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소연(연극창작자)
수라갯벌 살아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날
작년 여름, 가장 더운 팔월의 중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군산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도 걸었고, 비가 퍼붓는 날도 걸었다. 새 모양으로 만든 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었고, 깃발이나 손피켓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북을 치고 꽹과리를 쳤고, 때로는 노래를 불렀다.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그들 행진의 맨 앞에는, 종이로 커다랗게 만든 새를 나르는 자전거가 있었다.
그 새의 이름은 큰뒷부리도요. 그들은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꼬박 일주일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날아간다. 아니다. 실은 딱 한 군데 쉬는 곳이 있다. 군산의 수라 갯벌이 그곳이다. 군산에서 서울까지 걷던 그 사람들은, 수라 갯벌을 메우고 그 위에 공항을 짓는다는 정부의 계획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그 재판의 판결이 있는 날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걷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은 ‘새, 사람 행진’. 사람들은 새들을 대리하여 새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나도 며칠인가를 따라 걸었다. 새 모양 모자도 같이 쓰고. 그 길에서 함께 불렀던 노랫말.
수라갯벌 살아 있다, 신공항이 웬말이냐.
그 ‘살아있다’던 수라갯벌에, 드디어 해가 바뀌고 날을 잡아 가볼 수 있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의 ‘수라갯벌에 들기’ 행사를 통해서였다. 수라로 가는 길, 내가 본 것은 여전히 물길을 메우는 기계들과 죽어가는 바다였다. 작년에 함께 걸었던 사람들은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였지만, 정부가 항소해 아직 사업 취소가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송에서 승소하였지만 그것은 신공항 사업에 대한 것이고, 새만금 전체에 대한 개발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본 것은 새만금을 메우는 공사 현장이었다.
신공항은 수라갯벌을 메우고 그 땅에 세워진다는 계획이고, 수라는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다. 인간이 아무리 죽이고 메워도, 수라에는 생명들이 살아가는 흔적이 소란하게도 남아 있었다. 크고작은 새들의 발자국과 먹이 사냥 흔적, 게들의 흔적, 삵과 수달 들의 발자국들. 빼곡했다. 이래서 수라갯벌이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구나. 수라갯벌이 살아 있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그곳에 당도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수라갯벌이 살아 있다는 말은, 그러니까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처절한 외침이다.

수라갯벌에서 찍은 발자국 사진
600살 팽나무 아래 모여 평화를 말하는, 한 세기도 살지 못할 사람들
그 수라갯벌을 마주한 하제마을에, 600년을 살아온 팽나무가 서 있다. 지금 하제마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때 3,000여 명이 넘게 살며 어업으로 풍요로웠던 마을이지만, 주한미군 기지가 확장하며 주민들이 이주를 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팽나무 홀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미군 주둔을 위해 비워진 땅. 평화를 염원하며 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팽나무 아래 한 달에 한 번 모여 ‘팽팽문화제’를 연다.
새만금에 공항이 필요할까. 군산공항의 높지 않은 이용률, 그리고 기존 군산 미군기지와의 거리가 불과 1.35km라는 것 등을 고려할 때, 수라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정부가 갯벌을 메우고 짓는다는 신공항이 사실상 미군기지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새들이 날아드는 곳에 공항을 짓는 것은, 새들에게도 사람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생명의 터전인 갯벌을 죽이고 군사시설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수라를 지키겠다고 땡볕 아래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농성장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싸우고 또 싸운다. 한 세기도 살지 못할 사람들이, 600살의 팽나무 아래 모인다. 600살의 팽나무는, 그저 오래오래, 거기에 있다.
황석영의 신작 『할매』는 그 팽나무의 이야기다. 나무의 시간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사는 존재-인간-들이, 자신의 시간을 겸허히 여기며 다른 존재와 함께 사는 일에 시간을 내어준 이야기다. 또 그들보다 더 짧은 생을 사는 존재-새-들이, 온몸을 다해 살아간 이야기다. 그 모든 존재들이 함께 지금 오늘을, 그리고 아마도 내일을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그 팽나무의 시간 동안, 팽나무가 내려다본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는, 여기 이곳의 땅 위에 공존한다.

하제마을 팽나무 아래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팽팽문화제. 2025년 8월 23일 토요일, 56회 팽팽문화제에서.
짧은 인간의 생을 경유하며 이어지는 저항의 역사
인간들의 역사에서, 권력과 불평등은 폭력과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만든다. 생명들은 죽음을 당한다. 물이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들은 비가 오자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그대로 말라 죽어버린다. 소설 속 조개들의 죽음은 무언가를 비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생명의 죽음 그 자체다.
권력과 불평등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이들은 늘 존재했다. 자신의 몸을 생명들에게 내어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 수행자.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져 내려오며 당골네로서 할매나무들을 모신 세습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고 그 믿음을 지키려 죽음을 피하지 않은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 평등의 기치로 일어나, 외세를 불러들인 권력에 학살당한 동학농민군. 그리고 군사 주둔과 개발의 움직임 속에서, 지금까지 수라와 팽나무를 지키는 사람들.
조선의 권력자들은 평등과 삶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군대를 스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을 무너뜨린 제국주의 일본은 군산 바다를 메워 육군비행장을 지었다. 이때 상제마을과 중제마을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육군비행학교를 만들어 태평양 전쟁을 위해 가미가제를 훈련시켰다. 독립 이후, 일본이 구축해놓았던 군사적 토대는 미군에게 인계되었다. 그리고 하제마을이 사라졌다.
산을 파서 바다를 메우는 일을 막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유 방지거(프란체스코를 우리말 표기 방식으로 적은 이름) 신부와 배동수도 있다. 소설 속 인물인 그들의 실제 모델은 문정현 신부와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공동단장이다. 사람이 전쟁을 일으키고 생명을 탄압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권력과 자본 대신 생명과 평화를 선택한다. 어떤 사건이 불쑥,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2026년 생명을 지키는 일이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믿음은, 18~19세기 천주교 박해에서 부정당한, 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믿음과 얼마나 이어져 있을까? 소설 『할매』는 반복되고 스러지는 짧디짧은 인간의 시간, 사라지고 잊혀지는 존재들을 소환한다. 역사 속 어떤 순간들에 이름을 남기거나 그렇지 않은 존재들이, 생을 그렇게 살다갔겠구나, 그 삶들이 흔적 없이 또 이어지겠구나, 그런 통찰의 감각을 전달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시간은 짧지만 그것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아득한 과거는, 현재에 닿는다. 하나하나의 흔적 없는 삶들을 경유하여.
한번도 이긴 적 없는 신부님의, 끝나지 않은 싸움
생명의 관점에서 만드는 이야기는, 시간을 아주아주 길게 쓰거나 짧게 쓰는 일인 것 같다. 아주 긴 나무의 삶과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새와 물살이, 조개 들의 삶을, 그 모든 것들보다 길고긴 생태계의 시간 안에서 바라보는 일이니 말이다. 그 생명들의 시간을 무시한 채 자본과 권력의 관점에서만 구성되는 이야기는, 상술했듯 바다와 육지를 황폐화해온 군사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내 기억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7년 동안 인천에 살았다. 그 시절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우리 고장 인천’의 이야기 중 중요한 것이 영종도 간척사업과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이었다. 이야기는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들을 만나는 통로다. 그러니까 나는 개발과 전쟁의 이야기 속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내가 그 이야기 속에서 자라났지만 나를 살게 하는 다른 이야기를 끝끝내 만나게 된 것처럼. 영종도 바다가 메워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었을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 뒤늦게 생각하게 된 것처럼.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일과 큰뒷부리도요를 지키는 일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문정현 신부의 이야기.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의 판결을 기다리던 날, 문정현 신부는 재판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인혁당사건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자본과 국가 권력과 싸워 온 그의 생애 내내, 한번도 승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패소한 뒤에 어떻게 싸울까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생애 첫 이기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항소함으로써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런 적이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내가 적어 두었던,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않던 그의 말이다. 그의 이 싸움이, 끝끝내 이기는 싸움이 되기를 바란다. 긴긴 나무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의 염원에, 하나의 마음을 더 보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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