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전쟁없는세상 비폭력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어 저기서 데모를 하고 있네. 근데 뭐 때문에 하는 거지? 뭘 하는지 봐도 모르겠네…”

“이렇게 오랫동안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해도 바뀌는 게 없냐…”

“일회성 행사에 활동가들이 너무 소진되어 가는 구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단체가 왜 이렇게 비민주적이지?”

“주변에서 활동을 접은 여성 활동가들이 오랜 활동에 단순히 지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희롱, 성추행에 노출되어 온 거였구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졌거나 사회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혹은 주변의 친구에게 던져봤을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과 친구들도 꽤 오래전부터 이런 고민들을 해왔었다. 하지만 병역거부 캠페인에 바빴던 우리는 이 얘기를 뒷풀이에서 뒷담화처럼 얘기하는 것 말고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2012년, 우리는 단체를 재정비하면서 이 문제를 전쟁없는세상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이름하야 어떻게 하면 우리 운동을 보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교육하는 ‘비폭력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포켓몬 고를 활용해서 시리아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 우리는 돈과 재원이 풍부한 권력과 맞서기 위해서 창의적이어야만 한다.

포켓몬 고를 활용해서 시리아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 우리는 돈과 재원이 풍부한 권력과 맞서기 위해서 창의적이어야만 한다.

 

우리가 무너뜨리고자 하는 대상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제도든 기업이든 국가기관이든 간에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치밀하게 이윤을 위해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그런데 가진 자원이 없는 우리는 심지어 그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자괴감, 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 피로, 활동가들의 번아웃(burn-out)은 예견된 결과일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말로 사회운동이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해 질 것을 주문하였다.

 

“Those who love peace must learn to organize as effectively as those who love war(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론 ‘캠페인 전략 세우기’, ‘세상을 바꾸는 힘 직접행동’, ‘민주적으로 함께 활동하기’, ‘삶과 혁명: 건설적 대안 만들기’ 등 다양한 트레이닝(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시에 이런 내용들이 한데 모아진 <비폭력 캠페인을 위한 안내서>를 번역, 출간하였다.

이 안내서는 비폭력 캠페인의 모든 것을 다뤘다고 할 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왜 비폭력캠페인이 효과적인지(비폭력의 작동 원리), 효과적인 비폭력 캠페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사회운동론에서부터 조직 내 민주주의까지), 트레이닝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우리가 배울만한 전 세계의 캠페인 사례들 등. 물론 각 캠페인이 처한 공간, 시간, 사회적 맥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안내서의 모든 얘기가 직접적으로 다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표지

<비폭력 캠페인을 위한 안내서> 표지

 

우리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저항을 하지 않거나 개별 시위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국가 폭력이 삼엄한 환경에서 욱하는 심정으로 휘두르게 되는 소소한 대항폭력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폭력이 궁극에는 우리 편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사회의 부정의를 극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필요에 따라 예술, 유머, 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 등을 적절히 활용하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모두가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갖고 행동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각, 나의 행동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현실적 낙관으로 이어져 캠페인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전 과정이 하나의 자기 교육적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비폭력 행동 가운데 하나인 인도인들의 소금행진

가장 유명한 비폭력 행동 가운데 하나인 인도인들의 소금행진. 영국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인도인들의 일상과 결부 시켜서, 많은 인도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했고, 동시에 영국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세계에 잘 드러내는 직접행동이었다.

 

이 안내서는 아쉽게도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고 전쟁없는세상으로 연락을 주시면(peace@withoutwar.org) 책으로도 받아보실 수 있다.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책으로 받아보고 싶은 분들은 빨리 연락을 주셔야 한다. 모쪼록 우리의 이런 노력이 더 많은 논의로 이어져 캠페인에 참여하는 모두가 더 열심히 참여하면 할수록 소진되는 대신 힘을 얻고 우리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대상은 오래 걸리겠지만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되면 좋겠다.

 

-이 글은 녹색연합 소식지 녹색희망 11-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