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및 번역: 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번역 감수: 오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터키에서 활발히 평화운동을 하는 여성 활동가 힐랄 데미르의 병역거부 선언문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입영 대상자가 아닌 여성이 왜 병역거부 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전쟁없는세상의 여성 활동가들도 많이 듣습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힐랄의 선언문은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에서 출간한 <Women Conscientious Objectors An Anthology>에 실려있습니다. 힐랄은 이 책에서 선언문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그 내용은 번역 전문을 올리지는 않고 발췌, 축약해서 소개합니다.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터키. 형제의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터키 또한 한국처럼 가부장제가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습니다. 가부장제가 강력한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은 “남성화(masculinized)”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게 됩니다. 터키의 평화운동과 병역거부 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터키에서 병역거부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영 영장을 받은 남성’들만의 실천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감옥에 간 남성 병역거부자가 영웅처럼 대접을 받는 ‘영웅주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군대에 여성의 “자리”가 없는 건, 여성은 그런 “고귀한” 집단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고, 이는 징병제가 단순히 “국방”을 실현하는 것을 넘어서 남성과 여성의 시민권에 영향을 끼치고 사회적 위치를 차별화하도록 작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힐랄을 비롯한 여성 평화활동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직시했습니다. 여성활동가들은 조금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군사주의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사주의는 여성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데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에서도 여성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평화활동가들은 모여서 토론을 하고 행동을 기획하고 실천했습니다. 다양한 도시에서 모두 열두 명의 여성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고, 힐랄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터키에서 열린 사이프러스의 병역거부자에 연대하는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어느 여성

터키에서 열린 사이프러스의 병역거부자에 연대하는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어느 여성, 2015년.  사진 출처: WRI

그들의 병역거부 선언이 가리키는 것은 입영영장과 군입대가 아니라 군대와 전쟁 그 자체였습니다. 성차별주의,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주의가 모두 얽혀있는 군사주의에 맞서는 운동에서 여성의 자리는 “지지자”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고 더 많이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이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은 터키 병역거부 운동을 각성시켰고, 평화운동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며, 병역거부 운동의 초점이 남성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만 머무르지 않게 했습니다.

터키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 누가, 어떤 경로가 “터키 군인”을 (그리고 그들의 “무장한” 반대편을) 탄생하게 했나? 어떻게 우리는 우리가 군인으로 “태어났다고” 믿게 되었고, 사회에 가장 의미있게 기여하는 방식이 군복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 남성과 여성은 “군사국가”라는 명제 안에서 어느 위치에 서있나?
  • 만약 우리가 군사적 자산과 관습을 찬미하는 것,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는 “시민의” 삶 같은 것처럼 광의의 의미로 군사주의를 사용한다면 “시민”으로서 우리는 군사주의에 어떤 기여를 하나?
  • 여성은 어떤 기여를 하나?
  •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기여를 하나? 우리는 우리의 선언을 유지하고 모든 종류의 폭력과 군대에 맞서 행동할 수 있을까?
  • 요약하자면, 우리 언제 진실로 군인 “되기”와 군인으로 “존재하기”의 과정과 직면할까? 우리가 군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군인되기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힐랄의 병역거부 선언문을 볼 수 있는 소책자 . WRI 홈페이지에서 PDF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힐랄의 병역거부 선언문을 볼 수 있는 소책자 <Women Conscientious Objection An Anthology>  표지

병역거부 선언

 

나는 성차별주의, 위계구조, 권위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제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나는 성차별주의, 위계구조, 권위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제에 기초한 학교교육을 거부한다.
나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만을 위한 전쟁에서 죽는 것을 반대한다.
나는 여성들에게만 스스로를 완전히 지적인 존재이자 개인이라고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정부의 전쟁 정책과 그들의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을 전쟁에서 헛되이 죽게 만드는 군대를 거부한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묻지 않은 채 나를 위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우리의 운동 안에서 군사주의적 모습과 행동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애국주의적 통치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고, 내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이가 다른 이들의 성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마, 아내, 딸, 여자친구” 같은 딱지에 의해 규정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
나는 국경선에 둘러싸인 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 양심에 귀 기울임으로써 이 모든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중이다. 나는 전쟁이나 어떤 종류의 폭력도 없는, 국경선이 없고 반권위주의적인 세상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2004년 5월 15일 힐랄 드미어 Hilal Demir

 

<Women Conscientious Objectors An Anthology> PDF 보러 가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