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이번 무죄 판결을 적극 환영하고, 지금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 1조에 대한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번에 새롭게 개원한 20대 국회에서도 이번 무죄 판결의 의미를 적극 받아들이고, 한국 정부의 방치 속에서 그동안 병역거부자들이 지속적으로 감옥에 갔던 점들을 되새겨 대체복무 입법에 나서기를 바랍니다.

병역거부 사안에 대한 무죄판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4년 서울 남부지법에서, 200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5년 광주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무죄 판결 뿐만 아니라 위헌제청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2004년과 2011년에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 제 88조 1항 1조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뒤에도 2012년 창원지방법원, 2013년 서울북부지방법원, 2013년 수원지방법원에서 병역법 및 향군법에 대한 위헌제청을 했습니다. 하급심에서 위헌제청과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현행 병역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반증입니다.

한편 국제 사회에서도 한국의 인권 문제를 논할 때 병역거부 문제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입니다. 특히 유엔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의 병역거부 문제를 거론해왔습니다. 최근에만 해도 대한민국에 대한 유엔 인권이사회 2차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대한민국 4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 등에서 대체복무 도입 권고가 반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때마다 한국 정부는 국민 여론이 아직 부정적이라는 변명을 내세웠습니다. 인권 문제를 여론으로 정할 수 없다는 당연한 전제를 접어두더라도 한국 정부의 변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016년 4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의뢰로 갤럽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체복무 도입에 찬성 의견이 70%에 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미룰 핑계를 찾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체복무제도를 잘 시행할 수 있을지, 그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이번 판결에 더욱 주목하는 까닭은 국방의 의무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 때문입니다.

이번 재판을 맡은 류준구 판사는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군인들이 복무 기간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장애인, 노인, 청소년, 군 면제자, 군 전역자 등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대체복무뿐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비폭력·평화주의에 바탕을 둔 범국가적 반전활동을 하는 것도 국가의 안전보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더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만이 평화를 위한 노력이 되서는 안됩니다. 국방의 의무가 단지 군대에서 총들고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군사안보 영역에 대한 책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재난으로부터, 빈곤으로부터, 차별과 혐오와 폭력으로부터,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사회 공동체가 안전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은 군사 안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번 판결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지만, 더 넓게 국가 안보라는 게 과연 무엇이고, 안보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이번 무죄 판결을 적극 환영합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체복무제도가 조속하게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군사 안보 중심의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해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안보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6월 15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