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예비군 훈련 거부 선언문으로 처음 인사를 하고 두 달이 지나 이렇게 다시 편지를 합니다. 그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실직을 당하고, 민중이 개돼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무릎 꿇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버티는 것조차 벅찼던 친구들과 저에게도 어쩌면 당신에게도 머리 한 번 쓰담쓰담 해봅니다. 우리 박수 치고 받을 만한 것 같아요. 하하하.
오늘은 제게 특별한 날이랍니다. 예비군훈련거부선언을 한 뒤 처음으로 맞는 예비군 훈련 날이거든요. 하하하하하하. 작년과 재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예비군 훈련 전 날에는 폭음을 했어요.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끼며 아침 일찍 일어나 군복을 입고 훈련장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푹 잤어요. 일어나서는 예비군 동대에 병역거부선언문을 팩스로 보내고 맛있는 햄버거로 해장을 했답니다. 날씨가 끝내줍니다. 해를 온 몸으로 맞으며 터벅터벅 길을 걸어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심장이 터질 듯, 아름다워서, 편지가 끝나는 대로 옷가지 다 벗어버리고 바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녁에는 몇 몇 친구들과 첫 거부를 축하하는 소소한 파티라도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요. 오늘도 폭음을 하게 되겠군요. 하하하.
저는 오늘, 자유롭습니다.
요새는 개인의 저항을 넘어, 어떻게 상황을 공론화시키고 새로운 목소리와 불협화음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지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영화작업을 하고 있고, 법-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는 분들이 있고요. 훈련에 가지 않아서 오게 될 것들을 감내하는 방법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험과 시도가 내년 즈음에는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나태해 보이지만 부지런히 지내고 있답니다.
또한, 저 자신의 지금 상태와 이전의 상태들을 글이나 사진, 영상을 통해 비교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쓰레기 같아! 이 때 대단했는걸! 나도 참 많이 변해왔구나! 등등. 그러면서 발견한 자료가 있었어요. 2014년 12월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성민에게 꽃을 든 사진을 보내는 액션을 진행했었는데요. 14년의 저는 이 액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확장하고 생활예술의 실천으로 인식하여 이미지들을 만들었었더라고요.
이때 당시, 스스로 전쟁을 반대하고 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에 대해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 스스로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삶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심장이 두근거려요. 여행 같아. 짜릿짜릿한 느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 지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어요.
저는 그 답을 길에서, 여행에서,
예술과 투쟁, 노동을 통해 찾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의 삶이 당신의 우주와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날이 뜨거워요. 바람은 바다에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고, 저는 더 앉아있기는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두 번째 편지는 여기에서 정리해 볼까 해요. 모두 건강히 지내시길, 그리고 평화가 함께하길 바라요. 나의 자유, 당신의 자유-
16년 7월 14일, 뜨거운 남도에서,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