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비건퀴어에코페미니스트)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와 맛집 탐방도 사랑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제일 설레고 행복하다. 짝꿍이랑 둘이 비건 식당에 가면 늘 3인분을 시킬까 말까 고민한다. 메뉴판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워진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텅텅 통장의 사정은 잠시 접어두고, 식탁 위로 한가득 맛깔난 요리들이 채워지기를 고대한다. 그런데 요즘은 접시 앞 기쁨과 기대 사이로 약간의 죄책감과 머뭇거림이 고개를 들춘다. 극도의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아부터 노인까지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때문이다. 2023년 10월 9일부터 2026년 2월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선언하며 식량, 물, 연료,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끔찍한 굶주림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를 아는 이상, 일상에서 즐기는 만찬이 종종 죄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식비를 줄여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후원금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나만 이렇게 풍족한 식사를 즐겨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불편한 감정이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채감을 가지면서도 잘 먹고 있다. 일단 나도 먹어야 사니까.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독한 기아에 시달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도 덜 먹고 후원하는 것이 최선일까? (사실 극단적인 수준만 아니라면 이것이 최선 같다) 그렇게 한다면 죄책감을 줄일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해소할 실마리는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호 한국지부(Thousand Madleens to GAZA Korea, 이하 TMTG)”에서 꾸린 크리스마스 정찬회에서 찾을 수 있었다. TMTG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짝꿍과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팔라펠과 후무스를 만들어 먹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크리스마스 정찬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라펠과 후무스도 못 먹으며 굶어 죽어가는데 우리는 그걸 먹으며 배를 채워도 될까?’ 지난날의 내 고민에 답하듯 게시물에는 이런 글이 인용되어 있었다.
“음식은 이 운동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작은 힘이 됩니다. 모임 중에 친구 어머니가 만든 마클루바 한 접시를 부엌 조리대에 올려놓는 것. 저녁을 차릴 기력조차 없는 동지에게 남은 모사칸을 건네주는 것, 휴전 결의안 표결을 기다리며 시청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는 동안 그래놀라 바를 건네주는 것, 다음 행동을 계획하며 타키스 한 봉지를 뜯어 먹고 손가락을 스치는 것. 섭식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스스로를 지탱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야만 가자 지구 주민들, 특히 중심부에 사는 주민들이 우리에게 직접 요구한 것, 싸우라는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싸우는 데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음식은 우리의 사명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음식이 없이는 어떤 삶도, 어떤 문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서 우리는 생명을 위해,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싸웁니다.” Nylah Iqbal Muhammad, 「The Role of Food in the Movement for Palestine」, 『Mondoweiss』
이 글을 읽고 깨달았다. 아, 음식은 단순히 배부름, 영양, 만족만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구나. 음식은 곧 문화이자, 역사이자, 공동체이다. ‘삶’ 그 자체다. 그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연대하기 위해 일단 잘 먹어야 하는구나. 해방과 자유를 향한 지속 가능한 투쟁, 연대 속에서 음식은 절대 생략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날, 따스한 불빛이 가득 찬 수유동의 공간에 6명이 모였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누고 오늘 만들 팔레스타인 음식 ‘팔라펠’과 ‘후무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비건인 나에게 이 두 가지 음식은 낯설지 않았다. 이국적인 비건 식당이나 유럽 여행 중 마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둘 다 주재료는 단백질이 가득한 병아리콩! 팔라펠은 푹 삶아 으깨진 병아리콩에 파슬리와 고수를 다져 넣어 동그랗게 튀긴 음식이다. 후무스는 똑같이 으깨진 병아리콩에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부드럽게 간 음식이다. 그냥 퍼먹어도 맛있지만,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스프레드처럼 빵에 발라 먹을 수도 있다. 이태원은 물론 요즘은 많은 곳에서 두 요리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팔라펠과 후무스가 내게 친숙한 요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들이 팔레스타인 음식이라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흔히 ‘중동 음식’, 심지어는 ‘이스라엘’ 음식이라고도 표현되는 두 요리는 사실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예멘,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널리 즐기는 팔라펠과 후무스를 ‘중동 음식’이라 칭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되물을 수 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 집단학살이라는 맥락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물리적으로, 군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식민 지배하는 것은 물론 문화적으로도 팔레스타인을 침략하려고 애쓴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김치를 누군가 도용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이나 중국 음식, 혹은 두루뭉술하게 아시아 음식이라 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팔라펠과 후무스에도 그렇다. 팔레스타인을 지우기 위해 팔라펠과 후무스를 일부러 모호하게 ‘중동 음식’이라고 분류하거나, ‘이스라엘 음식’으로 왜곡하여 알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의도적이고 필수적인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기획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라펠과 후무스를 만들고, 먹으며 만들어낸 역사·문화적이고도 공동체적인 가치가 흐릿해진다. TMTG 활동가가 말한 대로 그것은 “팔레스타인 음식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서 단절시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이 지구상에서 지우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의도이다. 따라서 우리가 모인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크리스마스 정찬회”는 “팔라펠의 이름과 기원을 기억하는 일”, 그러므로 “이 음식을 만들어온 사람들을 지우지 않겠다는 실천”이 될 수 있다.
팔라펠과 후무스에 담긴 중대한 의미에 끄덕끄덕한 우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요리에 임하기 시작했다. 두 명은 미리 삶아둔 병아리콩을 으깨고, 두 명은 양파를 썰고(겁나게 매운 양파라 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 남은 두 명은 파슬리와 고수를 다졌다. 그리고 한데 모아 섞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우리는 동그랗게 팔라펠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꽤 많은 양의 팔라펠 반죽이 완성되고,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자칭&타칭) 부치들이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조용히, 끝까지 전을 부치는 부치 분들께 감사했다. 안타깝게도 가정에서 큰 튀김기를 사용하기가 어려웠던지라 팔라펠은 공 모양보다는 동그랑땡 같은 친숙한 비주얼로 완성됐다. 그래도 맛은 상상한 맛 그대로였고, 오히려 촉촉해서 좋았다.

팔라펠 반죽을 다 만들고, 다들 벌써 좀 지쳐서 ‘후무스는 때려치울까?’ 느슨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잠식했다. 그러나 후무스를 파는 비건 식당에서 일하는 짝꿍이 발벗고 나섰다. 모두 경력자의 실력을 노골적으로 기대했다. 짝꿍은 열심히 믹서기에 병아리콩을 갈고, 또 갈았다. 덕분에 뒤늦게 참석한 대여섯 명까지 모두가 풍성하게 먹을 정도의 팔라펠과 후무스가 준비되었다. 다들 양반다리로 앉은 채로 바글바글 모여 앉은 탁자 위는 팔라펠과 후무스, 곁들여 먹을 피타 빵으로 가득 찼다. 정겨운 생김새는 전문 식당의 그것과 조금은 달라 보이지만 우리가 만든 것은 분명 팔라펠과 후무스였다. 정성껏 병아리콩을 삶고, 으깨고, 갈고…. 반죽에 촘촘히 썬 향기로운 파슬리와 고수, 양파를 넣고…. 오밀조밀 동글동글 모양을 내고…. 기름 앞에서 열정적으로 튀겨내기까지! 빈틈없이 차려진 상 앞에서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두 팔레스타인 해방을 바라는 이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정찬회에 온 친구들과 편안하고, 신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의 주인공인 팔라펠과 후무스는 극찬을 받았다. 다들 바삐 손을 움직여 피타 빵에 후무스를 바르고, 팔라펠을 얹어 배불리 먹었다. 초반에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는 래퍼의 음악이 흐르더니, 곧 친구들이 기타를 가져와 저마다 노래를 뽑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웃기도 했다. 절망적인 소식이 멈추지 않는 와중에도 팔라펠과 후무스를 나누는 그날의 정찬회는 씁쓸하고, 무거운 마음보다는 희망과 연결을 향한 힘을 느끼게 해준 자리였다. 팔레스타인 음식 팔라펠과 후무스를 직접 만드는 행위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감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싶게 만들었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자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자리에서부터 팔라펠과 후무스는 이스라엘 음식이 아닌 팔레스타인 음식으로서 기억되고, 공유될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의 투쟁을 북돋아 줄 열량과 단백질까지 얻었다! 이 모든 과정이 연대, 투쟁, 저항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정찬회를 소개하는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서로를 돌보는 일이며, 지속 가능한 저항의 조건임을 기억합니다. 음식이 삶을 지탱하듯, 우리의 연대가 해방을 향한 길을 지탱하기를 바랍니다.”
요리법이 어렵지 않으니, 팔레스타인을 기억하면서 직접 팔라펠과 후무스를 만들어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을 모두 기억하고, 존중하고, 연결하는 식사가 될 것이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겨울밤, 팔레스타인 국기가 춤을 추고, 노란빛이 퍼지는 집은 행복으로 왁자지껄하다. 팔라펠과 후무스, 피타 빵을 가운데 두고 웃고, 울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 음식을 통해 부당한 식민 지배와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 간의 연대가 또렷해진다. 이 순간이 자아낸 온기와 활기와 멜로디, 그리고 무엇보다 팔라펠과 후무스의 냄새와 맛, 영양까지 팔레스타인까지 훨훨 퍼져 나가기를 소망한다.

TMTG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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