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음악가)

 

클럽 빵 정기 공연 일정이 새로 잡히고, 지난 공연을 마치고서 다음 공연 땐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부르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아직 창작 작업이 익숙지 않은 신인 인디 음악가는 공연을 이유로 삼아야, 겨우 새로운 노래를 만들 작정을 하기 때문이다. 기타를 안고 책상 앞에 앉아 빈 페이지를 멍하니 쳐다보며 가사를 몇 줄 썼다 지웠다,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말기를 반복한다. 몇 시간 또는 하루 묵힌 뒤 들었을 때 여전히 괜찮을지 혹은 너무 이상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뱉어낸 가사와 음 하나하나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결정하며 일단 밀고 나가본다. 노래를 만드는 일은 정직하게 시간을 들이는 만큼 결과물이 쌓여가는 게 보이거나 느껴지기 어려운데다, 이왕 만들 거면 듣기 좋게 잘 만들고 싶은데, 만들고 보니 별로일까 두려운 마음이 더해져 아무리 우선순위에 두어도 늘 이런저런 핑계 삼아 미루는 일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창작이란 과정에 나를 놓아두려 하는 것 같다. 하다 보면 언젠가 이 일도 익숙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바램을 품고.

공연을 며칠 앞두고서였던가, 어김없이 미루고 미루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싶어 주섬주섬 기타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았다. 새 노래를 만들기엔 너무 늦었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무엇을 노래로 만들어 볼까 생각하는데 둥-실 하고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가자 지구로 가는 두 번째 항해를 떠난 해초와 승준님이 탄 리나 알 나불시 호와 동현님이 탄 키리아코스 X호가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지켜보았던 항해.(https://www.youtube.com/watch?v=g3kzEqI2kDQ)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지켜보았던 항해.(https://www.youtube.com/watch?v=g3kzEqI2kDQ)


올해 초,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KFFP’에서 가자로 향하는 2차 항해를 알리며 모금을 위해 판매한 스티커와 티셔츠를 구매하며, KFFP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홍보물을 보게 되었다(당시엔 연대체 이름이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TMTG) 한국지부’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초가 처음 가자 지구로 향한다는 소식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원하고 연대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인스타그램에 카드뉴스를 공유하거나, 뉴스를 찾아 읽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이 쌓여가던 차였다. 해초는 대안대학 지순협을 함께 다닌 동료로, 함께 강의를 듣고 일상을 나누고, 졸업 후에도 어딘가에서 만나면 반갑게 안부를 나누던 그런 친구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 위해 굴려야 하는 일상의 시간도 빠듯한데, 또 무슨 활동을 더 하나 하며 고민하다가 결국 자원활동가 신청 링크를 열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체크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가자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해초를 생각할 때면 매번 마음에서 미안함과 용기가 동시에 떠올랐는데, 그 힘이 자원활동가 신청으로 나를 이끈 것 같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 이래저래 찾아보아도 늘 돌아서면 까먹고, 그저 무고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며 전쟁이 멈추기를 바라는 무지한 내가 자원활동가를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자원활동가 소통 채널에 초대되고는, 매일 업데이트 되는 소식을 확인하고, 필요한 연서명에 참여하고 공유하고, 집회 기획을 위한 회의에도 참여했다. 실무팀에서 제안하고 이끌어 주는 방향을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하면 되었기에, 자원활동가가 되고 나서도 전에 비해 특별히 더 한 것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알량한 마음일지라도, 이전보다 팔레스타인 이슈와 가까이 있다는 감각, 언제든 연루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평일 저녁, 주말 할 것 없이 온오프라인으로 소통하며 실무를 위해 시간을 쏟는 실무팀 멤버분들, 번역, 디자인 등 나눌 수 있는 자원을 흔쾌히 내놓으며 실시간으로 일을 해내는 자원활동가분들, 매주 열리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분들까지… 온 마음 다해 움직이는 사람들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갖게 했다.

그러던 중 가자로 향하는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되었고, 매일 자원활동가 소통 채널과 여러 SNS 채널을 통해 항해 소식이 업데이트되었다.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직접 항해를 지켜볼 수도 있었는데, 자원활동가들이 자유롭게 시간표에 이름을 쓰고 항해 모니터링을 하기도 했다. 해초, 승준님, 동현님이 탄 배의 나포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던 5월의 어느 날, 소통 채널에도 실시간으로 염려되는 소식들이 공유되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부리나케 유튜브 채널에 접속해 한동안 화면을 지켜보았다. 첨부한 이미지와 같이 여러 각도로 선상의 모습을 담고 있는 화면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보고 있는 화면 속 배가 어떤 배인지, 누가 타 있는지도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이제 와 찾아보니 항해 중인 각 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계화면이었다. 물살을 가르며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배의 앞머리, 펄럭이는 돛과 팔레스타인 국기, 구명조끼를 입고 선상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라이브로 지켜보며 댓글로 응원을 전하고, 마음을 보내는 전 세계의 사람들. 생경했다. ‘내가 아는 해초가 지금 저 바다 위에, 저 배 위에 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현님이 탄 키리아코스 X호가 나포되고, 며칠 뒤 해초와 승준님이 탄 리나 알 나불시 호도 나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라이브를 보고 난 뒤, 일상을 보내는 중에 문득문득 영상 속 바다와 배가 생각났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안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해초는 언제 이스라엘군에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위험 속에서 가자로 향하는 바다 위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먹고,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실없는 농담도, 의미 없는 수다도 나누겠지. 어떤 하루를 보낼까. 상상해 보았다. 질문만 떠오르고, 내용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찰나지만 이렇게 몇 번이고 떠올랐던 순간들이 모여, 책상 앞에 노래를 만들겠다고 앉았을 때도 어김없이 바다와 배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들의 항해와 그걸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노래로 담아두고 싶었다. 전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해초에게 줄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사를 쓰며 이어서 떠오르는 얼굴과 장면들이 있었다. KFFP 활동가들, 몇 년간 사무 공간을 함께 쓰며 가까이 지냈던 전쟁없는세상의 오리, 용석, 쥬의 얼굴이. 동생 화경과 강자매라는 이름으로 연대 공연을 하며 만나게 된 여러 현장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이. 평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함께 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싸우는 동료,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흔치 않지만, 단숨에 가사가 써지고 멜로디가 따라오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가 그랬다.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말하고 싶고, 담고 싶은 이야기가 내 안에서 잘 숙성된 상태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제목도 채 붙이지 못하고, 만든 지 며칠 되지 않아 가사도 자꾸 깜빡할 정도로 익숙지 않은 새 노래였지만, 다가오는 공연에서 이 노래를 꼭 부르기로 했다.

클럽 빵에서 처음으로 를 부르고 있는 나.(https://www.instagram.com/reels/DY8diCjPQiK/)

클럽 빵에서 처음으로 <바다 위 평화>를 부르고 있는 나.(https://www.instagram.com/reels/DY8diCjPQiK/)


공연 당일, 어느 때보다 노래를 잘 전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더 긴장한 채로 연주를 시작했다. 전주가 끝날 무렵 갑자기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한템포 쉬며 가사를 떠올렸다가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날마다 다르지만, 관객들이 유난히 더 집중해 노래의 에너지와 함께 흘러줄 때가 있는데, 이날 노래를 부르는데 점점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이야기가, 장면이 떠올랐을까? 궁금했다. 첫 공연 후엔 <바다 위 평화>라는 제목도 붙여 주었다. 요즘엔 셋리스트에 <바다 위 평화>를 꼭 넣어 부르고 있다. 노래할 때마다 눈을 감고 그 바다를 떠올리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고, 서명에 참여하고, 집회에 가고, 자원활동가를 하고, 노래를 만들고, 이렇게 글까지 쓸 수 있게 된 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 흘러 그냥 지나치려고 해도 찰박 소리가 나는 웅덩이만큼 커져 버려서다. 해초처럼 항해를 떠나지는 못해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처럼 무기박람회 앞에서 저항 행동을 하지는 못해도, 그들의 활동을 보며 얻은 용기가 내 안의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나는 계속 이런 용기에 감응하고, 그 용기를 따라 마음을 보태는 사람이고 싶다. 여태는 그런 마음을 작고 모자란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웅덩이만 한 작은 마음도 그냥 작은 채로만 있지는 않는다는 걸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니 계속, 뭐라도 해보자고.



<바다 위 평화>

나는 늦잠과 산책과
기도와 노래를 일기를

너는 출근과 야근과
밤샘과 투쟁을 싸움을

너는 해초처럼 짙고
투명한 맘으로
바다로 떠났지
바다로 떠났지

나는 늦잠과 산책과
기도와 노래를 일기를

너는 출근과 야근과
밤샘과 투쟁을 싸움을

너는 하염없는 파란 땅 위에서
무엇을 보았니
무엇을 보았니

너 있는 바다를 보네
너 있는 바다를 보네
잊지 못해 노래 하네
잊지 못해 노랠 하네

너 있는 하루를 보네
너 있는 하루를 보네
잊지 못해 노래 하네
잊지 못해 노랠 하네

잊지 못해 거기에 있네
잊지 못해 여기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