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직업활동가가 되고 나서 거의 10년 만에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아침에 국제 뉴스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밤새 쌓인 메일들과 뉴스들을 읽으며 분쟁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동료들과 끝없이 회의하고, 빠르게 성명을 쓰고, 시위를 계획하고. 퇴근 후엔 직장이 아닌 취미 삼아(a.k.a. 본업) 활동하는 단체에 가서 또 두세 시간 회의, 그리고는 뒷풀이. 이런 일상에서 10년 만에 처음 멀어져 본다.

지금의 일상은 아기를 돌보는 일. 밤새 뒤척이는 아기를 토닥거리며 새우잠을 자다가, 잠에서 깬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5개월밖에 안 된 작은 아기는 하루에 수유만 여섯 번을 하기 때문에, 내 하루는 아기의 맘마 먹는 스케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먹고 트름하고, 놀고, 뒤집기를 연습하고, 낮잠 재우기를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 중간 중간 나의 식사까지 챙기고 나면 아기가 잠에 들 시간이다. 젖병 소독과 아기 빨래를 마치고 나서야 내 하루가 끝난다. 쉴 새 없이 바쁜 하루가 작은 사람을 키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본격 침공하던 날, 나는 산후조리원에 누워 있었다. 난산이었고, 꽤 오랜 시간을 기진맥진하며 지내던 중, 단체 톡방에 속보가 올라왔다. 폭격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동료들이 빠르게 뉴스들을 공유하며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는 사이, 나는 휴대폰을 들 힘도 별로 없어서 답장을 쓰는 대신 격한 표정이 담긴 이모지로 반응이나 할 뿐이었다. 경악하는 얼굴, 오열하는 얼굴, 화난 얼굴. 곧이어 리모컨을 들고 뉴스를 켰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일장 연설이 통역되어 방송되고 있었다. 마음이 요동을 쳤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하지.’ 평소라면 짧은 긴급 메세지라도 쓸 텐데, 나는 그럴 기운도 없고, 곧 모자동실 시간이 다가와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서둘러 환기를 하고, 가습기를 켜두고, 방 안 구석구석을 소독티슈로 닦았다.

여전히 뉴스를 켜놓은 채였다. 뉴스는 쉴 새 없이 떠드는데, 내 손은 계속해서 스마트폰 검색을 멈추지 않았다. 검색엔진에 들어가 젖몸살, 모유량 늘리는 법, 신생아 황달 같은 검색어들을 입력해 의사들이 써 놓은 칼럼부터, 블로그, 그리고 나보다 먼저 출산을 겪은 수많은 엄마들의 경험담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티브이 화면으로는 트럼프의 얼굴과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이 교차되어 나오는데, 내 정신은 온통 뭘 먹어야 모유가 더 잘 나오는지, 태열에 좋다는 크림이 무엇인지에 쏠려 있었다. 정신없이 알림이 울려대는 단체 톡방, 사상자의 수를 알리는 뉴스 속보, 방산주가 치솟고 있다는 SNS 토막 글들, 그중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문득, 내가 원래 속했던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나는 그저 아기를 낳았을 뿐인데.

그런 시간들이 하루이틀 쌓이면서, 나는 자연스레 티브이를 켜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티브이를 보거나 인터넷 뉴스를 볼 겨를이 없기도 했지만, 아기를 재우고 뉴스들과 분주히 정세를 분석하는 글들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내가 이 글들을 본다 한들 무슨 소용일까. 동료들과 친구들은 분주히 회의를 하고, 피켓을 만들어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휴대폰 너머로 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뉴스를 꺼버리고야 말았다. 내가 뭘 해본다고 한들 이 망해가는 세상에 흠집 하나라도 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내가 당장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갈 수 없다고 해서 뉴스도 보기 싫어지는 마음이 굉장히 오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뉴스를 보기가 싫었다.

마음 속에서 저항할 틈도 없이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티브이 속에 나오는 폭격의 장면들은 가슴은 퉁퉁 불은 채 아기를 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기진맥진해 있던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고 고통이었다. 분명 저 화면 속 현실에도 나와 비슷하게 갓난아기를 품에 앉은 여자들이 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마음이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파서, 달군 팬에 찬물을 확 끼얹듯 마음을 꺼버렸다.

몇 년 전, 무기박람회에서 탱크에 올라가 시위를 벌인 일로 여러 번 재판을 치르면서 썼던 글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분쟁 지역으로 팔려 나가는 탱크 위에 올라가 무기를 그만 팔라며 구호를 외쳤던 일이 내게 주었던 해방감을 나누었다. 전쟁이라는 일이 한국에 사는 우리의 일상과는 멀어 보이고, 나라는 작은 한 사람이 멈추기에는 불가능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며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가져다주는 무력감에 절대 지지 말자고 말했었다. 산후조리원의 작은 방에 누워 내가 썼던 그 글을 떠올리며, 나는 그 글을 썼던 나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무력감을 느낄 거였으면서.’

그때 내 글을 봤던 사람들 중에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애가 없으니까, 말이야 쉽지.’ 이건 아기를 키우는 지금의 내가, 아기와의 삶이 뭔지도 모르던 그때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5개월이 지났다. 아기는 무럭무럭 크고, 나는 간간히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보다가도 아기가 나를 찾으며 울면 얼른 티브이를 끄고 달려가 아기를 데리고 나온다. 그러고는 아기와 눈을 맞추며 기억을 더듬어 내가 아는 온갖 동요들을 부른다. 옹알옹알 나의 목소리를 따라하는 아기의 작은 입은 내가 그동안 보아 온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다. 이 아기가 만나고 살아갈 세상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 세상보다는 조금 나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한 번 마음에 찾아온 무력감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친구들과 땡볕 아래서 시위를 이어가는 동료 활동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기가 없던 내가 하던 평화운동이, 그저 아기를 낳았을 뿐인, 혹은, 무려 작디작은 아기의 엄마가 된 나의 역할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다른 종류의 무력감을 마주한다. 세상의 폭력은 여전한데, 나는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다. 뉴스를 보다 말고 아기를 안으러 가야 하고, 긴급한 소식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먼저 반응하게 된다.

아주 취약한 한 인간을 깊이 사랑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두려움과 책임감, 그리고 상실에 대한 공포. 밤새 잠을 설치고 겨우 잠든 아기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일, 아기의 재채기 하나에도 노심초사하는 일, 꺄르르 하는 작은 웃음 하나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일을 알게 되며, 전쟁이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이 무력감 역시 내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무력한 마음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평화운동을 다시 만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마음 졸이며 따라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