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예비군 훈련 거부자)

전쟁없는세상 주:

한 번씩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이들의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예비군 거부자들의 재판 후기, 읽은 책 소개, 일상 생활에서 예비군 훈련 거부로 겪는 일들과 느끼는 생각들을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예비군 훈련 거부자를 위한 기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금은 예비군 훈련 거부자들의 벌금 및 재판 비용, 예비군 훈련 거부 운동에 쓰입니다. 예비군 거부자들이 걷는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주세요.  하나은행 530-910001-99504 (예금주: 전쟁없는세상)

 

얼마만일까? 이렇게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7년 전, 2010년, 그러니까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훈련병시절일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그때는 낯설고 힘든 상황 속에서 당신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느꼈고, 그것을 몰랐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한자 한자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썼던 것 같아.

나는 참 간사해. 그 소중함을 또 잊고 지냈어.

지구의 자전을 따라 당신들의 이마와 나의 지문에도 여러 개의 나이테들이 생겼어. 예전처럼 당신들의 소중함을 잊고 지낸 시간들과 예전과는 다른 나의 선택의 시간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마음뿐인 말들.
‘마음’을 설명하거나 정의내릴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어. 그래도 다시 한 번 소리내본다.
고마워. 미안해.

5년 전이지, 2012년, 그러니까 전역을 했던 해. 그때부터 당신들은 내가 학교에 다니길 원했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지. 당신들은 내가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길 원했고, 나는 알바를 전전하며 자주 여행을 떠나곤 했어. 당신들은 내가 건강하기를 바랐고, 나는 매일 술을 마셨어. 당신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행위가 얼마인지를 물었고, 나는 그저 내용을 이야기했지.
당신들은 내가 가정을 꾸리고 책임을 지는 ‘사적인’ 삶을 통해 생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꿈꾸었고, 나는 ‘공적’이라 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질문과 저항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하였어. 둘은 사실 같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청개구리인 것 같아. 개굴, 개굴.

‘삶의 가지’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그게 뭐냐면, 그러니까 나란 사람에게는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형이 있지.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동료들이 있어. 또, 좋아하는 노래와 영화, 시들이 있지. 이 모든 것들이 나란 사람의 ‘삶의 가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마찬가지로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냥 그 사람 한 명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수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렇게 보다 보면,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어 – 세계와 세계가 연결되어 – 우주와 우주가 연결되어 숲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이 들 때가 있어.

참, 따뜻하지.

더 부유해지고 생활의 편리가 높아지는 시대에, 파괴되어가는 것들이 있어. 나는 그것들에서 내가 보이고, 엄마가 보이고, 아빠가 보이고, 형이 보여. 사랑하는 친구들이 보이고 동료들이 보이지. 가난한 살과 영혼을 지닌 예술가가 보여. 때로는 반대로 파괴하는 것들에서 이 모든 것들이 보일 때도 있지.

파괴되는 것들에서, 파괴하는 것들에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보이는 거야. 피해자로 또 가해자로.

나는 이런 상황과 마주하기로 했어.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삶을 살지 않기로 했어.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로 했어. 파괴하지 않기로 했고,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소리치기로 했어. 왜냐하면, 나는 ‘삶’을 사랑하니까. 나는 ‘삶의 가지’를 지닌 나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나와 연결된 당신들을 사랑하니까.

엄마, 아빠. 나, 예비군 훈련에 가지 않아.

나는 총을 들지도 않고, 군사훈련을 받지도 않아. 누군가를 죽이는 연습을 하지 않아. 불평등한 언어와 문화 속에 나를 몰아넣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내가 가해자가 되게끔 나를 내버려둘 수 없어. 또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관할 수도 없지. 이 피의 고리를 끊어야해.

누군가는 시작했고, 누군가는 시작하며, 누군가는 방관하고, 누군가는 비웃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더 험난한 길이 내 앞에 놓여 있어. 당신들은 그저 안타깝겠지? 걱정도 되고. 눈을 감으면 당신들 얼굴이 떠오르고 눈을 뜨면 당신들의 목소리가 들려. 비난하는, ‘이제 그만 멈추면, 돌아오면 안 되겠니?’ 애원하는 소리가.

미안하고, 미안해. 하지만,
이게 내가 만든 길이야. 내가 걸어갈 길이고.
이 편지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와 마음들이 함께 살아감으로 당신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닿아지기를 기도해. 천천히.

엄마, 아빠. 부디, 평화를 빌어요-

17년 4월 새소리가 개구리 소리처럼 들려오는 강정마을에서
둘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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