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 (참여연대 활동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 뜨개만 한 게 또 없다. 뜨개를 하기 위해 부드러운 털실을 손으로 가다듬고, 왼손 검지에 털실 가닥을 둘둘 감아 엄지와 중지로 나머지 실을 잡은 다음, 쭈욱 늘리기. 코바늘로 실을 한 번 돌려 고리를 만들고, 당긴 실을 고리 밖으로 빼주면 한 코 완성.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코가 길쭉하게 늘어지며 모양이 생긴다. 초록색 실로 길쭉하게 뜨개질 하고, 같은 방식으로 빨간색 실을 이용해 뜬 다음 둘을 엮어 동그랗게 만들면 크리스마스 리스가 만들어진다. 단순하게 손을 움직여서 결과물을 얻어내기에 성취감도 꽤 크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오직 내 손으로 뜨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경험이 신비롭달까. 일상의 감정은 잠시 내려두고 뜨개 세상으로 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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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뜨개질해서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 키링 ⓒ이지원

 

투쟁 뜨개, 니티비즘(knittivism)

무릇 활동가들이 그렇듯 재미있는 게 있으면 내 활동에 접목해 보고 싶은 법. 요즘은 뜨개를 시위와 직접행동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활동과 연결할 수 있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지 않나.

뜨개질을 비롯한 공예 활동은 이미 비폭력 시위 등 사회운동 영역에서 활용되어 왔다. 뜨개질(knitting)과 활동(activism)의 합성어인 니티비즘(knittivism)은 쉽게 풀어 말하면 투쟁 뜨개, 뜨개를 활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니티비즘의 역사나 사례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난 퇴진 집회에서 화제였던 탄핵 뜨개 슬로건, 쌍용차 해고 투쟁의 ‘뜨개와 바느질 농성’ 등 한국에서의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건 단연 2006년에 진행된 뜨개 액션인 ‘핑크 M.24 채피’다.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의 피스 탱크가 떠오르는 이 작품은 덴마크 작가인 마리안느 요한슨이 미국, 영국, 덴마크가 이라크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규탄하고자 기획했다. 미국과 유럽 시민 1천 명에게 정사각형 형태의 뜨개 조각을 4천 개 이상 기증 받아 이어 붙인 것을 탱크에 씌웠다고 한다. 식탁보나 담요로 쓰일 법한 뜨개 작품과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탱크의 조합이 이질적이면서도 전쟁을 멈추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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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M.24 Chaffee Tank. ⓒMarianne Jorgenson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저항, 뜨개질

뜨개는 사회운동과 닮은 부분이 많다. 뜨개 고수의 손놀림이 있다고 해도 뜨개는 수작업인 만큼 작품을 완성하려면 ‘물리적 시간’이 소요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그렇다. 운동의 과정이 지난한 만큼 뜨개질도 인내를 필요로 한다. 실수를 하면 모양이 틀어지고 다시 풀어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뜨개의 경우 시간을 들이면 결과물은 나온다는 점에서 사회운동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뜨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겠지만, 뜨개질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따뜻한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진 샤프의 ‘비폭력 행동 198가지’를 2025년 기준으로 수정할 수 있다면 뜨개를 이용한 액션을 추가해야 한다!) 실과 바늘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서로 엮이고 엮여야 모양이 갖춰지는 이 행위는 우리가 연결되고 연대해야 한다는 중요한 믿음을 떠올리게 한다.

무기박람회에 전시된 탱크와 미사일의 한 부분을 뜨개로 덮어둔다거나, 뜨개 작품을 두고 온다면 어떨까. 여전히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팔레스타인을 불법 점령 중인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뜨개를 한다면? 한날한시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아무 대화 없이 팔레스타인 관련된 뜨개질을 하다가 약속된 시간이 되면 흩어진다. 행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길에 서서 뜨개질하는 시민을 경찰이 말릴 수 있겠는가.

연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새로운 걸 해볼 생각에 몸이 들썩인다. 뜨개질이라는 툴을 장착한 만큼, 내년에는 지치지 않게 활동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함께 할 동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