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JTBC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군대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다시 한 번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다양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데 이 중 왜 성소수자운동그룹에서는 홍준표 후보의 에이즈 발언이나 군내 동성애가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얘기는 문제삼지 않으면서 심상정 후보 다음으로 괜찮은 발언을 한 문재인 후보만을 문제삼냐는 주장에 대해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볼까 한다. 거창한 건 아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는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문제삼는 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편향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민주주의를 위해서 선거정치 바깥의 사회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굴러가는가

사회운동은 기존의 사회 제도, 법, 관습, 의식 등을 변화시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일련의 행동, 계획 등을 통칭한다. 사회운동의 출발은 기존의 사회에 어떤 부정의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며 이를 교정하는 것으로 그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향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혐오, 차별은 시정되어야 할 사회부정의로, 이를 교정하기 위한 운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가 올해 23주년이다. 전쟁없는세상은 고작 14년입니다요). 홍석천씨가 등장하고 티비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들이 긍정적인 주요 캐릭터를 맡게 된 것도 다 이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어떤 법을 폐지시키거나 새롭게 입법시키는 것을 넘어서 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관습을 철폐하는 등 유형, 무형의 다양한 곳에까지 뻗어있다.

사회운동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적 세상을 상상하는 궁극적 목표가 있고 그 하위에 다양한 10년, 5년, 1년짜리 중·단기 캠페인 목표/계획들이 존재한다.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또 주렁주렁 달린다. 단기적 목표들은 장기적 계획을 달성하는데 일관되게 징검다리처럼 배치되며 사회운동은 단기적 성과를 향해 나아가지만 이러한 장기적 계획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빌 모이어의 Movement Action Plan

빌 모이어의 Movement Action Plan

 

각각의 단기적 운동 캠페인들은 성공으로 가기 위해 그 각각에 또 여러 단계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교육자, 사회운동가인 빌 모이어(Bill Moyer)는 이것을 분석하여 여덟단계로 구분하였고 Movement Action Plan이라 이름 붙였다. 모이어에 따르면 보편적 가치(사랑, 평등, 인권 등)에 위배되는 핵심적인 사회문제가 존재하지만 아직 공론화되지 않은 1단계, 기존 절차가 이 사회부정의를 교정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2단계, 이 사회부정의 및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어 운동이 본격화되는 3단계, 계기가 되는 어떤 사건(최순실의 타블렛과 같은 권력자들의 실수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길 거부했던 로자 파크스처럼 운동 그룹의 기획에 의해 발생되기도 한다)이 생기고 운동이 대중적이 되는 4단계, 보통 권력자들이 4단계에서 보통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동은 하향세를 겪는데(5단계) 이 단계를 슬기롭게 잘 이기면 다시 운동이 점화되며(6단계) 결국 성공에 이른다(7단계). 8단계는 이후 성공을 확장하거나(만약 법개정을 목표로 한 캠페인이었으면 더 강력한 법개정을 요구한다던가) 반대측의 반발 기도를 저지하고 단순한 제조나 법의 변화 말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하는 시기이다.

성소수자 관련 이슈들이 다양한데 그 중 이번 촛불대선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이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만을 명치하고 있는 법이 아니다. 모든 범주의 차별을 다룬다). 이미 문재인 후보가 2012년에 공약한 바 있는 그 법이다.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단계를 지나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새로운 입법을 요구하는 단계인 것이다.

운동의 현재 위치성에서 보자면 홍준표 후보의 허무 맹랑한 주장은 너무 시대에 동 떨어진 것이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면 이 발언이 허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다뤘고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이러한 편견으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우려한다. 영화로도, 티비 드라마에서도 많이 다뤘던 내용이다. 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아직까지 다양한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안다. 이 중 아직까지 정보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원치 않은 편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어떤 분들은 악날한 진실 조작에 홀라당 넘어가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아주 극소수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믿는 층도 있을 것이다. 동성간의 성관계가 에이즈의 원인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은 성소수자운동 그룹에서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기업과 국가기관들이 이를 위해 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세계에이즈의 날도 제정이 되어 있다. 이 문제는 제도권 내에서 논의되고 해결 방향을 찾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 노력했던 사회 이슈가 제도권 내에서 수용이 되면 사회운동은 그 문제가 제도권 내에서 잘 다뤄지는지 감시하면서 또 다른 이슈를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며 다시 여덟 단계의 1단계로 돌아간다.

사회운동은 아무말 대잔치 중 1, 2, 3등을 뽑아 차례로 펀치를 날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은 장·단기 목표(군형법상 추행(계간)죄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에서부터 성소수자 인권 증진, 세계평화까지) 하에서 세심하게 그 전략들이 고안되며 가성비가 따져지는 예술이다. 어떤 경우엔 취객 개그를 시전하고 계신 홍후보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캠페인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지지자들조차도 부끄러운 경우가 있으니까 말이다.

 

선거는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진보적 정책들, 연설들이 그 자체로 훌륭한 사회변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구하라(로버트 라이시, 김영사)>에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린스턴 대학의 마틴 길렌스(Martin Gilens) 교수와 노스웨스턴 대학의 벤자민 페이지(Benjamin I. Page) 교수가 공공정책 결정에 누가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진행한 폭넓은 실증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길렌스와 페이지 교수는 1981년부터 2002년 사이 20년 동안 중요한 국가적 정책 1,779건을 조사했다. 미국 대법원이 시티즌스 유나이티드(Citizens United) 판결을 내림으로서 사실상 기업이나 개인이 선거에 쓸 수 있는 돈에 제한을 없앤 것이 2010년이니까 이 연구는 심지어 지금보다 미국 선거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덜 할 때의 이야기다. 길렌스와 페이지 교수는 “일반 미국인이 공공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작아서 제로에 가깝고 통계로도 무의미해 보인다”고 결론 내린다. 심지어 지타가 공인하는 미국 3대 로비단체 중 하나이며 회원 수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 다음이라고 얘기되는 미국은퇴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와 같은 대규모 이익집단 조차도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수가 그 정책을 지지하는 것과 무관한 한줌의 돈권력이다.

결론은 우리가 원하는, 촛불이 원했던 세상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가져올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있겠지만 민주당도 지금은 폭망한 구 새누리당 세력도 모두 정치, 경제 엘리트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연구를 통해 내가 도달하게 되는 합리적 결론은 사회운동이 선거정치로만 안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밖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번 성소수자들이 문후보를 찾아가 항의한 것은 ‘난입’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의사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멋진 ‘직접행동’이며 참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사회운동의 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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