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화(출판노동자)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생각했다. 와, 되게 크다. 그리고 되게 새빨갛다. 이건 디자인에 대한 감상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되게 크고, 되게 새빨간 이야기구나.
지은이 ‘또록’ 팀은 폐업에 맞선 투쟁을 벌인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취재하여 기록했다. 자동차 가죽시트를 만드는 사람들 ‘성진씨에스’,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사람들 ‘신영프레시젼’, 문구용 스티커를 만드는 사람들 ‘레이테크코리아’. 프롤로그에서는 대표적으로 이 세 회사 노동자들의 사례를 간략히 소개하고, 그 각각의 연표에 미처 담기지 못한 투쟁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풀어낸다.
닫힌 문 앞에 선 여성노동
“첫 직장은 봉제회사였다. 잠깐 다니다 관두고 방송장비를 조립하는 전자회사에서 결혼 전까지 일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집안을 돌볼 때에도 여러 가지 부업을 했다. ‘면봉 차곡차곡 담는 것, 머리빗이랑 자크, 애들 제과 슈퍼에서 파는 것, 마스카라 올리는 솔이랑 가방 만드는 것, 전자제품 호일 감는 것…’ 애들이 좀 크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46쪽
성진씨에스의 노동자 임은옥이 의자 시트를 만드는 재단실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거쳐온 노동 연대기의 ‘일부’다. 은옥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이 책의 다른 인터뷰이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되는 경험이다. ‘폐업’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갑자기 육중하고 절대적인 문이 탁 닫히며 이들의 노동이 단절됐다고 정리하기에는 뭔가 좀 석연치 않다.
이들은 공장에 들어오기 전에도 노동을 멈춘 적이 없다. ‘애들이 좀’ 클 때까지는 노동이 멈추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강도 높은 출산과 육아 노동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공장 문을 닫는다는 의미의 ‘폐업’은 오히려 이 여성들의 노동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한다.
폐업에 맞선 여성노동자들을 조명하는 이 책은 일차적으로 폐업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게 함은 물론,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사회에서 여성노동자에게 애초에 노동의 문이 열린 적이나 있던가? 멈추면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만큼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에게 노동은 언제나 ‘닫힌 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비숙련노동이라는 거짓말
그러나 레이테크코리아의 노동자 정해선이 증언하듯이, 이들의 노동에 대해 사장들이 하는 말은 업계를 막론하고 정말로 똑같다. “동네 아줌마들 데려다가 일 시켜줬더니”다. 공장 문이 닫히기 전에, 이 말과 인식 자체가 이미 굳건하게 닫힌 문이다. 책에 나오는 사례처럼 대규모 공장에서 자동차 가죽 시트, 휴대폰 부품, 문구용 스티커 만드는 일도 이런 취급을 받으니, 집에서 하는 부업이나 가사노동은 아예 ‘일’이 아니다.
“‘물건 하나가 나가더라도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던 해선 씨의 말과는 참 다른 인식이다. 우리는 제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도 모른 채, 손쉽게 타인의 노동에 ‘비숙련’, ‘단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96쪽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사거나 음료를 사 먹거나 할 때 포장에 ‘사람 이름’이 쓰여진 걸 간혹 눈여겨볼 때가 있다. 거기에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는 것이 왠지 좀 어색해서 웃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제품에 사람 이름(아마도 검수자) 써 있는 것이 왜 어색했을까? 아마도 ‘공장에서 찍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장과 사람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리가 어떤 노동을 ‘비숙련’, ‘단순’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나는 그 노동을 몰라’라는 자백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경력의 차이에 따라서 ‘비숙련 노동자’는 있을 수 있어도 ‘비숙련 노동’은 없으며 노동은 각각 종류가 다를 뿐이라고, 이 생각이 아직은 낯설지만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다.
내 노동을 예로 들어본다면, 나는 출판 편집 노동자다. 저자가 쓴 글을 매만지고 잘 배열해서 책 한 권으로 만들어낸다. 대충 이야기하면 이렇고, 세부적으로는 ‘해본 사람이 아니면’ 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노동이다. 하지만 어떤 사장다운 사장들에게는 그저 누가 해도 비슷한 ‘단순’ 노동, 그러니까 잘라도 상관이 없는 인력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의 가치를 줄 세우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자기 노동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이다. 해선이 “이름 석 자 적혀 나오지 않는 생산품에서 자기 자신을 찾”듯이, 성진씨에스의 노동자가 “가죽시트 뒷면의 바느질”의 디테일에서 자부심을 느끼듯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서 빛나는 부분을 발견한다. 내 노동이 남의 노동보다 고귀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노동에 들인 정성과 시간을 나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라는 ‘크고 붉은’ 세계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소재 중 하나는 역시 ‘노동조합’이다. 혹시나 이 책이 더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더 많이 팔리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노조 얘기가 너무 많아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에서, 그리고 이 ‘폐업 투쟁’에서 노조는 중요한 존재다.
나도 노동조합 투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도 산업별 노조에 속해 있지만 꽤 오래전 사업장 내 노조에서 활동할 때만큼 힘든 일은 없다. ‘나도 노조해봤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으면서도(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할 때마다 망설여지는 것은 노조 투쟁이라는 것이 절대 모두에게 동일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막론, 연차 막론하여 ‘사측’의 행태는 아주 지루할 만큼 동일하기 때문에, 노조 투쟁의 경험 역시도 절대적인 공감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선이 “싸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마음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 마음이 뭔지 어렴풋이 안다.
나는 이 책에 그 ‘노조하는 마음’이 절절히 드러나서 좋았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밤새 한탄할 수도 있지만 또 하루하루 신나고 돌아보면 자랑스럽기도 한 그 복잡한 마음을 여러 각도로 비추어준다.
노조를 왜 하나? 노조가 ‘내 편’을 들어주니까 한다. “내가 연약해서 못 이겨 먹으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사장 편이야. 당하지 않으려면 노조를 해야지. 노조는 그래도 우리 편이잖아.”(36쪽)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연대는 밖으로 뻗어가는 것이 속성이다. 내 이득, 우리 조직의 이득에서 멈추지 않고 더 넓게 보게 된다. “솔직히 나의 생계를 위해서 싸우지만, 100퍼센트 생계만은 아니거든요. 밑바닥 요만큼은, 작은 부분에는… 내 마음 밑바닥에 요만큼은 대의가 있는 거거든요.”(99쪽)
물론 노조를 한다고 뭐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노동자들에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찾다가 찾다가 막다른 곳에 왔을 때, 무슨 흥신소 찾듯이 (…) 노동조합이 해결사 노릇만 하면 흥신소와 다를 바 없지만, 노동조합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짜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연장을 만드는 곳”(172쪽).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조금 더 바라게 된다. 더 힘차게,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찾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며, 유용한 연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장이 좀 더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벼려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170쪽)
한편으로는 노조의 존재 자체가 지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통쾌함’일 때도 있다. “니가 사장이면 다냐. 처음이에요. 그때까진 ‘사장님’이라고 존칭을 써 가며 교섭했거든요.”(102쪽) 그로 인한 어떤 불이익을 다 떠나서 동등한 인간으로 마주 앉아 ‘사장 너’라고 부르는 순간, 이 순간은 노조 외에 그 어떤 것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으로서 사고하던 것을 넘어서 사회구조와 계급 전체에 대해서까지 사유가 뻗어나가기도 한다.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을 함으로써 가능했다. “그전에 어떤 때는, 내가 조금 더 배웠으면 안 힘들게 살 수 있었을까, 조금 더 날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제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좀 더 배워서 다른 사람보다 직급이 높거나 관리자가 되었다면, 나 역시도 노동자를 착취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55~56쪽)
그리하여 노조는 놀랍게도 ‘계속 있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한다. 사측과 그에 알게 모르게 동조하는 시스템은 죽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세계다. 아주 크고 새빨간 ‘노동조합’이라는 세계.
“지금 여기 농성장도 그래요. 누가 말리지만 않으면 계속 오고 싶어요. 그래서 희한해요.”(60쪽)

<회사가 사라졌다> 표지 이미지




![[성명] 평화활동가 두부의 완전 병역거부 선언을 지지한다 – 국회는 대체복무제 즉각 개선하라](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dubu-45x45.png)
![[보도자료] 군대도 대체복무도 거부합니다-평화활동가 두부(김민형)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20260223_051_DSC_6683-45x45.jpg)
![[취재요청서] 군대도 대체복무도 거부합니다-평화활동가 두부(김민형)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20240907_907행진_076_DSC_5591-45x45.jpg)
![[성명] 미얀마 군부 쿠데타 5년: 징병제 부활로 심화되는 인권 위기](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1/myanmar-45x45.png)
![[참가 후기] ‘사회에 대한 복무’로 나아가기 위해서 – ‘대체복무제도 개선방향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 후기](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IMG_8697-45x45.jpg)
![[평화를 살다] “요리하고 먹고 저항하라” – 팔라펠과 후무스](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5-45x45.jpg)
![[평화를 읽다] 역사를 품은 그림, 쓸쓸함을 알아차리는 다정함 – 『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를 읽고](https://withoutwar.org/www_wp/wp-content/uploads/2026/02/book-45x4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