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

 

1인 가구 활동가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내 또래 활동가들이 다들(아닌가?) 혼자 살길래, 나도 한 번 1인 가구로 살아보기에 도전장을 내밀어보았다. 결과는, 2년 만에 접기로 했다. 활동가 월급으로는 혼자 살기가 여간 팍팍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쉐어하우스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쉐어하우스에 살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누구랑,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애인과의 동거는 (당분간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구한 모르는 사람과 공간만 공유하는 것은 영 마음이 가지 않고, 그렇다고 같이 살자고 제안할 친구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고민을 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동거인 공개모집’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내 얼굴을 걸고, 직접 쓴 프로필을 공개하며, 나의 관계망에서 알음알음 뻗어나가는 형식으로 하우스메이트를 구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내 SNS의 비공개 모드를 풀고, 나의 얼굴을 배경으로 하는 웹 포스터 이미지 하나를 간단하게 편집하여 게시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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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린 공개인 동거모집 홍보 이미지

 

“동거인 공개모집. 하우스메이트를 찾습니다.

2026년 7-8월 경부터 1년 이상 동거하실 분을 구합니다. 각자의 침실 빼고는 모든 공간을 공유합니다.
손님, 친구, 애인 초대에 관대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히. 저 그 정도 교양은 있습니다.) 젠더혼숙 가능합니다. 트랜스젠더 환영합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주세요.

집주인 프로필
(구)녹색정치활동가. 비건, 제로웨이스트 감수성 있음
(구)영화제노동자. 문화예술인의 고초 알고 있음
(현)성소수자인권활동가, 청소년 상담사. 웬만하면 님을 이해할 수 있음”

 

2026년 5월 26일 오후 3시에 올린 이 게시글은 하루 만에 2,400여명에게 공유가 되었고, 약 87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3명의 지인에게 연락이 왔고, 일면식도 없는 81명에게 DM이 왔으며, 두 통의 메일이 왔다. 자신의 친구를 추천하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연락이 전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나에게 연락을 취한 80여 명의 사람 중 내가 실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게시글이 알고리즘에 떴다며 연락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거인 공개모집 콘텐츠가 하루 만에 알고리즘에 뜨는 80만 명의 사람들. 서울에서 같이 살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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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명의 알고리즘에 닿을 수 있도록, 나의 동거인 공개모집을 널리 공유해준 친구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런 연락도 왔다.

“제가 제일 안전해요. 저 게이예요. 술무살(술을 좋아하는 스무 살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입니다!”

죄송하지만 거절했다.

몇몇 지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입주하는 제안을 했다.

“저희 쉐어하우스에 들어오시는 건 어때요?”

이미 꾸려진 집에 들어가기에는 내 소유의 가구가 너무 많아서, 아쉽지만 비어 있는 집에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 외, 살뜰하게 보내주신 자기소개 메시지를 상호 동의 하에 공유하여 비건지향을 하는 두 분을 매칭해드리기도 했다.

당초에는 2인이 사는 쉐어하우스를 구상했지만, 이렇게 같이 살자는 사람이 많으니(?)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식구를 꾸리고 더 좋은 컨디션의 쓰리룸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두 명의 공채 하우스메이트가 탄생! 초록색을 좋아하는 세 명의 90년대생 여자들이 한 집에 같이 살기로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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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 활용한 질문지

 

세 명이 ‘상견례’를 하는 첫 만남의 날, 막연히 인사만 하기에는 아쉬워 작은 활동지를 준비해 갔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인가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공동 주거를 하는 것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명한 여자들은 질문의 의중을 파악한다. 함께 살 집에 관한 상을 잡기 위해 준비한 질문들이었고, 예비 하우스메이트들은 그것을 금세 알아챘다. 우리는 곧바로 반지하는 가지 않기로, 역세권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집의 컨디션(크기 등)을 조금 더 신경쓰기로, 환기가 잘 되는 집으로 가기로 합의를 했다.

함께 집을 보러 다니며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세 개의 방 크기가 민주적인 집이다. 쓰리룸의 집들은 대부분 부부와 아이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을 위해 준비된 경우가 많기에, 소위 ‘안방’ ‘아이방’ ‘옷방’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방의 크기가 제각각이다. ‘안방’이 제일 크다. 그런데 우리는 세 개의 방 모두 비슷한 크기를 갖춘, 세 곳 모두 각자의 침대와 책상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민주적인 방을 가진 집을 찾아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은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보증금도 월세도 준비가 된 우리에게 지나친 질문들이 쏟아졌다.

“세 분이 무슨 관계입니까?”

순수한 M은 셋이 사귀는 폴리아모리 관계냐고 묻는 것으로 오해를 했다고 한다. 그럴리가요.

“한 명이 결혼해 버리면 어떡합니까. 집주인은 오랫동안 살 사람들을 구합니다.”

결혼이요? 뭐, 할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긴 한데요. 이건 뭐 커밍아웃을 할 수도 없고..

“집주인은 단출한 가족이 입주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너무 깊은 질문은 되돌려드리지 않기로 했다..

전략을 짰다. 계약서를 쓰던 날, 우리 세 명은 타투를 가리기 위해 긴 팔 셔츠를 ‘조신하게’ 입고 모였다. 여자 세 명이 살면 구성원이 자주 바뀌어 이사가 잦은 탓에 집이 상할 것 같다는 집주인의 걱정어린 말에, J와 내가 공동계약을 하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적당한 농담과 너스레로 “여자 세 명도 한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설득하고, 결국 성공하여 도장을 찍었다.

뒤늦게 알게된 것이지만, 공인중개사가 처음 집을 보러 간 날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우리를 보고 혼란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TPO(시간, 장소, 상황)를 맞출 줄 아는 페미니스트들.. 처세술이 뛰어난 페미니스트들. 현명한 여자들은 기발하게 가면을 쓸 줄 안다.

이삿날이 코앞이다. 주변에 수소문해 여성 에어컨 설치기사를 찾고, 여성 입주청소 업체에 견적을 봤다. 세 명이 역할을 나누어 위아래층 이웃들에게 돌릴 작은 쿠키상자를 주문하고, 이삿날 배달시켜 먹을 점심식사 메뉴를 선정하고, 용달 기사님께 드릴 음료를 누가 사올지를 분담했다.

J가 말했다. “혼자 했어야 할 일들을 셋이 하게 된 것을 감사일기에 적을게요…” 같은 마음이다. 이사만 생각하면 시름시름 앓던 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힘이 절로 든다. 함께 살면서 좌충우돌하며 맞춰나갈 것들이 많겠지만, 믿음직스러운 여자들과 살림을 해나갈 것을 생각하니 든든하다. 이사를 하고 나면 함께 오이로 만든 요리들을 먹기로 했다. 무더운 여름이 기대되는 건 참으로 간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