언제나 국민이라 불리는 이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돌아서왔습니다. 제가 이런 사회, 이런 국가의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스스로를 파괴시키며, 스스로를 점점 더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군대를, 병역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또 거부해야만 합니다. 비록 저는 ‘위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고, 제가 무죄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증명되어야하는 것은, 정말로 국가라는 것이 내 삶을 바쳐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저 지배하는 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곧 ‘죄’인 사회에서는 제가 ‘유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 당당히 ‘무죄’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몸으로 저항하며 살려합니다. 이 저항의 끝에 반드시 자유와 평등의 사회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21년 9월 6일 나단 

 

▣ 붙임4. 대체역심사위원회 결정문

대체역심사위원회+결정문_나단_축약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