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기획연재-페미니즘과 나
전쟁없는세상은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이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하고, 평화운동은 페미니즘의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페미니즘 책과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페미니즘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에세이로 나누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만나는지, 평화주의와 페미니즘은 왜 만나야 하는지, 저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만하다. 누구든 더 많이 떠들어야 한다. 나도 항상 여성을 포함해 더 많은 소수자들이 직접 많은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왔던 터라 내가 내 이야기를 응원해본다. ‘페미니즘과 나’에 대해서 글을 부탁받은 난감함을, 솔직히는 그걸 수락한 나의 뻔뻔함을 이렇게 정리했다.
요즘 쓰는 말 중에 찾자면 나는 ‘꿘페미(운동권 페미니스트)’고, ‘헬페미(헬조선 페미니스트)’겠다. 꿘페미에서는 몇 술 더 뜨게 될 것 같다. 내가 일하는 단체 이름만 놓고 생각해보니 어마어마하다. ‘천주교’ 인권 ‘위원회’다.
교황님 이하 남성가부장 중심의 서슬 퍼런 수직구조를 중세시대와 많이 다르지 않게 고수하고 있는 천주교다. 얼마 전엔 내심 믿고 의지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까지 “여성사제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페미니스트인데 천주교 신자라고?”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또 그냥 단체가 아니라 위원회 구조를 가진 단체에서 사무국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은 활동가들이 고생한다고 격려해주고, 활동가보다도 더 힘든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그야말로 ‘인권위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다른 곳의 규약과 혼동하셨는지 위원의 위상과 권한이 단체규약에 명시돼있다면서 그걸 정독하고 지켜달라고 하시는 위원님과, 규약에 그런 내용이 없는데 어쩌면 좋을지 다투듯이 미주알고주알 상의(?)하며 지내기도 한다.
꿘페미가 사는 이야기
직업활동가로 살기 전에도 학교, 직장에 다니면서 집회가 있으면 나가서 앉아 있곤 했다. 그 때와는 분명 달라진 혐오사회의 공기를 요즘은 체감한다. 예전에도 이랬던가? 내 주관으로는 아니다. 개인 삶의 질은 경제수준 외에도 사회 전반의 문화로부터 영향이 큰데 그런 면에서 한국 시민들 삶의 질은 혐오문화와 맞물려 떨어져간다. 상대적으로 차별, 혐오 받지 않는 계층도 혐오사회 안에서 그 문화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활동가이자 시민으로, 이성애자로, 또 결혼제도에 편입한 이성애자로 살면서 페미니스트 꿈나무로 지내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들 간의 상충하는 점이나, 페미니스트로서 힘든 것들은 뭘까 꼽아봤다. 크게 세 가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찾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과 세상의 견고해 보이는 질서가 변하는 느린 속도,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다투게 되는 일상의 투쟁. 이런 것들이 어렵고 불편한 TOP3로 꼽혔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인간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페미니즘 문제를 놓고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기복이 크다.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고 희망을 발견하는 연습을 자꾸 해보자고 다짐은 한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
가장 최근에는 문재인 후보의 차별금지법 반대를 놓고 바라보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있어서는 인권시민단체들 쪽과 문 후보를 통한 정권교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지지자들 간에 이견이 컸다.
문재인 후보의 페미니스트 선언 도중 한 성소수자여성의 기습발언에 대해 나중에 질의응답시간에 발언기회를 주고 대답하겠다고 하고, 다수의 청중이 여기에 화답해서 “나중에”를 연호하는 일도 있었다. 그 장면이 많은 활동가들에게는 소름끼치는 느낌과 울분으로 다가왔다.

제주에서 열린 2017년 여성의 날 행사에서 남편과 함께. 성평등과 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민주주의를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다.
어떤 인권은 먼저, 어떤 건 나중에. 비장애인 먼저, 장애인은 나중에. 남성 먼저, 여성은 나중에. 국가안보 먼저,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은 나중에. 개발 먼저 환경은 나중에. 꼭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인권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나중에’란 말이 울분을 일으켰던 건 이전부터 많이 봐온, 많이 속아온 기시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인권은 사실 어떤 성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다른 어떤 것들을 대입해서 비유해도 설명되는 문제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나에게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오곤 한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느린 속도, 하지만 변하긴 변한다
페미꿈나무로 살면서 천주교에 한 발 담그고 사는 것이 왠지 뭐랄까, 솔직한 표현으로는 창피한 마음이 한 구석 있다. 페미니스트로서는 도저히 설명도 안 되고 대변도 못하겠는 문화가 천주교에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성사제는 없고, 성당을 지탱하는 대부분의 노동력은 여성신자들이 봉사의 이름으로 담당한다. 물론 이런 점들은 천주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적어도 여성사제는 존재하는 성공회나 다른 종교로 바꿔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속한 종교에서 바꿔보려는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씩 교회 내 여성문제에 대한 칼럼을 쓰거나, 다른 분들한테 기고를 요청해서 싣거나 하는 일로 내가 천주교에 변화의 타격을 가하는 정도는 포켓몬 게임에서 체육관의 강한 상대한테 약한 포켓몬으로 몇 번 타격을 픽픽 날려보고 고꾸라지는 정도의 미미한 힘일 것이다. 그래도 내 생전에 변화가 없더라도, 해볼 만큼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말하고 싶다. 좀 더 부지런한 파리 날개짓으로 나비효과를 기대하면서.
일전에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토크콘서트에서 한 작가님의 이야기가 두고두고 남았다. 천주교 교정사목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형수들을 오랫동안 만나왔는데, 어떤 사람은 변해가는 속도가 절망스러울 정도로 아주 느린 속도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변한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시시때때로 생각이 난다. 내가 사람에 대해 실망할 때, 교회 안팎의 견고한 가부장문화를 접할 때 떠올리는 말이다. 변하긴 변한다는 것. 변하는 속도에 절망하지는 말자.
가장 고난이도 투쟁은 일상투쟁
종교의 수직문화라든가 집회하면서 그래도 매일 보지는 않는 경찰과 싸우는 일들은 그나마 쉽게 느껴진다. 뜻이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작은 의견차이로 생기는 커다란 균열과 미움. 내 조직, 이웃조직, 사방팔방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 가족 간의 의견조율. 이런 것들이 실제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몇 달 전, 제사를 간소화하는 문제를 두고 시댁에서 가족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적어도 형제, 사촌 들은 간소화하자는 분들이 있을 줄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에 약간의 충격을 받고 둘이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와 그 주말 내내 캔맥주로 지샜다.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이민가자고 했지만 나는 남편이 혼자서 (체감으로는) 1대 20 정도로 싸우다시피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려고 애써서 자랑스러웠다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 지나면서 그 상황을 생각해보니 부끄럽기도 했다. 명색이 페미꿈나무라는 자가 너무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은덕에 이어 남편의 공까지. 다른 사람들이 생고생해서 쟁취한 열매만 받아먹고 살고 있나 싶었다. 욕먹기를 두려워말고 목소리를 더 내야겠다. 좀 더 설칠 필요가 많은 세상이다.
페미꿈나무로 열심히 살아보려는 염세주의자
나는 오랫동안 염세주의자로 살아왔다. 사람에 대해서, 견고한 세상에 대해서 쉽게 실망하곤 하는 나에게 희망 찾아내는 연습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자꾸 떠올려보려고 하는 건 다시 사람이다. 특히 멋있는 여성 활동가 언니들.
사람에 대한, 특히 활동가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나로서는 사람에 대한 그 애정이 경이로울 뿐이다. 정보인권이라는 내가 넘보기 어려운 천재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따뜻하고 무엇보다 감수성이 앞서가는 사람.
또 6년 전 강정에서 만난 평화활동가들이다. 특히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막기 위해서 폭약운반 차량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던 ‘전쟁없는세상’의 여성활동가들은 비폭력직접행동을 계속 기획하고 세상에 보여준 이들이다. 내가 두려움이라 생각했던 것들 위를 경계 없이 오가고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었다. 가부장제가 온전히 깃든 군사주의에 경종을 가하는 여성활동가들의 활동이 큰 영감으로 다가왔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막기 위한 여성평화활동가들의 직접행동은 평화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영감을 주었다.
남성중심 가부장문화에 맞서는 여성운동. 그리고 분단국가에서 안보라는 허울에 맞서는 평화운동. 모두 어려운 싸움이고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쉽게 잘 지치는 주제에 그래도 제안하고 싶다. 페미니스트가, 또 평화활동가가 지치면 누가 좋아할지, 또 세상 꼴은 어떻게 더 엉망이 될지 생각하자고. 그리고 염세주의자를 그나마 살게 해주는 페미니스트들, 활동가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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