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돌(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 주:

영돌 님은 얼마전 공개모집을 통해 전쟁없는세상 무기 감시 팀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무기 감시 활동과 관련한 글이나 카드뉴스를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두려움이 앞섰다. 밤 시간의 강남역은 언제나처럼 사람으로 가득했고, 그 반짝이는 거리를 ‘행진’하는 ‘여자’들은 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역시나 사방에서 조롱이 쏟아졌고 여성들도 밤길을 걸을 권리가 있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나는 무서웠다.

나에게 무서움을 선사한 밤길은 다른 이에게는 굳은 다짐을 주었다. 비교적 남성비율이 높은 공대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며 숱한 성희롱과 성차별을 묵인해왔던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은 그녀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저에게 술을 따르라는 그들의 행동을, 외모를 평가하고 저를 대상화하는 모든 발언들을 묵인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쳐왔던 모든 사건들이 쌓여 결국 누군가가 살해당하는 일까지 와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불쾌한 일을 불쾌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의 모든 행동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뒤섞인 말이었다. 그녀의 외침은 무기감시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광경이었다.

일상에서 무기의 존재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활동지역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면 또 모를까, 도시생활을 하면 더더욱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분명 무장되어있다. 성실히 납부한 국민연금이 어디선가 폭탄이 되어 나타나고,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에 해군기지건설을 위한 자재가 실려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우연도, 예기치 못한 사고도 아니다.

또한 무기는, 그 존재를 짐작하지도 못한 새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어렵사리 청문회가 시작된 백남기 농민 사건이 그 예이다. 경찰조차 더 이상 치안유지만을 담당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쏴대는 현실은 내가 지나쳐왔던 모든 사건들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물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긴 하다. 당장에 구할 수 있는 자료도 많지 않고 선행된 연구나 국내의 운동 사례도 부족하다. 몇 년 전 무기감시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전없세 활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책만 읽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오랜 선언처럼 막막하다는 것, 모른다는 것이 분명 희망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무장된 일상을 해체하는 과정이 한국전쟁에게, 베트남전쟁에게, 이라크에게, 팔레스타인에게 보탬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