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욱(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왜 눈물이 났을까요?”(38쪽)
한 여성 장례지도사의 말이다. 장례지도학과 교수와 면담 중에 교수가 죽음에 대해 묻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21년 청주로 한국전쟁 기억여행을 다녀왔다. 주요 코스는 대부분 학살지였다. 마지막 장소인 옥녀봉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다가 덜컥 눈물이 났다. 그 이후 간헐적으로 비슷한 상태에 빠진다. 가령 진실화해위원회 사건별 조사보고서를 읽다가. 이렇게 한국전쟁 당시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있을 때 주로 그렇게 된다. 얼마 전에는 그냥 걷다가도 감정이 올라와서 당황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언젠가는 내 안에서 이 감정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였다.
『죽은 다음』을 읽게 된 것은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함부로 재단하거나 연민하지 않고도 글을 읽는 이들이 망자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망자의 이야기를 자신과 결부시켜 읽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치밀어오르는 슬픔 역시 내가 보고 듣고 썼던 망자의 이야기들이 내 안의 무언가와 엮여 있기 때문일 테니까.
“내가 인터뷰한 이들이 사라졌다. 병에 걸렸고, 자신의 통증에 직업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오랜 시간 애쓰다가 없어졌다.”(14쪽)
오랫동안 일터에서의 여러 삶을 기록해온 저자의 고백이다. ‘죽었다’가 아니라 ‘사라졌다’, ‘없어졌다’고 쓴 것이 마음에 남았다. 사망보다는 실종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죽음. 무덤 비슷한 것도 남지 않아 애도조차 할 수 없게 된 어떤 삶들. 결국 저자는 묻는다.
“다르게 죽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17쪽)
다르게 죽는 것? 시차가 혼란스럽다. 죽기 전에 다르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이후에 다시 다른 죽음을 맞는 것인가? 후자가 가능한 일인가? 저자는 후자 쪽에 서 있다. ‘죽어가는 자’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죽음을 둘러싼 의례이자 집약적인 노동의 시공간인 장례”(18쪽)를 보려고 한다. 그렇게 그 자신이 실제로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받는다.
장례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한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장례인과 관련한 자료조사를 하면서 “모르는 이의 관 뚜껑을 살짝 들어 엿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죽음을 “감상적으로 추측”하고 “안전한 곳에서 들여다보는.”(18쪽) 회의를 담아 묻게 된다. 원래 모든 죽음에 대한 바라봄은 결국 망자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음’일 수밖에 없지 않나? 엄격하게 말해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은 고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렇기에 애도는 근본적으로 자족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정말 ‘관음’을 넘어 죽음을 대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했다.
고인의 소망을 나눠 갖기
흔히 장례를 악상(惡喪)과 호상(好喪)으로 나눈다. 전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후자는 천수를 다 누리고 떠난 죽음을 뜻한다. 악상이 호상이 될 수도 있을까? 그저 고인의 마지막을 고통스럽게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시신 복원 수업을 기다렸던 까닭은 믿고 싶어서였다. 마지막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59쪽)
장례를 치르기 위해 훼손된 시신을 복원하는 일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장례지도사 김영래가 시신 복원을 하게 된 계기는 ‘마음이 아파서’였다. 훼손된 시신이 그대로 관에 들어간 모습이 자꾸 눈앞을 맴돌아서. 그렇게 그는 시신 복원 명장에까지 이른다. 시신 복원은 사후적이다.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으니까. 정말 못되게 해석하면 결국 자기 마음 좋자고 한 일이라 할 수도 있다. 좀 더 좋게 해석하면 고인을 배웅하는 유족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 망자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배웅의 기억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다면, 고인도 조금 더 나은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마지막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에 의해 ‘진짜 나’는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300쪽)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장 뀨뀨의 말이다. 〈탈가부장:례식〉은 장례식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든 이들을 위한 대안적 애도의 장이다. 애도의 자리에서조차 ‘자신’으로 기억될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들이 있다. 동시에 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결정할 권리는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정하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당연히 애도자가 원하는 애도의 방식 또한 고인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될 권리와 애도할 권리는 연결된다. 물론 여전히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죽음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233쪽)는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깨달았다. 죽음 이후에도 고인의 소망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소망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소망을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가득한 퀴어들로 그 공간은 무엇보다 퀴어한 공간으로 순식간에 변모했습니다.”
저자는 캔디의 발언을 두고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웠다”(305쪽)고 적었다. 이 관계는 고인과 애도자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고인을 경유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보다 넓은 관계망이다. ‘죽은 다음’에도 끝나지 않는.
‘죽은 다음’에도 끝나지 않는
“‘내’가 ‘죽어가는 타인’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이어나가는 무언(無言)의 대화”가 공동체를 규정한다고 했다.”(323쪽)
“나를 기억하고 이별해준다면 그것이 내가 만들고 마련한 새로운 관계이자 자리이다. … 그 이별이 공동체에 녹아든다면 이것은 참으로 존엄한 죽음이겠다.”(375쪽)
책에는 ‘산 사람’이라는 말이 꽤 많이 등장한다. “산 사람은 살라는 말은 …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일”(377쪽)이라는 저자의 말은 결국 죽은 이가 바랐던 세상에 대해 골몰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 2021.)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 세상은 함께 바라는 세상이기에 더 이상 자족적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무언의 대화’라는 말을 빌려 잠정적으로나마 내가 옥녀봉에서 겪었던 경험을 정리해보려 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이의 시선을 느낀다. 그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의 말을 듣는다. 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슬픔이 차오른다. 그가 죽기 직전에 하고 싶었던 말들이 메아리로 남아있었다고. 우연히 내가 그 말을 들었다고. 당신이 바랐던 존엄을 나도 함께 바란다고. 이와 같은 일들이, 관계들이 더 많이 뻗어나가길 바란다고.

희정, 『죽은 다음』, 한겨레출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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