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트럼프가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전쟁은 이제 이란 정권에게 진정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이란 민간인이 죽어가는 것을 감수할 것이고, 국가 인프라가 파괴되는 것도 견딜 것이며, 가능한 모든 표적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계속 발사할 것이다. 참고로 이 정권은 불과 몇 달 전에도 수천 명의 이란인을 직접 살해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만 명의 이란인들을 더 죽일 의향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이 전쟁이 얼마나 대재앙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3월 5일 뉴욕타임즈 헤드라인은 ‘트럼프, 이란 지도자 선출에 자신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해’였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 2011년 리비아… 미국 주도의 군사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그 자리에 민주주의는 들어서지 않았다. 혼란과 내전, 그리고 미국이 억압하고 조종하며 통제하기 쉬운 정부를 심으려는 시도가 뒤따랐다. 미국은 언제나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다루기 쉬운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타국 침공을 설계해왔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사우디, 이집트, 이스라엘 등 인권 탄압 국가들을 지원해오지 않았나. 이란 정부의 인권탄압이 사실이지만 이런 미국의 역사를 봤을 때 누구도 미국의 이란 침공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공격의 실제 목적은 패권 유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기보다 인프라를 파괴하고 사회를 분열시켜 이란의 국력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 같다. 중동에서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마지막 주요 세력을 꺾으려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오래 전부터 이란과의 전쟁을 원하고 있었다.

미국은 친미정부 수립의 야망을 드러내면서도 마치 이번 작전이 이란인들을 위한 것인양 호도하고 있다. 트럼프는 공격이 시작되고 이란 국민을 향해 ‘이 순간을 포착하고, 용감하고 대담하게 영웅적으로 나서서 당신들의 나라를 되찾으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침공이 시작되고 곧 테헤란 파스퇴르 지구 공습으로 이란 녹색운동의 지도자 미르호세인 무사비가 가택 연금되어 있던 주거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는 X(트위터)가 널리 퍼졌다. 해당 지역에 딱히 군사적 목표물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란의 반체제 인사들도 표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보인다. 이란 내에서는 2009년 녹색운동 이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십수 년에 걸쳐 축적되어 왔다. 그런데 폭탄을 쏟아부어서 이를 돕는다? 전쟁 중에 독재 정권을 내부에서 무너뜨리기는 극도로 어렵다. 외부의 군사 공격은 독재자에게 ‘외적의 침략’이라는 프레임을 제공하고, 이는 내부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며, 오히려 정권 결집의 빌미가 된다.

나는 이란 전문가도 아니고 이란의 반정부 운동가들처럼 목숨을 걸고 거리에 나선 적은 없지만 25년 넘게 운동의 반전평화현장에 있었던 활동가로서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자국 최대의 적이 우리를 응원하는 상황은 어떤 운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격은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내는 동원 전략으로는 가장 스투핏한 방법이다. 지금 이란 시민들이 다음 집회를 어떻게 조직할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오직 어디서 어떻게 피신할지,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만 신경 쓸 수 있다.

만약 폭탄을 퍼부으면서 민주화를 부추기는 이 모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라크를 보라. 리비아를 보라. 아프가니스탄을 보라. 미국은 이란의 민주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 세력의 토대까지 폭격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위협인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와 테헤란을 폭격하며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상하는 동안, 미국과 영국의 주류 언론은 여전히 이란을 ‘중동지역의 위협’으로 묘사하고 있다. 핵무기를 실제로 보유한 것으로 광범위하게 알려진 것은 이스라엘이지만, 핵 위협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란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진실과 자유가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마 오웰이 살아 있다면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충실히 구현되는 세상을 보고 기함을 했을 것이다.

이 언어의 전도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가자에서 이스라엘과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그 어떤 것보다도 전쟁 범죄를 정상화했다. 이제 이스라엘과 트럼프는 그 모델을 이란 민간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3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란에서만 13건의 의료시설 공격을 확인했고, 레바논에서도 병원과 1차 의료센터가 강제로 폐쇄되었다. 국제인도법은 의료시설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공격하는 행위는 명백한 전쟁 범죄다. 그러나 가자에서 반복된 병원 공습이 아무런 실질적 책임 없이 지나간 이후 이 범죄는 이미 ‘정상’의 범주에 편입되었다.

전쟁의 피해는 병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분쟁과 환경 관측소(CEOBS)가 공격 개시 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이라크·걸프 지역 전역에서 이미 120건의 환경 피해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의 군사 기지와 석유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다이옥신을 포함한 독성 물질을 대기 중으로 방출하고 있다. 타브리즈 미사일 기지에서는 극도로 유독한 액체 추진제가 누출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통행량은 80% 감소했고, 5척의 유조선이 공격을 받아 걸프해의 해양 오염 위험이 높아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나탄즈 핵 연료 농축 시설 입구 건물의 피해를 공식 확인했다. 이것이 개전 72시간의 기록이다. 이 언어의 전도는 단순한 오보나 편향이 아니다. 전쟁을 팔기 위해 작동하는 프레임이다.

 

이란 인권 문제와 반전은 충돌하지 않는다

이란 정권의 인권 침해는 실재하는 사실이다. 여성의 권리, 정치범 탄압, 시위대에 대한 폭력 모두 엄중히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이 군사 공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란 시민이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에 서는 것이 된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이란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폭격 속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정권의 수뇌부가 아니라, 거리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란인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이미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의사를 표명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미국이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고려하는 모든 나라가 이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결국 ‘강력한 핵 억제력만이 체제 생존을 보장한다’는 기존 서사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전쟁은 핵 비확산 노력 전반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국제법은 늘 강대국에 의해 무시당해왔지만, 지금처럼 그 공백이 심화된 시대도 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우선, 한국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침묵하는 것은 공모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명확히 비판하고,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며, 국제법과 외교에 기반한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

미국의 평화단체들은 지상군 투입을 시사하고 있는 정부에 맞서 미군들의 병역거부를 호소하고 있다. 불법적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병사 개인의 도덕적, 법적 책임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한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인도법이 오랫동안 확립해온 원칙이다. 미국이 비밀리에 이란 침투용 쿠르드 반군의 무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고 지상군 투입에 이들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병역거부가 꼭 이란에 보내지는 군인들의 거부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은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고 이에 반발한 강철민이라는 이병이 군대를 이탈해 병역거부를 한 적이 있다. 강철민은 파병군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병역거부는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국내 반전평화운동의 강력한 모멘텀 중 하나가 되었다. 전쟁을 저지르는 국가 내부의 정부 비판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전쟁은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현재 이 대학살을 가장 현실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 항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BDS 운동, 무기 수출 반대 캠페인, 국내 사법체계를 활용한 고소, 고발, 국제구호선단 항해 등을 통해 다양한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해왔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한국이 어떤 요구를 미국으로부터 받게 될지 알 수 없으나 2003년보다 더 많은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전쟁을 끝낼 힘은 결국 우리에게서, 그리고 전 세계 시민의 연대 압력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