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 (평화활동가)

 

암스테르담은 6월 중순인데도 제법 쌀쌀했다. 반소매를 입어 춥다는 불평을 할 새도 없이, 높고 폭이 좁은 형태의 유럽풍 건물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채 걸었다. 네덜란드답게 건물과 건물 사이 곳곳에는 운하가 있었고, 유속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운하에 거치된 관광용 보트를 구경하다가 한 건물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걸린 것을 보았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들어가 볼 순 없나? 궁금한 마음에 건물 주변을 맴돌았다.

 

집회, 제 여행 중 로망입니다만

알고 보니,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거주하는 곳에 깃발이나 포스터를 걸어 자신의 지향을 드러내는 게 흔한 것 같았다. 유럽에 처음 간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등 네덜란드 도시를 다니다 보니 창문에 걸린 무지개 깃발, 부착된 PEACE NOW 피켓과 팔레스타인 연대 스티커 등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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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집회에 참여하는 게 내 로망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니까. 일단 집회에 대한 열망은 잠시 내려둔 채 미술관을 둘러보고 맛있는 맥주를 마셨다. 미술관 주변에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누워 쉬거나,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나부끼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있었다. 누가 1인 시위라도 하는 걸까? 싶어 걸음이 빨라졌다. 광장 인근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두고 한 시민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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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고 싶었는데, 하필 쿠피예 무늬 손수건은 맡겨둔 짐에 있고, 영어를 잘 못하는 편이라 입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넓은 광장 주변을 맴돌며 무슨 말을 건네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용기를 냈다. 그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집회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붙였다. 그는 자신을 대니얼이라고 소개하며 매주 월,화,수 정오에 이곳 광장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진행한다고 했다. 내가 참여할 만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나 행동이 있는지 물어보니 그는 주요 광장과 행동들을 알려줬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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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이 소개한 대로 침묵시위가 진행되는 암스테르담에 갔다. 개구쟁이 동상 앞에는 이미 열 명 안팎의 참여자들이 피켓을 들고 모여있었다. 대체로 중장년층의 시민들이었다. 활동가로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참여자들과 함께 드시라고 한국에서 가져온 청포도 사탕을 건넸다. 활동가는 정말 기뻐하며 “직접 참여자들에게 나눠주시는 건 어때요?”제안했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한다, 한국에 사탕을 맛 보시라 같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사탕을 나눠주자 다들 반기는 기색이었다. 한국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론은 어떤지 등 질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탕 먹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릴 즈음 활동가가 행진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어디로 행진하는 건지, 시위 장소에 경찰은 원래 안 오는지, 신고를 하고 진행하는 건지 등 여러 궁금증이 생겨났지만 우선 접어두고 움직였다. 참여자들은 익숙한 듯 피켓을 들고 장소 가운데에 있는 동상을 기점으로 둥그렇게 돌기 시작했다. 휠체어에 탄 참여자는 행렬 옆에 멈춰 서서 피켓을 높이 들어 올리고, 걸음이 느린 노인 참여자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함께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팔레스타인과 가자를 알리기 위해 말없이 묵묵히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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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한 행진 중 가장 조용하고 조촐했지만 힘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세대도 언어도 달랐지만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했기 때문인지 그 시간이 어색하지 않았다. 침묵시위 중 서로에게 전하는 단단한 눈빛과 옅은 미소에서 응원의 마음이 느껴졌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눈빛과 말 한마디로 서로의 안녕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빌어줄 수 있는 사이라니. 마음 한 구석이 충만해졌다.

 

쉼, 연결되고 감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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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 간 사진을 보여주니 한 친구가 “여행 간 거 맞아? 일하러 간 거 아니고?”라며 나를 놀려댔다. 그저 웃어 넘겼지만 아무렴 어떤가. 누가 뭐래도 내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게 쉼인 걸.

스스로가 유난스럽게 팔레스타인을 말하는 한 사람으로 느껴져 작아질 때. 관심 없는 이들을 비아냥대고 싶어질 때. 행동하지 못해 답답함과 미안함을 느낄 때. 어두운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며 나를 꿈속에서조차 책망하게 될 때. 광장에서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팔레스타인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사람으로 내가 그들과 연결됐던 감각을 떠올려야지.

네덜란드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 달, 이제 8월이 왔다.

쿠피예 무늬 손수건을 들고 오랜만에 팔레스타인 집회에 가보고 싶어졌다.

 

◎ 네덜란드 팔레스타인 집회가 궁금하다면
네덜란드&벨기에 팔레스타인 집회 정보 플랫폼 Plant an Olive Tree in Palestine
암스테르담 담 광장에서 진행되는 리딩 비질 @readingvigilpalestine / 아카이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