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비건퀴어에코페미니스트)
“저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니 성폭력 당한 거지.”
“클럽도 가고, 술도 취해서 당한 성폭행은 피해자 책임도 있는 거 아냐?”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탓하는 언행이 만연하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성폭력을 쉽게 용인하거나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강간 문화(rape culture)’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안전하고 존중받는 분위기에서 성적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다. 난 데이팅 앱 틴더(tinder)로 종종 남자와 원나잇을 하는데, 만약 성폭행을 당했을 때 과거 틴더 사용 경험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걱정하기도 한다. 클럽에서 예쁜 옷을 입고, 음악에 몸을 맡기고 마구 춤추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런 나의 허리와 엉덩이에 모르는 남성의 손이 올라가 있었던 적도 많았다. 이런 불미스러운 세상에서 왕성한 성욕과 궁금증을 풀기에 여성인 나는 지나치게 ‘신여성’인 것일까? 이 시대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물론 과거에 비하면 이것도 큰 발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체념하지 않고, 꿈꾸는 세상을 지금 이곳의 현재로 만들어낸 여성-퀴어들이 있다. 이들이 만든 것은 바로 지난 토요일(9월 5일), 이태원에서 열린 ‘찌찌파티’이다.

찌찌파티 포스터 (출처: @unknownnipple 인스타그램 캡쳐)
이름부터 요상한? 황당한? 찌찌파티. 당최 무엇을 하는 행사인가!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이 파티는 여성의 가슴 해방운동에서 시작했다. 여성의 가슴을 성애화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남성 권력의 검열과 억압에 맞서 여성도 클럽에서 상의 탈의한 채로 안전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처음 열렸다. 그러나 찌찌파티는 ‘여성’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헤테로,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여성은 물론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 퀴어 등 시스젠더가 아닌 퀴어도 환영하는 이 파티는 불안, 두려움과 수치심을 자원 삼아 섹슈얼리티에 위계를 두는 기존 체계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욕망과 쾌락, 관계를 추구하는 장이다.
토요일 밤, 그동안 숨어 살아 새하얀 나의 찌찌에게 공기를 쐬게 하고,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과 욕망을 감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태원으로 향했다. 옷장에 처박혀 있던 섹시한 란제리도 입었다.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선에서 나의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뽐내고, 운이 좋다면 누군가와 짜릿한 만남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기도 했다. 도착한 파티 장소 입구에서는 이 파티의 목적과 의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이들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스태프는 실내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금지된다는 점을 알려주며, 동그란 유방 사진이 담긴 스티커를 핸드폰 카메라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찌찌파티의 운영 규칙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을 하지 말 것, 모든 형태의 차별과 혐오에 함께 저항할 것…. 또 언제든 위험한 일이 생기면 파티 스태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찌찌파티 안전수칙 (출처: @unknownnipple 인스타그램 캡쳐)
자정 전에 입장한 찌찌파티에는 벌써 상의 탈의를 하고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맨몸을 드러낸 이들이 근사한 디제잉에 맞춰 몸을 흔들고, 보깅 댄스를 추고, 껴안고 키스하고, 삼삼오오 모여 칵테일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사회에서 미덕이라 칭송하는 ‘여성성’을 수행해야 하는 일반 클럽과 다르게 이곳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장발, 투블럭, 삭발의 머리 스타일부터 원피스, 츄리닝, 란제리, 상의 탈의 그리고 나체까지. 평소 다른 장소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시도들이 여기저기에 가득했고, 이 낯선 광경에 아무도 당황하거나 무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자유로움, 흥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번 파티에는 폭력의 위험, 수치심과 검열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기를 어려워하는 여성-퀴어들을 위한 ‘다크룸’도 갖추어져 있었다. 다크룸은 성적 동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성적 행위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파티에 입장하기 전, 스태프는 성적 관계를 맺을 때 명시적 동의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했다. 성적 관계에서 동의 문제는 복잡하다. 누군가는 흔쾌히 키스에 임했지만, 상대의 기대와 달리 그것이 당연히 애무나 섹스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원했다고 생각한 섹스 과정에서 마음이 돌변할 수도 있다. 사소해 보이는 터치까지도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이 의사는 반드시 수용되어야 한다. 스태프는 성적 관계와 관련된 감정은 며칠 뒤에 사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으니, 관계에 임할 때 스스로 감정을 잘 헤아릴 것을 요청했다. 다크룸에는 핀돔(손가락 콘돔)도 구비되어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적 동의와 안전을 둘러싼 담론이 사전에 이루어지고, 모두에게 공유되고 지향되는 것이 놀라웠다.
혹자는 이런 섹스가 교과서 같아 전혀 꼴리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다크룸은 무언가 은밀하고 음란한 ‘무법지대’여야 하지 않냐며. 그러나 찌찌파티의 다크룸은 충분히 은밀하고 음란했다. 본인의 성적 욕망을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배설하는 공간이 아니었을 뿐. 실제로 다크룸에서 많은 여성-퀴어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표현하고 실험하고 있었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공간에서 짝을 지은 이들이 곳곳에서 진하게 안겨 키스하고, 서로의 몸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격렬한 섹스와 BDSM 플레이도 일어나고 있었다. 나름 문란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나인데도, 이런 광경은 낯설었다. 동시에 반가웠다. 개방적인 것으로 유명한 베를린의 섹스클럽에서 본 광경이 이 시대 한국에서도, 여성-퀴어 사이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니…. 찌찌파티의 다크룸에서 난 한국 ‘성 해방’의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 그 날밤, 아무도 내게 욕망을 표현해 주지 않아 나의 성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기깔나게 쾌락을 만끽하는 다른 이들의 성 해방을 목격하는 것으로도 의미 있었다고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말해본다.
성욕이 많고, 다양한 성적 취향을 시도하길 원하는 나는 여러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과 만나는 대부분의 경우, 나의 의사가 가뿐히 무시되기도 하고, 삽입-사정 중심의 섹스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여성, 퀴어,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언행에 보지가 식어버린 적도 많다. 실제로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 적도 있다. 이런 내게 친구들은, 그들이 여성의 성적 자유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일지라도 나의 안전을 걱정하여 그런 만남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랜 시간, 난 분열해 왔다. 쾌락을 택하면,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일쑤고. 안전한 상대와만 하는 섹스에서는 쾌락 면에서 아쉬움이 남고. 안전과 쾌락,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찌찌파티는 그 둘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안전과 쾌락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 여성의 벗은 몸은 ‘위험한’ 상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이들의 관점이라고,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오히려 그 관점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위험한 일이 벌어졌더라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비난하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어떨까. 다른 이들이 보는 곳에서 낯선 이와 섹스하는 것도 위험한 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낙인찍지 않고, 동의 없이 촬영하여 온라인에 유포하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욕망과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상대방과 찬찬히 실험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위험하기만 한 일일까? 오히려 ‘혼전순결’과 같이 모든 위험 요소가 차단된(그렇다고 믿어지는) 상황이야말로 몸과 감각을 스스로 알아가는 시도를 삭제하고, 상대방과 소통하고 합의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차단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경계에 침범하는 이에게 적절히 대처할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안전은 위험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가 아니다. 그보다는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위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에 압도되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은 기꺼이 즐기지만, 무엇은 아직 준비가 필요한지 알아야 나에게 필요한 ‘안전’이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다. 상대와 이야기 나누며 그것을 위한 조건을 꾸려나갈 수 있다.
찌찌파티는 안전과 쾌락 중 하나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맞물려 실현되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찌찌파티를 기획한 스태프들은 물론 그 장에 진지하게 임한 그곳의 모든 이들 덕에 가능했다. 남성/시스젠더/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받고, 검열당하고, 억눌리는 여성-퀴어에게 이런 공간은 절실히 필요하다. 나의 몸이 있는 그대로 환영받고, 스스로가 부여한 몸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를 내던지고 짜릿한 비트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끌리면 조심스럽게, 동시에 내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와 성적 관계를 맺고 욕망과 쾌락을 탐험할 공간이 필요하다. ‘망한 섹스’마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그 ‘망한 섹스’가 우리를 더 알아가고, 더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섹스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찌찌파티를 즐긴 밤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퀴어’는 부적절한 욕망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애초에 위험과 혐오로부터 자신을 지킬 기회도, 위험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즐길 기회도 박탈당한 것이 아닐까. ‘안전’이라는 환상으로 소독한 환경에서 우리는 안온할 수 있지만, 나의 경계는 어디인지, 내 쾌락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안전과 쾌락이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위험을 없애려는 시도보다 위험을 다루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쾌락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는 무한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 같은 기존의 위계를 눈감아 주는 것 역시 쾌락이 아니다. 우리는 명확한 동의와 확인이 있을 때 비로소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불안은 진동과 같다. 한 사람이 흔들리면 그 파동은 곁의 사람에게로, 공간 전체로 번진다. 그래서 한 사람의 동의를 확인하는 일은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그 공간 전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의 의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조율하는 이 사소해 보이는 행위는, 사실 평화가 작동하는 방식과 같은 원리를 품고 있다.
평화 역시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건강한 갈등이 일어나는 상태이다. 만약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다른 의견을 펼치지 못하도록 독단적인 권력이 막고 있는 것일 테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억압이다. 대화와 외교 같이 민주적이고 건강한 갈등 해결 방식을 시도하지 않고 무력으로 다른 집단과 나라를 침략하는 것, 평화를 지키겠답시고 군대 확장과 무기 개발에만 치중하는 것. 이 모두는 끝나지 않는 폭력을 낳는 길이다. 나아가 군사적 침략을 당한 나라는 힘이 없어서 그렇다는 식의 논리는 앞서 비판한 강간 문화를 쏙 빼닮았다. 우리에겐 총과 무기, 집단학살이 아니라 타자와 대화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창의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안전과 쾌락이 뒤엉킨 축제, 낯설지만, 신나고 황홀한 광경을 보여준 찌찌파티처럼 우리 사회도 크고 작은 갈등과 뜨거운 토론이 일어나는 평화를 상상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본 글은 찌찌파티는 물론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셰어의 플레저미터 성교육 워크숍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표지 사진: 어느 여름, 강정천에서 홀로 찌찌파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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