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맹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탐페레 평화연구소에서 공부 중)

전쟁없는세상 : 핀란드에서 공부 중인 병역거부자 날맹이 두부의 병역거부 소식을 듣고 지지하는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특히 날맹이 살고 있는 핀란드는 대체복무까지 거부하는 완전병역거부자들이 많이 있고 병역거부운동에서도 완전병역거부를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데요, 핀란드의 군사주의와 병역거부운동 그리고 남성성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그 안에서 완전거부의 맥락과 의미를 소개하는 글을 써주었습니다.  (메인 사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체복무법 개정 논의기구에 대체복무 당사자 및 시민단체 참여를 막겠다고 한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2025년 8월, 헬싱키. 사진: AKL

 

핀란드에 공부하러 와서 네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키워드 삼아 핀란드 병역거부자들을 인터뷰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대체복무로 돌봄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핀란드 군사주의와 병역거부의 맥락을 소개하면서, 이번에 두부 님이 선언한 완전거부에 연대하는 메시지를 전해보려 합니다.

 

핀란드에서 군대는 민주주의 수호자

전쟁없는세상 20주년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핀란드 활동가가 잘 설명해준 것처럼, 핀란드는 1917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지정성별 남성 대상 징병제를 도입하여 운영중입니다. 2차 대전 기간 중 소련의 침략에 맞서 용감한 군인들이 나라를 지켜냈다는 국가적 서사와 맞물려 징병제는 핀란드 남성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1) 물론 헬싱키 같은 대도시에선 더 이상 ‘군대=진짜 남자’ 류의 도식이 작동하지 않지만,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시골 동네에서 자란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마을에서 유일한 대체복무자가 되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음을 얘기해줬습니다. 호모포비아와 결합한 ‘대체복무자는 다 게이’라는 말도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들어본 것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군대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존재이자 그래서 그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힘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2) 60년대부터 매년 외교, 안보, 국방 정책에 관한 국민들의 견해를 묻는 설문조사 항목 중, ‘나라를 지킬 의지’에 그렇다 응답하는 비율이 70-80% 수준으로 꾸준히 집계되고 있습니다. 현행 남성 징병-여성 자원입대 시스템에 대한 지지도 또한 70% 이상으로 꾸준히 보고되고 있는데요 (현행 남성징병에 반대 응답 비율은 주로 좌파연합당과 녹색당 지지자)3), 이런 맥락에서 70, 80년대 핀란드 병역거부자들의 수기4)에 나온, 자신의 대체복무 선택을 부친이 대놓고 막아서진 않았지만(사상과 양심의 자유!) 대신 ‘벌’처럼 친척 어르신의 참전 경험담을 들어야 했다는 일화가 이해가 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참전용사에 대한 칭송이 보다 노골적으로 이뤄진 시기로 평가되는 90년대는 조부모 세대의 전쟁 경험과 고난 서사에 대한 수용도 또한 예전보다 높았다고 합니다.5) 이때 10대 시절을 보낸 병역거부자는 살상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윤리적 이유로 군복무는 거부했지만, 자신이 자라며 들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쟁 시절 고생과 헌신을 알기에 그들에게 봉사하는 차원에서 요양원 대체복무를 선택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너 같이 다 군대 안 가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 목숨 바쳐 싸운 옛날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식의 반응이 아직 흔했다던 시절에 군대를 거부하는 선택을 내렸지만, 나라를 지킨 고마운 세대들에게 갚는 느낌으로 요양원을 택했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남자만 가는 군대는 차별, 그래서 병역거부

핀란드에서 징병통지서는 만 18세가 되는 해에 날아오는데, 대략 9월부터 12월까지 지역별로 자신이 받은 통지서를 들고 참석하는 소집행사 일정이 잡힙니다. 핀란드 국방부가 운영하는 징병 관련 웹페이지나 징병소집일 행사에서는 대체복무 옵션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과 군사주의가 공존하는 대표적 풍경! 핀란드 국방부 징병안내 링크), 이곳 병역거부 단체인 AKL (Aseistakieltäytyjäliitto)은 지역별로 캠페인을 조직해서 징병소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액션을 매년 진행해왔습니다(AKL 홈페이지 참고). 제가 핀란드에 와서 처음 결합한 AKL 행사이기도 하고요.

 

핀란드 징병소 앞 AKL의 캠페인 모습 (사진: AKL)

핀란드 징병소 앞 AKL의 캠페인 모습 (사진: AKL)


AKL에서 제작한 유인물을 읽다가 제 눈길이 멈춘 곳은 병역거부를 정당화하는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된 ‘성 불평등’이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성평등과 군대 조합은 ‘여자도 군대가라’로 귀결되는 안티페미니즘의 레퍼토리였기에, 핀란드 병역거부자들은 어떤 맥락에서 젠더와 평등을 언급하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남자만 가는 군대 시스템은 불평등하다, 그러니 ‘여자도 가라’가 아니라 성별적 시스템에 도전하기를 택한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던 거죠. 사람마다 활동 여부나 고민해온 세월에 비례하여 이 군대와 젠더 관점이 다양하게 나왔지만, ‘용감한 남자’와 ‘보호받는 여자’라는 젠더 고정관념에 기댄 남성 징병이 사라질 때 성평등에 더 가까워진다는 골자는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대체복무자가 병역거부자는 아닌 핀란드

핀란드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심사하는 기구가 1931년 대체복무 도입 때부터 존재하다가 1987년에 사라졌습니다. 80년대부터 병역거부 운동을 해온 활동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이 냉전 맥락 속에 핵무기 위협에 반하는 평화운동이 활발했던 때이자, 반군사주의를 내건 완전거부자들이 많이 등장했던 때였습니다. 대체복무 기간과 처우에 항의하는 대체복무자들의 파업과 이에 연대하는 완전거부자들의 단식 투쟁도 80년대 중후반 90년대 초반에 활발히 전개되었고요. 간단한 서류 작성만으로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윤리적, 정치적 신념이 아닌 학업이나 취업 연관성 등 실용적 이유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었고, 이에 자신을 병역거부자로 정체화하지 않는 대체복무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대체복무센터 입소자 동기 조사 2015년 보고서).

최근엔 연간 2천 명 가량이 대체복무를 신청하는데, 이 중 절반 가량이 군복무를 시작한 뒤에 전환신청을 해서 넘어온 경우입니다. 이 경우 남은 군복무의 두배 기간을 대체복무로 갈음합니다.6) 완전거부는 대체복무를 하다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남은 대체복무 일수의 절반이 형기로 계산되고, 완전거부자들이 교도소가 아닌 전자발찌를 찬 형태의 가택수감(낮에는 미리 신고한 뒤 학업이나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을 택할 수 있는 옵션이 2011년에 도입되었습니다. 형기를 남은 대체복무일의 1/2로 계산하는 법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대체복무일 하루가 남았을 때 완전거부 의사를 밝히고 법정투쟁을 이어간 법대생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도 연구 인터뷰 과정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AKL은 지역법원에 기소된 통계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완전거부자의 숫자를 어렴풋이 추측하고 있는데, 최근 수치는 매년 30명에서 50명 사이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1992년 대체복무 없이 바로 완전거부를 했던 AKL 활동가 Kaj의 회고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을 당시 분위기 속에 자신의 부모님은 자식의 행동을 ‘비밀스럽게 자랑스러워했고’, 한편 자신이 형벌을 감수한다는 이유로 ‘선택에 책임을 지는 남자다운 행동’으로 칭송해주는 군사주의자 마초들도 많았단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자신의 병역거부가 ‘대안적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긴장 또한 늘 있었다는 얘기를 덧붙였고요. 여기에 더 자세히 적긴 어렵지만, 그가 30년 긴 세월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의 맥락적 위치와 그에 따른 자기 행동의 의미를 살필 줄 아는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라핀야르비에 있는 대체복무센터 풍경. 90년대 소말리아 난민 수용소로, 그 이전엔 알콜중독 재활센터였던 터에 자리잡고 있다. 대체복무센터 홈페이지 참고.

라핀야르비에 있는 대체복무센터 풍경. 90년대 소말리아 난민 수용소로, 그 이전엔 알콜중독 재활센터였던 터에 자리잡고 있다. 대체복무센터 홈페이지 참고.

 

전쟁과 살상에 무던해지지 않으려는 선택

러-우 전쟁이 발발한 22년 전후로 대체복무 신청자나 완전거부 숫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지만, 예비군 거부 연간 신청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약 3800명). 예비군 거부자가 늘어나자 국방부 장관이 예비군 거부를 금지시키겠다고 발언을 했다가 도리어 대체복무센터로 접수된 예비역 대체복무 신청서가 급증한 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고요 (관련 AKL 논평). 이는 핀란드 주류 정치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를 지킬 의지’가 무색하게도 전쟁과 폭력을 실감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선택 또한 존재함을 뜻합니다.

전쟁 발발 이후 나토(NATO) 가입여론이 순식간에 확 높아진 데에서 드러나듯 핀란드는 급격한 군사화가 진행중인데요, 산타 마을과 멀지 않은 라플란드 지역에 훈련을 명분으로 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협정이 발효되어 시행중이고,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멀지 않은 도시(Mikkeli)에 나토 지상사령부 본부가 최근 새로 설치되어 운영중입니다. 이에 더해, 변화하는 안보 상황을 명분으로 현재 50세인 예비군 복무 기한을 65세까지로 늘리는 법이 통과됐고요. 참고로 최근 징집되는 인원은 연 2만명 남짓이고, 예비군 규모는 90만(핀란드 인구는 550만)입니다. 이런 변화들은 단지 극우보수 정치인들이 주도했다기보다는, 핀란드 사회가 피부로 느끼는 전쟁의 공포가 순식간에 지배적 정서로 자리잡으며 촉발된 군사화의 과정이자 결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두부님의 소견서에 인용된 “전쟁은 용감함이 아니라 공포감으로 하는 것이다”는 말이 울림 있게 다가왔습니다. 당장 가까이에 언제 쳐들어와 우리를 해할지 모르는 ‘적’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떤 반응이 더 익숙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으로 읽혔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따르는 이곳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반군사주의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본능적 공포로 어떻게 순식간에 흐릿해졌는지를 포함해 서로 주고 받았던 편지를 소개합니다. 자신들의 연구 대상인 전쟁과 폭력이 막상 자기 일상으로 훅 들어왔을 때 무력해졌던 순간을 돌아보는 동시에 자신들은 전장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 비해 여전히 ‘안전한’ 곳에 있다는 특권적 위치성을 성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반군사주의 페미니스트 분석과 실천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군사화되는지를 살피는 한편 전쟁과 폭력이 어쩔 수 없다는 군사화의 논리에 저항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요. 이를 두고 ‘전쟁의 현실을 모르는 나이브한 소녀들의 공상’이라 비난하는 목소리가 바로 전쟁을 존속시키는 토대라고 설득력있게 말합니다.7)

최근 인터뷰에서 만난 핀란드 완전거부자는 자신의 거부가 사회 시스템에 대한 항의(protest) 같은 거라고 했는데요. 끝나지 않는 전쟁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자신은 이 시스템에 저항자가 있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요. 이에 더해 자기는 가택수감 대신 교도소 수감을 택할 것이라고, 병역거부자를 가둬 둠으로써 국가가 지출해야 하는 재정에 조금이라도 더 타격을 입히고 싶다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걸로 세상이 바뀌겠냐 헛웃음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소견서가 AKL을 통해 전파됐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를 얻었던 제가 다시 그 행동의 의미를 조명하며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하게 됐으니, 이 완전거부자의 행동을 마냥 무의미한 것이라 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25년 전 병역거부 첫 공개 기자회견이 한국 사회에 반향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번 두부 님의 병역거부가 ‘평화를 지키는 군대’라는 통념을 다시금 환기하는 사회적 단초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대를 거부하는 것을 고작 ‘대체복무’로 축소시키는 통념, 대체복무제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시혜적 관점, 대체복무가 군복무 보다 길고 고돼야 한다는 처벌적 발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드러내는 행위로서요. 앞으로의 지난한 법정 투쟁이 고되겠지만,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굳건히 앞으로 시간들 잘 헤쳐 나갈 수 있길 응원합니다.

 

각주

  1. Ahlbäck, A., & Kivimäki, V. (2008). Masculinities at War: Finland 1918–1950. NORMA, 3(02), 115–131. https://doi.org/10.18261/ISSN1890-2146-2008-02-04; Hart, L. (2023). Fostering Fortitude: Patriotism and Resilience as Civic Piety in Textbooks of National Defense Courses in Finland, 1967–2018. Journal of Political & Military Sociology, 49(2), 170–194. https://doi.org/10.5744/jpms.2022.2003
  2. Kaarkoski, M., & Häkkinen, T. (2023). Legitimacy of Conscription in Democracy. Journal of Political & Military Sociology, 49(2), 195–218. https://doi.org/10.5744/jpms.2022.2004
  3. Advisory Board for Defence Information. (2025). Finns’ opinions 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national defence and security (No. 2025:3; Bulletins and Reports). Ministry of Defence. https://urn.fi/URN:ISBN:978-951-663-380-3
  4. Pesonen, P., & Sannikka, M. (2018). Aseettomat kädet : muistoja aseistakieltäytymisestä [Unarmed hands : memories of conscientious objection]. Työväen Arkisto.
  5. Kinnunen, T., & Jokisipilä, M. (2012). Shifting Images of “Our Wars”: Finnish Memory Culture of World War II. In T. Kinnunen & V. Kivimäki (Eds.), Finland in World War II: History, Memory, Interpretations (pp. 435–482). BRILL. https://doi.org/10.1163/9789004214330
  6. 현재 군복무가 6개월 (특수부대나 부사관은 최장 12개월)인 반면 대체복무는 기간이 마지막으로 줄어든 2008년 이후 12개월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AKL 홈페이지 참고.
  7. Hast, S., Kotilainen, N., Seppälä, T., Särmä, S., & Vastapuu, L. (2024). Making feminist sense of militarisation of the mind. Critical Studies on Security, 12(3), 229–234. https://doi.org/10.1080/21624887.2024.2358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