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비폭력트레이너)

 

 

최근 이구영 작가의 패러디 작품 <더러운 잠>을 두고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시회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은 당직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예술성에 관한 토론, 여성혐오에 관한 토론 등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전쟁없는세상은 데모하는 그룹이니만큼 그에 맞게 사회운동에서 패러디의 위치를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회운동은 왜, 언제, 어떻게 패러디를 사용하는지, 주의할 점은 없는지 등.

<더러운 잠>은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기획된 행동이다.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패러디는 모순되거나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성공적으로 그것을 드러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잘 된 패러디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교육적 효과를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대상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더러운 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은 당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이었던데다 박사모를 비슷한 저쪽이 환호할 떡밥이 되어 버렸으니 결과적으로 이 패러디가 성공적인 사회운동의 수단이었고 평가되거나 기록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사회운동 차원에서 이 주제를 다룬 글이나 토론이 많지 않지만 2013년 New Tactics in Human Rights라는 그룹에서 진행한 온라인 토론 Using Humor to Expose the Ridiculous이 마침 비슷한 내용을 다뤄서 그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을 기본으로 글을 정리하였다. 패러디, 정치풍자, 유머, 비꼬기, (선의의) 거짓말, 장난 등의 사회운동 수단들이 ‘정체성 드러내기 혹은 교정하기’라는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되는데 <더러운 잠>을 계기로 이 글이 기획되었으니 <더러운 잠>을 표현할 때 널리 사용되는 패러디를 이 모든 수단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로 한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서는 미남에 근육질이지만 전화도 제대로 못받는 멍청한 남자 비서가 나온다. 이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섹시하고 몸매만 좋고 능력은 없는 여비서를 유쾌하게 패러디한 것이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서는 미남에 근육질이지만 전화도 제대로 못받는 멍청한 남자 비서가 나온다. 이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섹시하고 몸매만 좋고 능력은 없는 여비서를 유쾌하게 패러디한 것이다

왜 활동가들은 데모의 수단으로 패러디를 선택하는가

패러디는 선거, 경제, 문화 권력이 만든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부패하고 억압적인 제도와 엘리트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데모의 도구이다. 또 직접 통제 할 수 없는 큰 권력이나 문제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기 쉬울 때, 직설적인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대응기제 혹은 스트레스 해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패러디가 혼란스럽고 부패한 사회·정치적 환경 속에서 제 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웃음을 이끌어 냄으로써 특정 인권 문제를 정서적이며 인간적인 맥락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패러디는 일반적으로 약자의 무기로, 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인종적 특권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목표로 한다.

주로 정부에 대한 반대와 비판을 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국가에서 패러디는 가장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투쟁의 방법으로 사용되어왔고 소셜미디어는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이러한 패러디의 성공요소로 활동가들은 창의적일 것, 철저히 의도된 것일 것, 용기, 헌신 등을 꼽았다. 또 주어진 상황에 매우 적합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패러디를 지혜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New Tactics의 온라인 토론에 참가했던 활동가들은 패러디의 위험성과 과제로 ‘존중(무례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경계는 어디인가)’, ‘실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패러디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패러디의 대상은 존중받을 필요가 없다고 흔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과하면 패러디를 보는 제3자들의 특정한 믿음 체계나 종교, 전통 등에 스크래치를 가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평화연구자인 마이켄 쇠렌센(Maijken Sorensen)은 이를 위해 아래 두 가지 주의점을 제시하고 있다.

  • 과도한 유머를 사용한 패러디는 자제하자. 유머는 숙고를 거친 후에 던져져야 한다. 진지한 메시지가 담긴 유머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하자. 특히 상대방의 복장이나 말투, 성별에서 패러디감을 찾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은 패러디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의 위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샛길로 새지 않도록 주의하자.

패러디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글, 상황 등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권력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하게 되는 그런 방식의 패러디들이다. 이러한 패러디들은 보통 우스꽝스럽고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대상의 부정의에 대한 어느 정도의 논리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런 패러디들은 New Tactics의 온라인 토론에 참가했던 활동가들이 제기한 것처럼 딱히 어떤 긍정적이고 실체적 결과를 상정하지 않는다. 물론 ‘사이다’일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하면 패러디 대상들이 반응하게 할 수 있을까?

Yes man project 포스터

정치적인 패러디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의 포스터

장면 하나, 한국에도 <예스맨 프로젝트(The Yes Men Fix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다큐에서 예스맨이라는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단체의 두 주인공들은 보팔 참사(20세기 최대의 산업 재해 중 하나. 인도의 보팔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누출된 사건. 가스 누출 당시에만 3787명이 사망, 이후 가스누출 후유증으로 1만 6천명 이상이 사망. 부상자는 최소 558,125명) 20주년 기념일에 다우 케이컬(Dow Chemical) 대변인으로 가장하고 BBC 뉴스에 출연한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보팔 참사에 책임이 있다고 사과하고 보상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장면 둘, 프랑스 공무원으로 가장한 활동가는 아이티의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빚은 아이티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 부과된것으로 노예 소유주가 자신들의 “소유물”을 빼앗긴 것을 보상하기 위한 명목이었다.

장면 셋, 2011년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자신들이 납부하지 않은 32억 달러의 세금을 반환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 세금 체계의 헛점을 보완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발표하였다. 환상적이었다. 언제 대기업들이 이런 도덕적 리더쉽을 발휘한 적이 있었던가… 빙고! 이것은 미국의 조세형평성 감시 단체인 US언컷(U.S.Uncut)의 장난(혹은 사기)이었다. 이 외에도 환경운동가들이 종종 캐나다나 미국 상공회의소 사람들로 가장해 비슷하게 놀랍고 경이로운 발표를 한 행동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경우에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얼핏 보면 있을법하지도 않은 이러한 사건들을 방송들은 앞다퉈 보도를 했고 방송이 나가고 다우의 실제 대변인이 보상금 지급을 부인하는 데 걸리는 1시간 사이 다우 주식이 폭락해 2조4000억원이 증발했다고 한다. 주식 폭락은 제널럴일렉트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서는 (선의의) 거짓말 혹은 장난이 효과면에서는 더욱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데모를 한 이래로 패러디는 사회운동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패러디는 유머러스하고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난 그 의견/정책/법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제도적 힘의 부조리에 도전한다. 정부, 기업, 광고 업계, 미디어 기업, 종교 지도자 혹은 사회의 다른 강력한 인물이 통제하는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사회 각종 권력의 거짓말, 속임수, 명백한 불합리를 폭로한다. <더러운 잠>은 아쉽지만 의도하지 않은 여러 논쟁을 촉발시킨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전쟁없는세상은 효과적이면서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는 사회운동을 만들기 위해 비폭력트레이너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폭력 트레이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제공하고 있는 트레이닝은 아래와 같습니다.

  • 캠페인(사회운동) 전략 세우기
  • 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 민주적으로 함께 활동하기: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갈등 다루기
  • 삶과 혁명: 건설적 대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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