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다(병역거부 난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 있고 현충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6월에는 유난히 애국심, 국가주의 등을 강조하는 일이 많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지나친 애국심과 국가주의는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평화를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과 시선으로 국가와 전쟁,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글은 병역거부 난민이 되어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예다님의 글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가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서류와 전산으로 정부기관에 기록한다. 이것들로 국민으로서 자신을 증명하며 선거권, 노동권, 거주권 등을 얻는다. 이것들은 국민에게의 일정 부분 혜택과 보호를 제공하는 반면 비국민들에 대한 차별도 생산해낸다.
한국은 물론이고 프랑스에서 비국민으로서 지내며 불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일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일단은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데에 약간의 수고스러움이 든다. 난민 인정 후 이민자로서 영주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년에 한 번은 갱신해야하는 체류증이라든가, 해외여행 시 프랑스인은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국가에 가기 위해 비자를 준비해야하는 등의 것들이다. 게다가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이 프랑스인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는(난민 인정 당시 받은 ‘난민의 권리와 의무’를 보여주는 가이드에 ‘중범죄 시 이민권 박탈이 가능할 수 있다’고 명시 되어있음) 점 같은 것들도 또한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살인이나 강도짓 같은 범죄는 아마 안 저지르겠지만, 한국에서 병역거부로 중범죄자가 된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에서도 언제든 비슷한 일로 중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V 공개 토론만 보고 넘어간 20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올런지
선거권이 없기에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못 했는데 사실, 한국의 2012년에 성인이 된 후 처음 맞이한 선거부터 이번 대통령 선거까지, 한번도 참여하지 못 했다. 프랑스에서의 이민 정책이나 한국에서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의 정치인들의 정책들은 내 입장에 꽤나 중요하게 작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 연관된 정치적 결정에 선거를 통해 참여할 수 없다.
한국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 프랑스인 지인이 최근의 한국 대통령 선거 참가를 했냐는 질문에 나는 대사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를 해주며 투표를 할 수 없다 했다. 그이는 “정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선거권 자체를 주지 않는구나”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자의적으로 한국국적을 포기한 거지만, 포기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강제적으로 권리들을 박탈당했다고도 생각하기에 지인의 의견에 맞다고 대답했다.
한국에는 입대 전후로 죽어나가는 사람도 여전히 많고 난민 신청을 생각하며 나에게 연락을 하거나 프랑스로 직접 와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번에 대통령이 된 문재인 씨는 한국인 출신의 병역거부 난민이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에 신속히 대체복무제가 되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 중 최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기본권입니다. 그러하기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하여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출처: 문재인 대통령 트위터(@moonriver365)
프랑스의 난민관련법상으로 난민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으려면 난민 인정 날짜를 기준으로 최소 10년간은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 심지어 10년이 지나더라도 병역법이 개선 되지 않으면 귀국한 뒤 여전히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민자로서 상태가 취약한 점을 열심히 적긴 했지만 사실 큰 불편은 없다. 실제로 체류 관련한 문제도 귀찮을 수 있겠다 뿐이지 걱정없이 살고 있다.
비국민으로 지내며 가장 좋은 점은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점이다. 병역거부자나 난민으로 살아가길 결정하면서 친구, 가족, 지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힘들었지만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장 옳은 길을 고민해서 한 결정들을 지켜나가다보니 다행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힘들고 무서운 일임을 알기에 차별을 생산해내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살라고 타인에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열심히 고민한 생각이나 행동들, 또 갖게 되는 정체성들이 자신과 타인을 위한 거라면 스스로에게 당당하면 좋겠다. 그 생각이 행동과 언어로 표현 될 것이고 자신을 진정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분명 나타날 것이다.

메신저를 통해 난민신청을 상담하는 사람들, 수가 많아서 답을 다 해주지도 못 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학생회 임원으로 일하면서도 비주류가 된 경험이 있는데, 학회비가 학과교수나 학생회 임원들의 식대비로 쓰이고, 스승의 날이라면서 교수들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주는 등의 이벤트에 학회비가 쓰이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다. 내가 있던 과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심지어 많은 학생회장과 심지어는 감사부가 학생회비를 안 들키게 빼돌리고 있는 걸 반쯤 대놓고 얘기하고 있었으니 내 이의 제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것이다. 유치해서 적기도 민망하지만 같은 해나 혹은 그 전 해의 다른 학생회 임원들은 졸업전에 과교수들이 직장을 추천해준다거나 관심도 없었지만 군대를 산업체로 대체할 수 있는 직업도 소개시켜준다고 하던데 난 미운털이 박혔는지 “고생했다” 한마디로 끝났었다.
그렇게 탐탁치 않았던 비주류였지만 멋지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만화 나루토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비국민이 가질 수 있는 힘을 그 장면을 통해 설명하며 마무리 짓고 싶다. 나루토는 닌자들이 나오는 만화인데 주인공 나루토가 중급닌자 시험 중 필기시험의 마지막 문제를 보는 장면이다.
마지막 문제를 감독관이 출제하기 전 질문을 던진다.
“시험에 응하고 문제를 틀리면 영원히 중급닌자 자격이 박탈 된다, 시험에 응하지 않으면 올해의 중급닌자 시험자격과 함께 시험 보는 다른 두명의 인원의 시험자격도 박탈 당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시험에 응하고 문제를 틀리면 닌자사회에서 더 이상 사회적 진급이 불가능해진다, 시험에 응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시험보는 인원들도 타의적으로 진급시험에서 탈락한다. 나루토는 필기시험에 특히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답한다
“시험에 응하겠다, 진급을 하지 못 한채 살아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나의 길을 걸을 것이다”
비국민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제도적 혹은 인식적 차별을 받게 된다고 해서 불행해지지 않는다. 물론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할 수 있기에 이후의 선택은 각자의 가치판단에 맡기겠지만 적어도 나의 케이스는 어디서든 비국민이자 비주류로 살지는 몰라도 내 생각들을 관철해 나간 덕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스스로에게 보람찬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어차피 1등 국민이 되려는 것 자체가 위에 말한 교수님 마음에 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 유치한 짓거리다. 주류 국민에서 벗어나 비주류가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일이긴 하지만 비주류에게는 비주류의 삶이 있다. 눈치보는 주류 국민보다 당당한 비국민 당사자로서 난 모두에게 후자의 삶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