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평화교육 프로젝트 모모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멧부리로 향했다. 도착하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말없이 저 멀리 범섬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12월 31일에 시작된 안녕기원제부터 한숨도 자지 않고 새해를 기다렸다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시간에 맞춰, 저마다의 장소에서 100배를 시작했다. 크지는 않지만 모두가 들릴 수 있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왔고, 각각 그 소리에 맞춰 절을 시작했다. 60배 정도 했을까 문득 고개를 들어 범섬을 바라보니, 그 위로 붉은 해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절을 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그 찰나가 너무 아쉬울 정도로 아주 발갛고 아름다운 해였다. 나의 2017년 1월 1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멧부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그 찬란한 광경을 바라보며,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그 순간을 맞이했다.

2017년 새해 아침, 멧부리에서 바라본 범섬 ⓒ 하늬

2017년 새해 아침, 멧부리에서 바라본 범섬 ⓒ 하늬

고백부터 하자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은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였다. 구럼비 발파로 난리가 났을 때도 나는 해외에서 뉴스로 접했고, 핑계를 대자면 그래서였는지 그로 인해 오는 아픔도 덜했다. 2012년 11월 강정을 처음 방문하고 나서야 그 동안의 무관심이 마음 한 켠에 턱 하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쉬이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곤 나에게 닥쳐온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 모르는 척 했던 것 같다.

2016년은 조금 달랐다. 현재 활동하는 단체(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인 것 같기도 한데, 이들은 강정마을과 강정을 지키는 활동가들과 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강정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강정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리는 ‘인간 띠 잇기’를 하며 춤을 추고(물론 처음에는 배워야 하는 춤들이 좀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신나는 리듬에 맞춰 해군기지 앞을 뱅뱅 돌았다. 그리곤 어김없이 삼거리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조금이나마 따라가다 보니 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마음으로 와 닿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훨씬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세현&무밍

어마어마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세현&무밍 ⓒ 하늬

해군기지 정문으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

해군기지 정문으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  ⓒ 하늬

늘품체조를 바꿔 만든 새로운 안무는 엄청난 중독성을 갖고 있다

늘품체조를 바꿔 만든 새로운 안무는 엄청난 중독성을 갖고 있다 ⓒ 하늬

연말에 간 강정마을은 분주했다. 매일 진행하는 일정도 있겠지만, 12월 31일에 하는 안녕기원제 준비로 더욱 사람들이 바빴다. 공연과 노래팀을 섭외하고 그에 맞춰 연습을 하는 사람들, 기원제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먹거리를 준비하는 분들 그리고 행사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등. 또한 새해를 맞이해서 멧부리에서의 100배와 풍등 날리기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100배를 마치고 먹는 삼거리식당표 떡국도 빠질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겪어 보는 마을 축제였고 함께하는 행사였다. 마을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춤과 노래가 아닐까.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삼촌들도 마이크를 잡으면 능숙한 가수가 되었고, 그 노래에 맞춰 사람들은 둥글게 돌면서 몸을 흔들고 춤을 추었다. 익숙한 서로들이 만나 다시 한 해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고생했음을 토닥거리는 그런 순간들과 새해를 잘 맞이해 보자고 다시 서로의 다짐을 탄탄히 만들어주는 시간들이었다.

안녕기원제 하이라이트! 다사다난했던 2016년만큼 ‘생명평화 강정마을’ 글자에불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안녕기원제 하이라이트! 다사다난했던 2016년만큼 ‘생명평화 강정마을’ 글자에불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 하늬

IMG_9627

노래하며 연주하시는 문정현 신부님 ⓒ 하늬

오랜만에 간 강정마을에는 여전히 강정지킴들이 있고 삼거리식당이 있으며 인간 띠 잇기가 진행되었다. 인간 띠 잇기를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도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마구 찍어대는 경비도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지만 강정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결국 해군기지는 건설됐고 그 주변에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이용할 편리시설들이 하나씩 건설되고 있다. 특히 강정으로 전학을 해야 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오던 주민들과 그로 인해 이주해 온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뛰어 놀고 공부를 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도 하다.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는 단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발파되어 버린 구럼비를 비롯해 무참히 쉿더미가 박혀 버린 강정 앞바다의 수질과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일상은 또 어떠할까. 쉽게 볼 수 없어 쉽게 잊혀져 버릴 수 있는 수많은 일상들이 그곳에 있다.

2007년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천천히 혹은 빠르게 강정마을에 스며들고 있는 군사주의와 그 문화는 해군기지가 완공되면서부터 그 속도가 더 빨라지는 듯 하다. 그렇기에 강정 지킴이들과 주민들이 강정천과 멧부리가 있음이 더욱 소중하다. 가끔 가더라도 당연스레 진행되는 인간 띠 잇기가 좋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좋다. 다음에도 ‘놀다 가게’에서 득템하기를 바라며 멧부리로 가는 길에 반가운 솔방울을 주울 것이고 해군기지를 흘겨보며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음 좋겠다.

photo_2017-01-23_15-00-52

2017년 1월 1일 멧부리에서. 혱영, 세연, 무밍, 하늬 ⓒ 하늬

멧부리에서 바라보던 해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일출을 보려고 해도 매번 실패만 하던 내가 그렇게 아름다운 해를 보았으니 올해는 뭔가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강정을 기억하고 그곳을 찾기를 바란다. 강정마을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고 춤이 있고 무엇보다 강정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