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황해문화》 2026년 가을호(통권 132호)에 실린 글이며, 황해문화의 허락을 받아 전없세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오리 (전쟁없는세상)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22시 23분, 대통령 윤석열은 TV 생방송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직후 이뤄진 계엄 선포 이후 45년 만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456일간 지속된 1979년과 다르게 이번에는 중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되었음에도 친위쿠데타 시도는 6시간 만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이것을 시민의 저항과 더불어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이 맞물린 결과라고 결정문에 판시하였다.
전쟁없는세상도 그 밤 ‘계엄령을 거부하고,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고, 잘못된 권력 행사에 불복종하자’라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는데 아마도 군대의 ‘불복종’이 그날만큼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날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바이럴이 된 몇몇 군인들의 모습과 달리, 군 지휘부는 현장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통령의 불법적 명령에 즉각 복종하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넘게 군의 정치적 중립은 어느 정도 제도화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 책이 바로 그 물음, 왜 제도화된 중립이 그 밤 작동하지 않았는가에 답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승의 책 『제복 입은 시민』의 출간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하다. 이 책은 지난 20여 년 간 저자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쓴 글 중 군대개혁이라는 주제에 맞춰 추린 것으로 현 시점 대부분의 쟁점을 망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병역거부 운동을 해온 나에게는 그 중 병역거부와 군인의 불복종을 연결해 다루고 있는 5, 6, 7장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 장들에서 저자는 독일의 대체복무 역사와 양심적 병역거부의 법적 정당성, 그리고 현대적 쟁점인 선택적 병역거부의 윤리를 연결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 기본법 제4조 제3항이 규정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해 “사형제 폐지와 더불어 병역거부권의 도입은 침략전쟁을 체험한 헌법 제정자들의 근본적 결단”이라고 평가하며, 이것이 전쟁과 학살에 대한 평화의 보증임을 역설한다. 특히 독일이 1956년 재무장과 징병제를 도입하면서도 대체복무제를 함께 실시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개인의 양심 사이의 헌법적 충돌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온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다.
저자는 양심의 결단이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강력한 마음의 소리이기에 국가가 이를 처벌하는 것은 “개인을 국가 권위적 명령의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며 인격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어서 대체복무가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독일의 대체복무는 군 조직과 완전히 분리된 민간 영역에서 수행되며 “사회복지 영역에서 공익에 기여하는 업무”로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는 기제였음을 지적한다.
이재승은 병역거부의 논의를 현대의 선택적 병역거부와 군인의 윤리적 책임 문제로 확장한다. 그는 군인을 국가의 맹목적인 하수인인 “왕의 사람”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제복 입은 시민”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승은 상관의 명령이 국제법상 침략범죄나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할 경우 이를 거부하는 것은 군인의 도덕적 주체성을 지키는 행위이자 국제인도법의 수호자로서의 영예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불법적 전쟁으로 판단하고 거부한 군인들의 사례를 통해, 법원이 전쟁의 합법성 판단을 ‘정치적 문제’로 회피하는 태도를 “판단 유탈에 입각한 자의적인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에게 정전론에 입각한 선택적 거부는 정치적 거부가 아니라 전쟁의 불법성에 근거한 ‘합법적 거부’다. 지금까지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병역거부는 입대 전에, 전쟁 일반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병역거부자로 판정된다. 특정 전쟁이 부당하다는 이유의 거부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003년 이라크전 파병을 비판하며 군을 이탈한 강철민, 2008년 입영 후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 촛불집회 진압 명령을 받고 부대를 이탈한 이길준의 경우는 만약 당시 한국에서 병역거부가 합법이었다고 해도 인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독일 법원조차 명령의 위법성을 판단하지 않고 양심으로 우회했으니 말이다.
현실에서 한국은 2018년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가 존재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에 이어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었다. 이제 양심상의 이유로 군복무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대체역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교도소에서 3년간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인 병역거부자 나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원한다고 대체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역시 ‘모델’ 병역거부자가 있고 대체역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시종일관 인격의 진지함을 어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종교적 사유에 의한 것이 아닌 병역거부자의 양심은 매우 자주 의심을 받는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길은 오로지 “나는 어떤 전쟁에도 참여할 수 없는, 벌레 한 마리조차 죽이기 어려운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심지어 총 쏘는 게임을 자주했던 어린 시절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국가는 판단해야 할 사안(명령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아야 할 사항(신청인의 신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따져 물었다. 즉 국가는 판단해야 할 대상을 자의적으로 고르는 것이다. 국가에게 불리한 판단은 회피하고 소수자를 걸러낼 판단에는 적극적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시민은 언제 판단하는 자이고 언제는 판단을 당하는 자인가. 이러한 구도는 8장 군인 자살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군인은 명령을 이행할 때는 판단 주체가 아니다. 상관의 명령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이 발생하면 갑자기 자유의지의 주체가 된다. 개인적 사유이다. 책의 표 8-5에 이러한 대비가 극명히 드러난다. 군 당국은 자살의 72.6%를 개인적 사유로 보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98.1%를 군 내부 문제로 본다.
저자는 병역거부를, 그것이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몇몇 사람들의 예외적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군인 시민권의 연속선에 배치한다. 책의 제목인 ‘제복 입은 시민’은 원래 상비군 폐지론(대신 시민이 평소에 생업에 종사하면서 정기적 군사훈련을 받고 외세의 침략이 있는 경우 방어적인 전쟁에 참여하는 민병대)인데 전후 독일에서 그것은 상비군을 민주화하고 정당화하는 이념이 되었다. 이 개념을 통해 시민으로서의 군인, 시민적 판단 주체성을 가진 군인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2024년 12월 3일에 보았듯이 이러한 군인의 존재는 절실하다.

그런데 이 개념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주체성만을 인정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나단은 군대 밖으로 나가려 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가 마련한 대체복무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문 앞에서, 국가는 그의 양심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내용을 심판했다. 국가가 인정하는 주체성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주체성뿐이다. 그렇다면 ‘제복 입은 시민’이 군인에게 부여하려는 판단 주체성은 이 함정에서 자유로운가. 좋은 불복종과 나쁜 불복종을 국가가 계속 가른다면? 대체복무는 허용하지만 군복무의 2배 이상이어야 하고 교도소에서의 합숙복무만 해야 한다면?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과 군 인권 운동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언어를 써 왔다. 군 복무 중 성확정 수술을 받고 군에 남기를 희망한 변희수 하사의 죽음 앞에서, 군대에서 사람을 빼내는 언어를 가진 병역거부 운동은 군대 안에 시민으로 남고자 한 이와 어떻게 연대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두 운동을 비교하기 이전에, 병역거부 운동 내부에서도 대체복무 도입을 주장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있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대체복무라는 출구 자체가 징병제를 승인하는 것이라 보아 그마저 거부한, 대체복무제 도입 자체를 운동의 슬로건으로 내걸지 않은 스페인의 병역거부 운동도 있다. 거부를 인권으로 승인하면 대체복무라는 행정 범주가 생기고 거부는 징병제 바깥의 도전이 아니라 징병제의 한 처리 절차가 된다.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8장이 증언하는 죽음들이 그 근거다. 다만 그것이 불복종의 역량에 어떤 효과를 낼지는 다른 문제다. 권리와 자율성을 갖춘 군대가 불법 명령을 더 잘 걸러낼 수도 있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이 도리어 깊어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체복무 도입 이후 병역거부운동의 활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반군사주의 활동가에게 병역거부는 아주 뭉뚝하게 말하면 군대에서 사람을 빼내는 일의 일부이다. 군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일, 더 시민적인 군대를 만드는 일은 군대 없는 세계를 향하는 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까? 아무리 시민적이어도, 아무리 불복종할 줄 알아도, 그것은 여전히 제복을 입은 시민이다.
현재의 상상력으로 제복을 입은 시민의 다음 챕터는 민병이 아니라 모병으로 보인다. 독일이 2011년에 간 길이다. 현실을 알고 그것과는 다른 현실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전쟁민주주의가 현실 경로가 봉쇄된 이상향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전쟁없는세상에서도 한때 징병제를 반대하는데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이냐에 대한 토론을 꽤 오랫동안 했던 적이 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주로 저소득층과 시민권 희망 이민자를 대상으로 모병을 하고 그러면 전쟁 비용이 특정 계층에 외주화되고 다수 시민은 전쟁에서 신체적으로 분리된다. 물론 시민적 감시에서도 벗어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두려워하는 정치 엘리트가 시민의 통제 없이 전쟁을 결정하는 상태의 일상화, 심화된 형태이다. 즉 징병제의 폭력성을 이유로 모병제로 가면 전쟁 억제라는 가치는 오히려 후퇴한다. 하지만 징병제의 폭력성, 강제, 위계, 그 안에서 재생산되는 남성성과 폭력은 그 자체로 반군사주의가 맞서 온 대상이기도 하다. 8장의 군인 자살이 그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징병도 모병도 반군사주의의 답은 될 수 없다. 우리의 토론도 그 어디쯤에서 유야무야 되었다.
우리의 토론이 유야무야된 자리에서 이재승의 책을 다시 보면, 이 책이 그 미결의 물음에 직접 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복 입은 시민 개념이 군인이 주체가 되어 행사하는 권리를 의미하고 그 권리는 때로 명령권자를 향해 행사될 수 있다는 점, 상관과 국가의 부정의한 명령에 대해서는 특별권력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점 등 내란의 밤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개념은 최근 대통령의 입을 통해 발화되기도 하였다. 2026년 6월 6일, 이재명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군 장병·소방관·경찰·해양경찰·교도관을 ‘제복 입은 시민’이라 부르며 “부족함 없이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하게 뒷받침 하겠다”고 말했다. 군인을 권리 주체로 예우하는 것이 도덕적 판단 능력의 전제조건이라는 독일 모델을 생각했을 때 정부의 이러한 호명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현충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개인을 기리는 날이지만, 그 추모가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나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빛의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이 정부의 호명이 예우를 넘어 군인을 명령권자에게도 맞설 수 있는 주체로 세우는 데까지 갈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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