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소연(연극창작자)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나의 외할머니 박영애, 외할아버지 이종민. 자신의 현재로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를 다룬 김중미 작가의 에세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를 읽는 동안, 나는 그들을 무수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구십이 넘어 방광암을 앓게 되고 1년이 못 되어 세상을 떠난 우리 외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먼저 보낸 뒤 몇 년이 안 되어 인지장애를 얻고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우리 외할머니. 김중미 작가의 엄마처럼 나의 외할머니도 늙어서 기억을 잃었다. 또 그보다 작가의 부모처럼 우리 조부모도 피란민이었다. 피란을 내려와 인천을 삶의 터전으로 잡았던 그들의 이야기가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 것은 서울로 시집간 엄마가 결혼생활로부터 택한 망명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나고자란 곳의 이야기를 통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 대해 쓰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를 만나게 되었다. 동두천과 인천을 오갔던 김중미 작가의 가족사는 전쟁과 분단의 역사와 한몸처럼 얽혀 있다. “동두천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던(20) 아버지, 그런 동두천으로 모여든 이웃들 사이에서 삶의 활기를 얻었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말이다. “엄마의 엄마의, 그 엄마의…”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 말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시간을 거슬러,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야기 또한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와 친척들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일찍이 사회주의를 접했던 신여성 외할머니의 일기와 소설은 세월에 치이다 사라져버렸다. “배가 고파 보이는 사람은 누가 됐든 상관없이 불러서 밥을 먹였”던(66) 친할머니의 기억은 한번도 기록된 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멀게 느껴지는 과거가 실은 현재와 퍽 가까이에 놓여 있는 실재라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또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기억되는 것과 망각되는 것 또한 퍽 가까이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 바깥을 지향하는 삶에서 맞닥뜨린, 부모의 질병과 죽음 앞에서
김중미 작가는 빈민운동으로 시작하여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평생을 살아온 활동가다. 그는 공부방 ‘기찻길옆 작은학교’ 어린이들에게 ‘큰이모’다.
“엄마와 할머니들이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잃어버리고 평생 다시 잇고자 애썼던 방식. 그 방식을 현실에서 복원하는 데는 삶의 자리가, 공동체가 필요했다.” (336)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토대가, 자신이 미워하고도 사랑해온 부모의 삶과 역사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엄마 아버지를 무조건 신뢰하고 사랑하던 시기를 지나 모든 것을 부정하던 시기와 의심하던 시기가 내가 어른이 되는 데 꼭 필요했다”는, “그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엄마 아버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160)는 통찰에 동의한다. 누구나 부모를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도, 사랑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만 너무 미워하고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때는 있을 것이다. 작가의 가족과 어머니를 힘들게 했으면서도 작가에게 귀한 보물로 남기도 한 아버지의 유산, ‘낭만’ 같은 것 말이다.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점은, 부모의 질병과 죽음 앞에서다. 자본주의 바깥의 관계와 가능성을 지향하는 삶을 살면서,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사회 안에서 그는 부모의 늙음과 죽음을 맞이한다. 늙고 병들어 가는 부모를 돌보는 일의 지난함과, 부모의 삶이 너무나 나의 판단에 의지하고 있다는 두려움, 나와 형제자매들의 판단이 최선의 것인가에 관한 중압감,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부모의 돌봄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미안함 같은 감정들이 에세이 곳곳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의 이야기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늙은 부모를 돌보고 보내는 일을 기록하며, 시간을 거슬러간다. 과거를 여행한다. 그들을 여행한다.
“그(역사가)의 이야기가 곧 그의 해석이다”
나는 출판사 허스토리를 만들면서, 자녀의 의뢰를 받아, 노년들의 생애를 구술을 통해 듣고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해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가 이야기이자 해석이라면 나는 어떤 역사가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우리가 역사가라면, 어떤 역사가가 될 수 있을까.
역사가의 일은 흔히 여행에 비유되곤 한다. 나치 치하의 독일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던 유대인 출신의 지식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저서 『역사 : 끝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역사가의 여행은 현재에서 출발하지만 현재를 온전히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역사가가 출발했던 현재와 그가 돌아오는 현재는 같은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행 전의 역사가와 돌아온 후의 역사가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역사가의 축적된 인생 경험은 그의 역사 해석에 반영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이야기가 곧 그의 해석이다”(크라카우어 112).
나는 『엄마만 남은 김미자』가 역사가가 떠난 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김중미 작가는 자신의 현재와 자신의 과거, 가족의 과거를 계속해서 오간다. 그의 가족사가 단단히 얽혀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분단과 냉전은 이 여행의 배경이면서도 자꾸만 주인공처럼 출몰한다. 작가의 형제자매들도 저마다가 주인공인 등장인물들이다. 그들과 함께 아버지 생의 마지막을 건사하며 아버지라는 하나의 세계를 떠나보내는 이야기는 이 에세이에서 가장 슬픈 기록이기도 하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는 역사(과거)를 바라보는 일과, 관계맺고 돌보는 ‘함께’의 삶,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느슨하게 연결되며 서로를 떠받치고 껴안고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역사가가 될 수 있다면, 그 일은 현재를 온전하게 살아내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일은 현재라는 종착지, 크라카우어의 말을 빌면 “역사가의 이념”(크라카우어 113)으로 돌아오는 일일 것이다. 현재를 사랑하고 온전히 살아내는 존재로서 우리가 과거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평화라는 이념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역사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이 유실되는 곳에서, 우리를 역사 안의 존재로 인식하는 일
나는 다행히 외할머니가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그의 말들을 기록해놓았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으로 만든다며 잃어버리고 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결혼식 사진이 있다. 책에는 사진을 스캔해서 넣었는데, 원본은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사진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러쥐려 해도 자꾸만 빠져나가고 마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유실되는 기억. 내가 미처 묻지 못한 친할머니의 기억이, 역사의 한켠이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만 일에 대하여. 작가의 할머니의 일기가 쓰레기더미와 함께 사라져버린 일에 대하여. 작가의 어머니와 우리 외할머니가 기억을 잃는 병을 앓게 된 일에 대하여. 망각은 덮쳐온다. 그렇기에 우리가 역사가가 되는 일은 다만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아 있는 기억을 통해, 기억이 사라지는 자리에 그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화하기 위해서다. 기억과 망각이 가까이 있듯, 현재와 과거는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죽은 존재들의 무언의 호소에 민감해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미래가 과거의 미래, 곧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크라카우어 22)
내가 앞서 인용한 지식인, 역사는 지금의 장면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진을 닮았다고 말하는 이 유대인 지식인은 딱딱한 문장들 사이에 괄호를 집어넣고, 그 안에 위와 같이 쓴다.
물론, 사라지는 것들을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고,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있다. 그런데 그 일과 더불어, 소실되고 유실되는 기억들, 기억이 빠져나간 자리들을 어떻게 의미화해야 할까 하고 질문한다면, 크라카우어의 말처럼 우리 자신을 역사 안의 존재로 인식하는 일에서 바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과거와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기억의 빈 자리들을 응시하는 일은, 우리 역시 머지않아 사라질 존재들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과거와 우리의 관계에 관한 이러한 시사점은 미래와 현재의 관계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크라카우어의 인용한 책 『역사』 역시, 미완의 원고를 모아 그의 사후에 친구들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렇게 해서 쓰인 책의 제목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미자 씨는 모든 걸 다 잊었어도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김미자 씨의 딸 김중미 작가는 마음이 아프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 제목에서 작가의 엄마인 김미자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에는 앞서 소개한 다사다난한 과거와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김미자 씨의 삶을 쓰는 일은 작가 자신의 현재에서 출발하는 여행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김미자 씨가 살아온 시간과 그가 연루된 관계들의 이야기를 다 풀어 놓아야 하는 일이었을 터다. 과거와 현재를 몇 번이고 오갔던 작가의 여행이 이해되었다. 작가가 시작한 이 이야기가, 앞으로는 어디로 가닿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현재와 뒤죽박죽 뒤얽힌, 나의 가족 이야기를 언젠가는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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