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욱(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쓸쓸함은 고독보다 덜 사무치게 느껴진다. ‘어느 고독한 그림 이야기’는 읽으면 정말 슬플 것 같다. ‘나 요즘 고독해’는 발음부터 고.독.이라 확실히 어떤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 요즘 쓸쓸해’는 고독보다는 가뿐하다. 흐르는 듯하면서도 살짝 아릿하다. 고독하다는 말 앞에서는 쉽사리 말을 걸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쓸쓸하다는 말 앞에서는 왠지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책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안민영, 빨간소금, 2023) 는 저자가 ‘쓸쓸한’ 그림과 나눈 대화다. ‘쓸쓸한 그림’은 쓸쓸한 무언가를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그 그림이 지닌 위치성이 쓸쓸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책에서 언급되는 화가들은 분단과 이주라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을 역사적 격랑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남긴 화폭에는 당사자가 몸으로 겪어낸 한국사의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8쪽)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그 생채기에 말을 건다. 답을 듣고 다시 묻고 생각하고 느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민족이 겪은 비극’ 같은 말로 퉁치고 지나가지 않는다.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라는 한 책의 제목처럼 그림의 안팎에서 새어 나오는 쓸쓸함을 알아차리고 그 맥락을 살펴 독자에게 들려준다. 나는 이 쓸쓸함에 ‘역사적 쓸쓸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역사적 쓸쓸함이라는 사정
“나에게 ‘화가 임군홍’은 있지만, ‘아버지 임군홍’은 그때부터 없었어요.”(49쪽) ‘월북’ 작가 임군홍의 아들 임덕진의 말이다. 임군홍은 1948년 철도청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달력에 ‘공산주의’ 색채를 띤 요소를 삽입했다는 혐의로 고초를 겪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점령 치하에서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린다(첫 장에 언급되는 이쾌대 역시 그랬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이 서울과 가까워지자 임군홍은 북으로 피신한다. 언젠가 한 북토크에서 한국전쟁 당시 월북 대 납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들은 적이 있다. 납북은 강제, 월북은 자발로 표현되지만, 사실 납북과 월북은 이분법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분법은 진부하고 나태하다. 무엇보다 해롭다. 인민군 점령 치하에서 공산주의 지도자의 초상화를 그려야만 했던 맥락과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임군홍과 가족 모두 ‘잠깐’ 헤어진다 생각했겠지만, 그 잠깐 동안 결국 어린 아들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화가인 아버지’는 ‘화가’와 ‘아버지’로 쪼개졌다. 저자는 또 다른 ‘월북’ 화가 이쾌대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한 번은 ‘이쾌대’로, 한 번은 ‘리쾌대’로. 전자의 검색 결과에선 월북 이전 작품이, 후자로 검색하면 북에서 그린 그림이 나온다고 했다.(43쪽) 역사는 당사자와 그 가족이 오롯하게 살아갈 기회를 빼앗았다. ‘반쪽짜리 삶’. ‘쓸쓸하다’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외로움과 적적함을 품은.
책은 분단을 포함해 강제이주의 역사를 겪은 ‘고려인’과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일조선인’의 이야기까지 담는다. 고려인 화가 변월룡을 다루는 장에서 저자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까지 우리 역사의 디아스포라’를 언급한다. 권혁태는 서경식이 주장한 디아스포라론을 다룬 논문에서 국민국가가 국민이라는 단일한 집단으로 구성된 것처럼 간주되지만, ‘디아스포라라는 보조선’을 그을 때 국민국가가 국민-비국민이라는 이분법적 관계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국민국가 역시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서경식의 사유와 ‘방법으로서의 디아스포라’의 가능성」, 131-132쪽.)
일제강점기 당시 소련의 강제이주1)를 겪은 신순남은 강제 이주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인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114, 125쪽)을 그렸음에도, “1989년 9월 소련 최고평의회가 강제 이주한 소수민족의 명예 회복과 권리 확대를 선언한 뒤”(133쪽)에야 그림을 공개했다. 재일조선인 화가 전화황은 남한에 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조총련에서 민단으로 소속을 바꿔야만 했다. 재일조선인 문화운동가로서 전화황을 후원했던 하정웅은 전화황의 “그림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156쪽)고 썼다. 이 맥락에서 ‘민족의 문제’와 ‘이산의 아픔’은 매우 구체적이다. 응어리진 무언가로 계속 마음에 남아 있는.
국민-비국민의 이분법은 당사자를 어느 한쪽으로 구겨 넣으려 한다. 다른 쪽과는 접점을 만들지 못하게 만든다. 이응노를 다룬 장인 ‘이토록 쓸쓸한 자화상’에선 쓸쓸함’이 전면에 내세워진다. 이응노는 프랑스에 건너가 유럽에서 유명세를 떨치지만, 1967년 ‘동백림 사건2)’(동베를린)의 간첩으로 몰려 결국 옥살이를 한다. 동베를린에는 북한대사관이 있었다. 이응노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북에 갔다가 행방불명된 아들이 북한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듣고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방문했다. 이를 빌미로 간첩으로 몰린 것이다. 가족 상봉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접촉마저 내리누르고 어떤 ‘불순물’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모든 시기를 살피려는 마음
“교도소에서 춥고 괴로운 시절을 보내는 나이 든 화가의 자화상 옆자리에 춤추듯 터져 나오는 〈군상〉 속의 저 많은 사람을 하나하나 함께 새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200쪽)
이응노 화백을 다룬 ‘이토록 쓸쓸한 자화상’ 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역사적 쓸쓸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바로 다정함이다. 〈자화상〉은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수감된 감옥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안양 교도소에 가장 춥고 괴롭든 날, 1968.12월 十五日”. 〈군상〉은 이응노 화백이 1980년 5월 광주의 군중을 그린 그림이다. 〈자화상〉과 〈군상〉의 연결은 단순히 고독한 수감자 옆에 많은 사람을 데려다 놓는 것을 넘어 어떤 역사적인 연대를 떠올리게 했다. 5·18과 4·16이 만났을 때처럼.
저자의 다정함은 어디서 나올까? “옛 소련, 동유럽 국가들, 중국 등의 아카이브나 중고책 온라인 사이트를 조사하다 보면 간혹 도판 한 장을 구할 때가 있다. ‘절터 발굴하다가 명문이 새겨진 불상을 발견하는 기분이 이렇겠지’ 싶은 순간이 드물게 오곤 한다.”(21쪽) 심지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까지 가서 “역사의 한 조각이 발견될 때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우리는 표정과 동작으로 비명을 지르곤 했다.” 확신의 ‘덕후’ 인증이다. 이런 진심을 보여주니 저자의 이야기를 신뢰할 수밖에.
다정함은 잘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지나가다 읽은 한 구절에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북한에서 활동한 박경란을 다룬 ‘그 시절 반짝거리던 그녀’ 장의 첫 문장이다. “북한에서 발간된 미술사 책에서 한 화가의 이력을 보다가 이 문장에서 잠깐 생각이 멈췄다. “유학생” 그리고 “보통의 가정주부”의 간극. 이 두 단어 사이에 생략된 그녀만의 사정은 없었을까?”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결국 “이 모든 시기의 박경란을 응원하고 싶다.”로 끝나는. ‘모든 시기’의 박경란, 이응노, 전화황, 신순남, 임군홍, 이쾌대, 그리고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변월룡과 김용준까지. ‘모든 시기’의 그들을 꼼꼼히 살피려는 다정함이야말로 강제된 분절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꽃 한 송이를 올린다
정지아 소설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장 이야기다. 소설은 조문객의 사연을 빌려 다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아버지가 철저하게 지켰던 유물론은 죽음을 그저 ‘땅을 살찌우는 한 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쓸쓸한 철학’이었지만(『아버지의 해방일지』, 98쪽),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아버지의 해방일지』, 110쪽)는 화자의 말은 읽는 이를 조금 덜 쓸쓸하게 해준다.
공교롭게도 계속 마지막 문장을 언급해서 민망하지만, 저자가 마지막 문장에 힘을 줬다고 생각하고 다시 언급해본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작품 속의 대상과 관람자를 시공간을 뛰어넘어 연결해 주는 영매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미야마는 고통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불러왔다. 한평생 치열했으나 따뜻했던 그녀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린다.”(228쪽)
도미야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5・18민주화운동 등에 그림으로 연대했던 도미야마 다에코다.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린다”는 마지막 문장은 도미야마가 1982년 파리코뮌 당시 저항했던 이들이 묻혀있던 묘소에 방문하면서 한 말과 이어진다. “100년 조금 지난 지금까지도 파리코뮌에 대한 것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그리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꽃을 바치러 가는 것이지요.”(227쪽)
지난 2021년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쓰기 위해 전국 곳곳의 학살지를 찾아다녔을 때가 생각났다. 방문객은 거의 우리뿐이었지만 가끔 무덤 앞에 놓인 꽃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파주 적군묘지에서도 꽃을 봤다. 그렇게 한국전쟁 다크투어를 ‘장소(의 기억)와 관계 맺기’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미술사 공부를 “역사 사건과 같은 보통명사를 그 안에 내던져진 인물의 고유명사로 다시 보게하는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고유명사’를 본다는 것은 결국 그 고유한 삶을 나와 결부시켜서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지 않을까. 너무 외진 곳에 있는 학살지가 훼손되지는 않았을지(실제 산청 외공리는 작년에 산불과 수해를 겪었다) 장소의 안부를 묻게 되는 것처럼. 어떻게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나와 결부시켜 기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태도를 본받으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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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다크투어 아카이브 웹페이지가 나왔습니다. 장소와 관계 맺고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살펴주세요. 이 서평이 홍보를 위한 빌드업은 절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각주
- 1937년 러시아 스탈린 정권이 소련 극동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약 17만 명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단 등 중앙아시아로 집단 강제이주시킨 사건. 1989년 11월 14일 소련 최고평의회가 강제추방을 불법·범죄로 인정하며 복권을 선언했다.
- 동백림 사건은 1967년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동베를린 등지의 교민·유학생·예술인을 ‘대북 연계’ 혐의로 발표해 대거 연행·기소한 공안사건이다. 해외 강제연행, 불법구금과 고문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2006년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범죄사실이 확대·과장되었다고 밝혔으며, 최종 재판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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