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연 (활동가)

 

전쟁없는세상은 이상한 곳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겨우 3개월 차 회원에게 22년 만에 처음으로 열었다는 전쟁없는세상의 후원의 밤과 전쟁없는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니! 전쟁없는세상이 지금까지 진행해온 병역거부 운동이나 무기감시 캠페인, 비폭력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저 홈페이지에 있는 상투적인 설명말곤 할 수 없는데.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는 전쟁없는세상에 대해서 말할 수 밖에.

세상은 근래 더 어지러운 것 같다. 요순시대 이후로 언제 세상이 어지럽지 않았던 때가 있었느냐만은, 작년 12월부터 세상이 뒤집힌 채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메일함을 열면 언제나 팔레스타인 소식과 이 세상에는 혐오가 난무한다는 소식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비폭력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전쟁 없는 세상이 오긴 할까?’ 수많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올해 칸 영화제에서 <사랑하면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유명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인터뷰를 만나게 되었다.1) “감독은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이다(Tenderness is the new punk.) ”라고 이야기하며 양극화, 분노, 그리고 남성 우월주의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전쟁없는세상을 떠올렸다. 내가 만난 전없세야 말로 다정함이 새로운 저항이라는 걸 몸소 실천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2025 전쟁없는세상 후원의 밤 “평화의 항해”에서는 전쟁없는세상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새로운 직접행동을 시도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곳,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곳,
삶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지만 엉뚱하고 엉성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체

여기에 전없세의 가장 중요한 설명이 빠졌다. 다정함으로 저항하는 곳.

평화운동이 왜 다정한 저항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누군가를 넘어뜨리고 짓밟기 위해, 오로지 강자만 살아남아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더는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시작돼서 그렇다고. 더 많은 힘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끝까지 묻는 운동이라고.

무기감시는 숫자와 제도, 계약서와 보고서를 들여다보는 지루하고 끈질긴 일이다. 그 무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떤 삶을 파괴하는지 끝까지 추적하는 일. 눈에 띄는 성과도, 즉각적인 보상도 없지만, 그 무기로 다칠 사람의 얼굴을 끝내 상상하는 일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니라, 가장 멀리 돌아가지만 완전히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병역거부 역시 마찬가지다. 총을 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일은, 동시에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그리고 어떤 사람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 앞에서 내가 드는 총에 맞을 사람도 나만큼 인간이라고 외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전쟁없는세상의 운동은 늘 느리고,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느림은 무력함이 아니라, 쉽게 누군가를 버리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적을 만들지 않고, 승리를 위해 싸우지 않으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살려두려는 방식의 저항. 나는 이것이 다정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기 감시한다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나 병역거부한다고 전쟁 없는 세상 만들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우리를 살리고, 동료를 지탱하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는 걸 보았다고 답하겠다.

그리고 그 힘을 나는 ‘평화의 항해’에서 마주했다. 오래 전부터 전없세와 함께해온 사람들, 이제 막 회원이 된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처음 이 자리에 온 얼굴들까지.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 모두 같이 웃고 있었다. 시와님의 공연 속에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결국 나중에 다같이 몸을 두드리고 아일랜드 춤곡에 맞춰 춤을 추면서.

뿐만 아니라 전없세의 일상에서도 그런 힘을 실감하게 된다.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 회원이 아니어도 언제든 같이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모임, 사무실에 연락 없이 찾아가도 과자와 온갖 연대 스티커를 쥐어주며 수다를 같이 떠는 활동가들, 어떤 행사든 절대로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는 그런 다정함들. 이 사람들의 다정한 저항은 언젠가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어지러울 것이다. 21세기의 우리는 언제나 시체와 핏물이 가득한 뉴스를 보면서 비폭력과 평화를 주장하고 실천할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자칭 페미스트들도 군대 안 간 게 남자냐, 남자답지 못하다 같은 말을 할 거고 현실에선 더 못된 말들과 경멸을 마주하게 되겠지. 우리는 그럴 때마다 ‘다정함이 쓸모가 있을까?’, ‘어떤 소설의 제목처럼 다정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다정함으로 싸워나가면 전쟁이 없는 세상이 오긴 할까?’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의 항해 앞에는 수많은 회의감과 불안과 그리고 때때로 공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가 전쟁없는세상에서 다시 만난 다정함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다시 만난 저항, 너무 약해보여서 이걸로 잽을 날려도 세상이 쓰러지기는 커녕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때때로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내가 배운 가장 끈질기고 서로를 살려내는 저항의 얼굴을.

P.S. “평화의 항해” 특별 모금 캠페인은 20일까지 입니다. 여러분, 후원에는 결코 늦은 시간이 없다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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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enderness is the new punk” says Joachim Trier, director of Cannes Competition title ‘Sentimental Va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