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 글은 1월 21일 참여연대에서 주최한 라운드테이블 <미국의 베네수엘라 불법 침공을 통해 본 국제질서의 붕괴>에서 발표한 패널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2026년 1월 3일 새벽, 미국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200명 이상의 특수부대원이 투입되고 150대 이상의 전투기가 동원된 이 작전에서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체포해 뉴욕으로 이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놀라운 미국 군사력의 과시”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 ‘성공적인’ 작전은 동시에 국제법 질서의 명백한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 편집위원회는 이를 “위험하고 불법적”이며 “후기 제국주의”적 행위라고 규정했고,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법 규칙이 존중되지 않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브라질,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등 중남미 주요국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 영토에서 일방적으로 수행된 군사 행동에 대한 깊은 우려와 단호한 거부”를 천명했다.

 

국제법 위반, 그 명백함에 대하여

이번 군사 작전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점은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회원국들이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명시하고 있다. 미주기구(OAS) 헌장 역시 회원국 간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작전을 마약 테러리즘 혐의에 대한 ‘법 집행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설령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마약 관련 혐의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주권국가의 현직 원수를 군사력을 동원해 체포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 국내법적으로도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군사 작전을 명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헌법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동북아에 드리운 그림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갖는 함의로 아래 3가지 정도의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북한의 핵 고도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북한은 이번 사태에서 “핵무기 없이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을 것이다. 마두로는 핵무기가 없었기에 체포되었다고 해석할 것이고, 이는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을 더욱 축소시킬 것이다.

둘째, 중국에게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의 정당화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이 “서반구는 우리의 영향권”이라는 논리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다면, 중국도 동일한 논리로 “대만은 우리의 내정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작전이 국제 규범의 변화를 시사하며, 유사한 공격적 행동을 더 용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셋째,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이 축소될 것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에 대한 ‘편 선택’ 압박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돈로 독트린”: 19세기로의 회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은 19세기 먼로 독트린의 노골적인 부활이다. 이는 단순히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경고를 보냈고, 쿠바와 멕시코에 대한 군사 행동도 시사했으며,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합병까지 공언하고 있다. 19세기 ‘포함 외교(gunboat diplomacy)’로의 회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단독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2023년~현재)과 함께,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은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의 동시다발적 붕괴를 보여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강대국들의 거부권 행사로 마비되었고,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결정들은 반복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국제법의 거의 완전한 붕괴”를 경고한 바 있다.

물론 과거의 국제질서가 진정으로 공정했던 것은 아니다. 지배적 강대국들은 국제 규범을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도, 그 규범이 자국의 이익을 제약하는 순간에는 해석을 왜곡하거나 집행을 방해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는 질적인 임계점을 나타낸다. 국제법 규범에 대한 수사적 준수조차 포기한 것이다.

 

법이 침묵할 때: 시민들이 국제 정의를 만들어가는 방법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이 글에서 던지고자 하는 핵심 질문이다. 흥미롭게도, 시민사회는 이미 국제법 집행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1) 기존의 법을 새롭게 활용하는 전략

시민사회는 단순히 기존의 법과 제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틀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정의를 추구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

– 보편적 관할권의 활용: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란, 반인도적 범죄처럼 인류 전체에 대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은 국적이나 범죄 발생 장소와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서든 재판받을 수 있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국제법 집행이 예를 들어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규명이 부재하거나 안보리가 ICC에 사건을 회부할 가능성이 낮거나 하는 등 국가 간 정치에 의해 차단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보편적 관할권을 통해 책임 추궁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해왔다. 2017년 이후 독일,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의 국내 법원은 국제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확대해왔다. 특히 독일은 시리아 전쟁범죄와 고문에 대해 자국 내 체류 중인 피의자를 기소함으로써 보편관할권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참여연대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책임자들을 한국 검찰에 고발했던 것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국제적인 정치 논리에 막힌 사법 절차를 국내 법정으로 가져와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처럼 시민들은 보편적 관할권이라는 전략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가로막힌 정의를 각국의 사법 시스템으로 우회해서 실현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 국제기구의 빈틈 메우기: 시민사회는 ICC나 유엔 같은 기존 국제기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이들이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고 대안을 제시해왔다. ICC가 침략 범죄와 같은 더 넓은 범위의 범죄를 다룰 수 있도록 관할권 확대를 요구하고, 더 많은 예산과 자원을 확보해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쟁 범죄의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유엔 내에 독립 조사 기구(IM, IIMM 등) 설립을 주도하기도 한다. 또한 기업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기업과 인권 조약’ 같은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국제기구를 상대로 로비, 청원,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이처럼 시민 사회의 활동은 단순히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국제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건설적인 노력이다.

2) 시민이 직접 만드는 법과 평화

시민 사회가 주도하여 국제법을 만든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이다. 이 캠페인을 이끈 단체 연합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은 201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의 성공 전략은 실로 기발했다. 기존의 핵 군축 논의가 강대국 중심의 ‘안보’ 문제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핵무기 문제를 끔찍한 비극에 초점을 맞춘 ‘인도주의적 재앙’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했다. 이 전환은 핵보유국이 독점하던 ‘안보’ 담론에서 벗어나, 비핵보유국과 전 세계 시민들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거대한 동력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새로운 국제 조약이 탄생했으며, 이는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실질적인 국제법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물론, 한국은 아직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3) 국제법과 국제질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그 역할의 일부를 수행하는 노력

국제 사회나 각국 정부가 책임을 방기할 때, 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직접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기도 한다.

– 국제 구호선단 (International Aid Flotilla): 한국인 해초님의 승선으로 한국에서는 이번에 소개되었지만 국제구호선단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은 봉쇄된 지역에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지원조차 막혔을 때, 시민들이 직접 배에 구호 물품을 싣고 항해하는 활동이다. 실제 전달하는 물품의 양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또 성공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보다 국제 사회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각성을 촉구하는 상징적 역할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 비무장 민간 경호 (Unarmed Bodyguard): 무장한 평화유지군 파병과는 전혀 다른 ‘제3의 안보 패러다임’이다. 비폭력 훈련을 받은 활동가들이 분쟁 지역으로 들어가, 탄압의 표적이 된 현지 인권 운동가나 저항 세력과 동행하며 그들의 안전을 지원한다. 이들의 비폭력적 존재감은 가해자에게 폭력의 정치적 비용을 높이고 국제적 감시를 불러일으켜, 폭력 없이도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한다.

– 시민 주도 경제 제재: BDS는 보이콧(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여 전 세계 시민들이 이스라엘 정부, 기업, 학술, 문화계 전반에 대해 전방위적인 비폭력 압박을 가하는 운동이다. 이는 시민들이 경제적, 문화적 수단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시민 법정과 직접 조사: 공식적인 재판이 열리지 않을 때, 시민들이 직접 증거를 모아 ‘시민 전범 재판’을 열기도 한다. 또한,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의 증거를 직접 수집하고 기록하여, 언젠가 열릴지 모를 공식적인 사법 절차를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직접 행동들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질서와 정의를 구축하려는 책임감 있는 노력이다.

–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 국가 단위의 공식 외교가 막혔을 때, 더 작은 단위의 연대가 그 틈을 메우기도 한다. 도시, 대학, 노조 등이 주도하는 ‘로컬 외교’나 부문별 제재가 그 예이다. 이는 공식적인 권력의 장에서 배제된 목소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전략이다. 과거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 회담’이 열렸을 때, 여러 국가의 여성 단체들이 병렬적으로 ‘여성 6자 회의’를 연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들은 공식 회담에서는 배제되기 쉬운 젠더 이슈를 공론화했다. 이는 권력의 공식 테이블에서 배제될 때, 우리만의 테이블을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고 기존의 맹점을 폭로하는 시민 사회의 탁월한 전략을 보여준다.
– 이 외에도 자국의 정부가 전쟁 중이거나 독재자들이 시민저항을 탄압하는 무기로 사용될 우려가 큰 나라 혹은 지역에 자국의 무기를 수출하거나 이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캠페인 등 국제 제도가 작동하지 않을 때 그 역할의 일부를 직접 수행하는 캠페인들은 다양하다.
이러한 시민저항은 각자의 지역에서 성공한 운동 전략과 경험을 서로 활발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더욱 효과적인 캠페인이 된다. 온라인 워크숍과 오프라인 훈련을 통해 서로의 역량을 키우고, 배운 전략을 각자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맞게 재조정하여 실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공유하는 학습과 확산의 선순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야말로 시민 사회의 활동을 더욱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앞으로의 과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국제 질서의 위기는 단순히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트럼프 현상에서 보듯, 각국의 국내 민주주의 위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군사주의와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는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민이 지탱하는 비폭력 국제 질서’를 새롭게 구축해야 할 때이다.

진정한 변화는 거대한 담론이 아닌, 우리 주변의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독립 언론 ‘웨이징 넌바일런스(Waging Nonviolence)’가 트럼프의 위헌적 지시에 맞서기 위해 시의회, 학교, 노조 등 지역 단위에서 저항하는 ‘4단계 전략 플레이북’을 제시했듯, 우리 역시 국제적 위기에 맞설 국내의 민주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 시민 사회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우리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드러내기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와중에도 무기 판매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국제 분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할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 연대의 망 구축하기: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전쟁과 제국주의 정책으로 고통받는 난민, 이주민들을 우리 사회 안에서 보호하고 지원하는 강력한 국내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국제적 불의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필수 과제이다.

– 비폭력 저항 역량 강화: 미국 사람들은 왜 트럼프를 두 번이나 뽑았을까 많이들 얘기하지만 한국 역시 박근혜도 뽑았고 윤석열도 뽑았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가 뚜렷해지고 이러한 국가 내부의 정당성 위기가 국제적인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위협에 맞서 국내 군사주의를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저항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의 군사주의는 이번에 베네수엘라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석 연료 채굴 및 기후피해 등 다양한 이슈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 장기적인 비전 제시하기: 단기적인 대응을 넘어, 군사주의 대신 시민의 힘과 인권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 질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꾸준히 행동해야 한다. 법이 침묵할 때, 우리 시민들이 그 법을 만들고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가, 정책, 엘리트 차원에서 탄력적 다자주의나 중견국 연합 등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되지만 평화운동이 생각하는 평화적 국제질서와는 조금 거리가 멀다. 궁극적으로 시민사회 내에서 군사화된 국제질서를 시민이 지탱하는 비폭력적 국제질서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패권국이 국제법에서 이탈하는 이 시점을 우리는 ‘끝’이 아니라 ‘전환점’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의 신제국주의적 질서를 넘어서는,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국제질서를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쇠퇴가 곧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제도적 실험과 권력 재조정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그 공간을 채워가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