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시민)

여느 날과 같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하릴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나는 문득 ‘전쟁없는세상’ 계정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이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관련 글이 분명 있겠지 생각하며 피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수개월 전에 ‘폭탄은 민주주의를 만들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간추리자면 “외국의 군사적 폭력으로는 이란의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없다, 이란의 민주주의는 이란 시민들의 것이다.” 맞지 맞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는데 내 눈에 띈 또 하나의 게시글, ‘보이지 않는 탄소’라 적힌 형광색의 포스터가 눈을 사로잡았다. 자세히 보니 기후위기와 전쟁을 걱정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 홍보 포스터였다. 누군가 떠먹여주는 성명서를 읽고 고개를 끄덕인 뒤 게시글을 나가면 그만 잊어버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려던 차였다. 성명서를 읽는 일 외에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차였다. 교육을 듣는 것도 어쩌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되지 아닐까, 할 수 있는 만큼의 적극성을 조금만 더 발휘해보자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이야기들

생각보다 일찍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준비해주신 비건 샌드위치(비건 저녁식사와 다과가 준비된다는 것도 내가 망설임 없이 신청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ㅎㅎ)를 챙겨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점차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만 앉아 있던 테이블에도 사람이 찼다. 같은 테이블의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기후위기’와 ‘군사주의’ 두 커다란 주제의 연결성을 살펴보는 교육이다 보니 비슷한 듯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소개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 속 군사주의와 기후위기를 발견한 순간들을 공유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지난 6월, 우주⸱군사무기를 만드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대전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분들의 소식과 이와 유사한 사고로 한화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몇 년 새 열 명이 넘는다는 사실, 그리고 몇 주 째 지속되고 있는 더위 속에서 집근처 하천을 산책하다가 보게 된 장면을 말했다. 하천 속 물살이들 역시 더위를 피해 그늘이 진 다리 밑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여름에는 더위를 통해 기후위기를 체감하곤 하는데 그 기후위기가 인간에게만 괴롭고 위협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동물에게 더욱 가혹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장면이었다. 다른 분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쓰레기봉투 대란을 짚어주기도 하셨다. 기후위기와 군사주의는 단지 말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분명히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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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후위기의 연결

두 개의 큰 주제에 대한 아이스브레이킹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기후위기와 군사주의가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는지 설명을 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기후위기는 전쟁을 부르고 군사주의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

직접전투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산불 등의 화재로 인한 미세먼지, 폭파된 기반시설을 재건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 그리고 전쟁으로 삶터를 잃은 난민을 위한 기본 필요 시설을 짓는 일 등에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식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을 위한 연습’인 군사훈련 역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공군 훈련을 위한 군용기, 해상 훈련을 위한 함정에서도 탄소가 다량 배출된다. 이처럼 전 세계 군사부문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5.5%를 차지한다. 군사부문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인 것이다. 심지어 이 수치는 충분한 계산이라 볼 수도 없다. 2015년 파리협정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전 지구적인 체제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는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실상 효력이 없다.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이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과 약속을 마련하는 시도로 이어졌지만, 군사에 관한 항목은 매번 불투명하게 운영된다. 군사부문이 발생시키는 탄소가 국가 수준 4위(혹은 그 이상)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다면, 진정으로 기후위기를 늦추거나 막기 위해서는 군사주의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그리고 군사주의는 매번 ‘안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아왔다. 도대체 안보란 무엇이길래 계속해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죽이고,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군사주의의 면죄부가 되어주는 것일까?

스펙트럼 게임과 ‘안보’의 재정의

본격적인 수업은 내게 위와 같은 질문을 남기고 끝이 났다. 이후 몸을 움직이며 이제까지 들은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스펙트럼 게임’을 통해 몇 개의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스펙트럼 게임은 하나의 질문에 yes or no의 이분법적 입장이 아닌 스펙트럼의 개념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극과 극 사이 어딘가의 입장을 가질 수 있어 생각을 더욱 섬세하게 해볼 수 있었고, 토론처럼 무조건 하나의 입장을 고수하게 만들기보다 나의 생각이 yes쪽이든 no쪽이든,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 게임에서 받았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방산주를 사는 것은 기후범죄에 연루되는 것이다.”, “군사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가 선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가 필요하다” 질문은 모두 어려웠지만 흥미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마지막 질문이었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가 필요하다’였다. 이 질문으로 교육을 들으며 내게 남았던 ‘안보’에 대한 고민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하게 되었다. 나에게 와 닿는 안보는 국가가 말하듯 값비싼 비용을 들여 무기를 들이고 군대를 짓는 것이 아니었다. 군대를 짓기 위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고 계속 고향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내 또래의 남성 친구들이 원치 않는 곳에 끌려가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폭력적인 문화에 노출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 국방비에 쓰이는 세금이 복지에 쓰여 당장 오늘의 생활비 걱정을 조금 줄일 수 있는 것, 기후위기 속에서 동물과 인간 모두가 안전한 보금자리와 일상을 보장받는 것. 이것이 내가 느끼는 안보에 더 가까웠다. 이것들은 모두 군대가 없어도 지켜지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탄소를 배출하고, 폭력적인 위계 문화를 바탕으로 전쟁 위협을 높이는 군대가 위협하는 것들에 가까웠다. 이런 생각에 나는 위 질문에 ‘no’쪽에 서서, ‘yes’와 내(no)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군사력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의 침략을 받기 때문에 안보를 위해서는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군대 없는 세상을 잘 상상하지 못하게끔 자라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후정의와 그 밖의 다른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도 이제껏 해보지 못한 도발적인 상상도 한번쯤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군대 없이, 무력의 위협 없이 평화로운 세계의 모습을 그려본다.

작은 걸음이 모여 만드는 힘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지만 밀도 있던 교육이 끝나자 피로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무언가 채워진 것 같다는 감각도 있었다. 아마 동료 시민들과 군사주의와 기후위기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물론 지금의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을 가진 분도 계셨지만 스펙트럼 게임이 주었던 감각을 기억하면 그마저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나의 입장만 선택하여 고수하지 않아도 괜찮은, 설득된다면 언제든 의견을 자유롭게 바꾸어도 괜찮다는 감각. 우리는 언제든 움직이고 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정말이지 크다. (믿을 수 없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의 힘을 갖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보고자 한다. 집 밖을 나가 교육을 듣는 ‘작은’ 일이래도 그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걸음이 어떤 힘으로 이어질지는 또 모르는 일일 테니 말이다. 나에게는 이번 교육이 작지만 분명한 힘을 발휘할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함께한 조원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비슷한 감상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갔네요.”, “듣기만 했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죠?”, “아까 해주셨던 말씀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피로해진 몸에 질문 하나씩을 품고 헤어졌다. 왠지 어딘가에서 또 만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