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게임으로 실험한 공멸과 공존
보드게임 <리미트>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자명한 명제에서 출발한 국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알렉상드르 포예(Alexandre Poyé)는 작가의 말에서 유명한 메도즈 보고서 <성장의 한계>1)와 이 보고서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World3 모델에 영감을 받아 게임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근현대를 배경으로 국제 정치·경제를 다룬 보드게임(예: <월드 오더>, <임페리얼>)이나 국내 정치·경제를 다룬 보드게임(예: <헤게모니>, <디 마허>)은 있어도, 둘을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버무린 작품은 못 본 것 같다. 시대 범위를 넓히면, <유로파 유니버설리스>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 등이 있지만, 금융, 환경, 군사 위기라는 전 지구적 규모의 현대적 위기를 다루지는 점에서 <리미트>는 결이 다르다.
게임은 산업혁명기인 1850년부터 근미래인 2060년까지 최대 7라운드(세대)에 걸쳐 진행되며, 각 세대는 정치단계, 사회단계, 국제단계로 나뉜다. 정치단계에 각국은 사회카드, 생산카드, 군사·경제카드 더미 중에 하나를 골라 카드를 뽑고, 돌아가며 손에 든 카드를 사용한다. 다른 국가를 지목해 직접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비롯해, 게임 중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한 행위는 모두 이 단계에만 일어난다.
정치단계가 끝나면 사회단계와 국제단계는 게임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처리된다. 사회단계에는 각국의 인구와 부문별(식량, 산업, 군사) 생산 수준, 계층별 생활 수준에 따라 자원의 소비와 인구 증가, 경제 성장, 과세, 생산, 계층 갈등이 일어난다.
만약 사회단계에 공급처의 돈·오염·불안정화 토큰이 모두 떨어지면, 각각 국제단계에 금융·환경·군사 위기가 일어난다. 한 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촉발하고, 결국 7라운드가 다 가기 전에 게임 조기 종료 조건인 4회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보드게임 <리미트>
점수라는 이름의 가치 판단
<리미트>의 특이한 점은 승점 계산 방식이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위기가 4번 발생하면 자산 $10당 1점이지만, 마지막 라운드에 5번째 위기가 터질 경우 경제력 점수는 아예 계산하지 않는다. 반대로 7라운드가 종료될 때까지 위기가 3/2/1/0번밖에 안 일어났다면, 자산 $10당 각각 2/3/4/5점을 얻는다.
최종 승점 = 국민총행복 + 경제력 + 영토 + 군사력 + 역사적 영향
국민총행복 = 인구 지수 × (A(최상위)+C(중위)+E(최하위)) 생활 수준
경제력 = 자산 $10당 (5 – 위기 발생 횟수)점
영토 = 영토 1개당 5점
군사력 = 군사 자원 3개당 1점
역사적 영향 = 오염 1개당 –2점 + 불안정화 1개당 –1점
게임의 모델 자체는 가치중립적일 수 있지만, 점수를 매기는 것은 결국 어떤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리미트>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플레이어들이 원하면 점수 체계 자체를 바꿔도 된다고 규칙서에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여러분이 군사력을 중시한다면, 군사 자원당 1점으로 설정하고, 평화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군사 자원은 아무 점수도 없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생활 수준도 A+C+E로 계산하는 대신, 공산주의적 관점을 선호한다면 E×3으로,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선호한다면 A×3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행성을 오염시키고 세계 평화를 불안하게 하는 국가에 대한 처벌 방식도 바꿀 수 있습니다. 오염 또는 불안정화에 대한 감점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말이죠.
공멸을 향한 질주
보드게임 동호회 사람들과 한 첫 번째 게임에서, 나는 생산과 소비를 억제하면서 가급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는 방향으로, E님은 초반부터 군사력을 키워 다른 국가로부터 자원을 빼앗고 경찰 탄압으로 국내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H님은 초반에는 침략에 시달리다가 후반에 식민지화를 바탕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는 방향으로 플레이했다. 승점은 1등이 고작 20점대였다.
결과는 5라운드에 금융, 군사 위기, 6라운드에 금융, 환경, 군사 위기가 모두 발생하면서 조기 게임 종료. 마지막에 세 국가 모두 전 국민의 생활 수준이 산업화 이전과 같은 ‘태초마을’(생활 수준 1-1-1-1-1)로 돌아갔다. 눈앞에 낭떠러지를 놓고도 남들보다 뒤처질까 멈추지 못하고, 불가피한 종말을 향해 다 같이 질주하는 느낌이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케 했다.

6라운드 만에 ‘터진’ 지구
조심스러운 공존의 실험
전쟁없는세상 보드게임 소모임 ‘전쟁게임 즐기는 평화주의자’에서 한 두 번째 게임은 달랐다. 6라운드와 7라운드에 각각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환경 위기와 군사 위기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비결은 모두가 상대 점수의 극대화보다 평화적 공존과 탈성장을 추구한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풍요롭고 행복하게 끝난 건 아니다. 승점 계산 직전에 진행되는 ‘지속 가능성 시험’ 전 기준으로, 나는 <인구 20, 생활 수준 4-4-4-3-3>, G님은 <인구 100, 생활 수준 3-2-2-2-2>, J님은 <인구 30, 생활 수준 1-1-1-1-1, 반란 상태>로 게임을 마쳤다. 흡사 노르딕 모델과 브릭스, 제3세계 권위주의 국가를 나란히 보는 듯한 풍경이었다. 승점은 1등과 2등이 80점대, 3등도 30점대로 지난 게임의 1등보다 높았다.
이번에는 초반에 채식주의와 지속 가능한 소비, 중반에 친환경 생산, 후반에 재활용 같은 지속 효과 카드를 깔고, 석유 시추로 발생한 오염은 지구 정화로 털어냈다. 고등 교육으로 인구가 너무 빠르게 늘지 않게 조절하고, 투자 정책으로 사회적 혼란을 관리했다. 무엇보다 호전적인 플레이어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다음 실험을 남기며
다음에는 비슷한 발전 전략을 유지하되, 조금 더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펼쳐볼 생각이다. 사실 두 번째 게임에서도 식민지화 카드를 한 번 썼는데, 제3국 대신 경쟁국을 상대로 군사 행동을 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군비를 늘리는 순간, 다른 국가들도 위기를 느껴 군사력을 키울 테고, 결국 안보 딜레마가 초래될 것이다.
첫 번째 게임에서 절감한 바, 이 게임의 교훈은 ‘계산된 군비 경쟁도 충분히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적정한 군사력’이라는 균형점, 혹은 ‘힘에 의한 평화’가 과연 <리미트>의 세계에서는 실존할까? 세 번째 게임은 그 질문을 실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1) Meadows, D. H., Meadows, D. L., Randers, J., Behrens, W. W. The Limits to Growth: A Report for the Club of Rome’s Project on the Predicament of Mankind. New York, NY: Univers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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