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대학생, 평화캠프 참가자)

 

 

나는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에서 전쟁없는세상의 비폭력 직접행동 초청강연을 들은 후 평화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사회운동의 계획과 실행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화캠프의 시작, 평택 대추리 평화마을

첫째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추리 평화마을로 갔다. 푸른 논밭을 지나 도착한 대추리는 예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평택평화센터 안으로 들어가 이미 도착해있던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대추리 투어로 캠프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마을 이장님의 가이드를 받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지금의 대추리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강제 퇴거된 예전 대추리 마을주민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마을이다. 크고 깨끗한 집을 보면 정부의 수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부의 지원은 기반 공사 정도였고 집은 주민들이 농지를 팔고 빚을 내서 지은 것이었다. 역사관에서 대추리 주민들, 전국 각지에서 연대한 시민들의 치열한 4년 동안의 투쟁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삶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주민들의 아픔이 증언과 사진을 통해 느껴졌다. 국방이란 명목 아래 이들을 힘으로 밀어낸 국가폭력에 분노를 느끼며 우리는 평화센터로 돌아왔다.

대추리 마을의 역사와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 싸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대추리 역사관에서 이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대추리 마을의 역사와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 싸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대추리 역사관에서 이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별칭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독특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이름 외우기 게임으로 놀랍게도 모두가 전체 참여자 35명 대부분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3박 4일 동안 같이 생활하며 지켜주었으면 하는 사항들을 함께 논의하였다. 개인의 다양성이 인정받고 배려 받는 공동체란 느낌이 들었다. 캠프 기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공개적 마니또라 할 수 있는 짝꿍 ‘버디’, 개인의 특기나 취미를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있는 ‘너 사용권’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버디는 식물, 동물 등 비인간을 위한 퍼포먼스와 그림으로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 버디를 비롯해 여러 참여자들이 베지테리안이었지만 평화센터의 식사는 친환경 농산물로 맛있게 조리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즐길 수 있었다.
저녁식사 후 비폭력 트레이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우리는 사회운동론을 공부했다. 평소에 혼용되어 오던 캠페인/운동/전략·전술의 개념을 구분하고 사회운동이 사회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폭력에 저항하는 비폭력 직접행동이 가지는 의의와 효과에 대해 알게 되었다. 10가지의 사회운동을 떠올리기보다 10가지의 전쟁을 떠올리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룹 또는 전체가 함께 브레인스토밍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였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뒤풀이로 Peace Bar가 열렸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있던 테이블에서 나눴던 대화의 주제는 조직 내에서의 존칭 사용과 위계,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에 관한 것이었다. 시민단체, 학교,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수평적 관계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취침 공간은 강당, 여자방, 남자방, 젠더프리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회운동 전략MAP-사회운동의 8단계와 활동가들의 4가지 역할

둘째 날,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빌 모이어의 사회운동 전략(MAP: Movement Action Plan)을 배우며 사회운동이 막연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흐름이 존재하여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조는 5단계에 해당하는 국가보안법폐지 사회운동이 6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사회운동이 8단계로 명확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첩될 수 있으며 역행과 순환을 반복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 내 단체나 개인이 맡는 역할이 반항아, 개혁가, 시민, 변혁의 주도자 이렇게 4가지 유형 스펙트럼 속에서 다양하다는 것, 또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중요성과 활동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시민사회 내,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활동을 지속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파업 등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방법 말고도 홀로그램 시위, 예술적 퍼포먼스, 온라인 활동 등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직접행동의 사례들을 보았고 현대사회에서의 직접행동과 진 샤프의 198가지의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논의해보았다. 직접행동 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하면서 사회운동 참여자, 반대자, 중립자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보는 연습을 했다. 민중총궐기 백남기 농민 사건 때의 상황극은 감정이 이입되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빌모이어가 정리한 사회운동의 8단계

빌모이어가 정리한 사회운동의 8단계

활동가들의 네 가지 역할과 각각의 특징

활동가들의 네 가지 역할과 각각의 특징

저녁식사 후에는 영화 <셀마>, <런던프라이드>를 함께 감상했다. 나는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이 인간이 인간다울 권리를 위해 치열하고 전략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 낮 동안 열심히 공부한 우리들의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시간이었다. Peace Bar는 또다시 9시에 열렸고 우리 테이블의 대화 주제는 성 정체성이었다. 성적 소수자 당사자 분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남녀 성 이분법적 구조가 가하는 폭력, 성 정체성을 꼭 확립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로 이어졌다.

 

전쟁 기업에 저항하라, ADEX 저항행동

셋째 날, 대학원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는 참여자, 운영위원과 아침식사를 하며 내가 이전부터 고민했던 학문적 연구와 실제 사회운동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원 진학에 대한 나의 고민을 함께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오전에는 기업을 비롯한 ADEX에 저항하는 행동을 공부했다. 서울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Seoul International Aerospace & Defense Exhibition, ADEX)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버젓이 거래하는 잔혹한 살인무기전시회였다. 이 갑갑한 거래를 반대하는 전쟁없는세상의 저항행동 기록을 보고 나도 올해의 ADEX저항행동에 동참하고 싶었다. 점심식사 후 물놀이 시간에는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너 사용권’을 이용하거나 얘기를 나누며 친목하거나 대추리 마을을 산책하거나 했다.
이후 우리는 운동의 목표 성취를 위한 전략적 미래 그리기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지속시키는 것들 중 하나인 ‘ADEX’를 떠받치고 있는 축들은 무엇인가를 분석해보았다. 안보 프레임, 정부, 옹호 언론, 무관심, 참여기업들 등 크고 작은 축들이 나왔고 각 조마다 그 중 하나에 대한 권력 분석을 해보았다. 또한 적극적 반대편과 적극적 우리 편 사이의 스펙트럼을 저항행동에 적용해보기도 하였다. 거대하고 뿌리 깊은 권력을 무너뜨리려 할 때 막연함을 줄이고 목표, 방법, 대상을 구체화하는 데에 아주 유용한 방법들이었다.
또 다른 전략방식으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우리가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10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즐겁게 상상해보았다. 여러 사건들 중 현재 실행할 수 있고 시급한 것으로 대체복무제가 뽑혔다. 우리는 또다시 지금으로부터 1년 후인 2018년 대체복무제가 완벽히 실현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1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꿈같은 상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현실적이고 진지한 관점에서 전략을 짜고 있었다. 일어나야할 사건들의 순서를 정하고 날짜를 매겨보았다. 몇몇 사건들은 분명 실현될 것이라 느꼈다. 조직의 전략을 확인하고 진행시켜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다.

미래그리기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참가자들

미래그리기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참가자들

마지막 Peace Bar가 열리고 나는 아쉬움에 그 전날들보다 훨씬 더 오래 자리했다. 평화캠프의 공식적인 프로그램 못지않게 Peace Bar와 식사시간, 휴식시간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대화하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1인 활동가를 비롯하여 전쟁없는세상, 아름다운재단, 환경재단, 생협, 행성인, 다양성연구소, 퍼포먼스 조직, 반 위계 트레이닝조직, 전국귀농운동본부, 복지단체, 앰네스티, 세이브더칠드런, 출판사, 여성단체, 학교 등 다양한 조직에 속한, 또는 속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으로서 내 생각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새벽에 함께 먹는 라면이 꿀맛이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프로그램은 캠프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빙 둘러앉아 한 명씩 돌아가며 캠프 동안 생각하고 느낀 점을 말했다. 자신의 활동 홍보를 하거나 캠프의 개선점을 말하기도 했다.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서로 SNS 친구를 맺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평화캠프를 통해 다양한 평화활동가들을 만나 평화감수성을 일깨우고 시민사회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으며 운동과 조직 전략을 세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