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금) 대법원은 병역거부자 나단이 제기한 행정소송 상고에 대해 원심의 결정이 법리를 오해한 바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2023년 5월 16일 “군복무 거부가 사회주의 신념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만으로 원고의 대체역 편입 신청이 이유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원고의 사회주의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서, 대체역 편입신청의 이유가 되는 양심에 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군대라는 국가 폭력의 수단을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의 유지를 위해 악용되었던” 교정시설 또한 거부해야 하는데 교정시설에서 수행하는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걸 봤을 때 “신념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을 그대로 인정한 대법원의 선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편협하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개탄하게 된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양심이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양심을 고정적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흔들리는 양심의 깊은 울림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양심이란 굉장히 약하고 무른 것이어서 외부의 폭력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란 온갖 외압에도 끄덕없는 단단한 신념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에 의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개인의 양심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기각 결정 적법성을 다툰 행정소송의 재판부들의 판결은 이러한 양심의 속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양심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기계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매우 후퇴시켰다.

병역거부자 나단은 형사 재판을 이어 간다. 대체역 심사위원회 기각 결정이 나온 뒤 입영통지서가 나왔지만 다시 병역거부를 해 병무청으로부터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서울북부지원에서 진행중인 형사재판 1심은 선고공판만 남았다. 

형사 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이는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심사 실패를 의미한다. 무죄 선고가 나온다면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심사가 오심이었다는 의미가 되고, 유죄 선고가 나와서 나단이 사법 처벌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병역거부의 양심이 증명되는 것이니 결국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여 대체복무의 도입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담긴 권리를 적극적으로 현실화하고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는 대법원의 역할을 망각한 상고 기각 결정을 규탄한다.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둘 순 있어도 양심을 가둘 순 없다. 

 

2024년 10월 28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