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예비군 훈련 거부자)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네요. 더 이상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때로부터요. 한국 사회가 많은 변화의 시간을 겪었듯, 저의 일상도 많은 변화들이 연속되는 시간이었어요. 우선, 저는 서울로 이사했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왔어요.

 

서울에서는 시위에 참여하며 살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작업을 하며 지냈어요.

덮 / 인권연극제 시민인권연극단 / 쭈야

덮 / 인권연극제 시민인권연극단 / 쭈야

 

어떤 예고편: 잊혀진 꿈의 흔적_HD 영상_2016 / 김성은, 제니조 출처 : https://neolook.com/archives/20170327b

어떤 예고편: 잊혀진 꿈의 흔적_HD 영상_2016 / 김성은, 제니조
출처 : https://neolook.com/archives/20170327b

 

평화, 길을 걷다 / 인권연극제 시민인권연극단 / 이상

평화, 길을 걷다 / 인권연극제 시민인권연극단 / 이상

 

I AM A FOREST_이상 / 차영진, 이상 / 사진 : 차영진

I AM A FOREST_이상 / 차영진, 이상 / 사진 : 차영진

지금은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삶의 여정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거기서 뭐하고 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백수, 일용직노동자라고 답할 때도 있고, 무려 군사기지와 전쟁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어요.

솔직히는 내가 가진 질문들 – ‘사회’ 안에 존재하는 ‘나’는 진정 ‘자유’할 수 있는가? 이 거대한 힘과 구조 속에서 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 자유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나의 욕망과 의문들을, 이곳에서 가시적으로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해군기지 안과 밖의 경계에서 그 안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요.

해군기지 정문에서

해군기지 정문에서

 

'비무장평화의섬제주를만드는사람들' 회의 / 10월 14일 무기거래를 주제로 행사 준비중

‘비무장평화의섬제주를만드는사람들’ 회의 / 10월 14일 무기거래를 주제로 행사 준비중

 

[강정마을무지ㄱㅖ‘숨통’]모임시작 ->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임 시작 *별개로 10월 28일 제주퀴어문화축제 준비중

[강정마을무지ㄱㅖ‘숨통’]모임시작 ->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임 시작
*별개로 10월 28일 제주퀴어문화축제 준비중

 
창작집단[구럼비유랑단] ‘우상의 눈물’ 낭독공연 / 방은미 / 원작 전상국

창작집단[구럼비유랑단] ‘우상의 눈물’ 낭독공연 / 방은미 / 원작 전상국

그림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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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강정낭독회] ‘작은 것들’ 중

열 번째 [강정낭독회] ‘작은 것들’ 중

양심적병역거부자의날 시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날 시위

 

한미캐 연합훈련 반대 해상시위

한미캐 연합훈련 반대 해상시위

 

강정 생명평화대행진

강정 생명평화대행진

 

일상저항행동 인간띠잇기

일상저항행동 인간띠잇기

 

생계유지는 1.적게 씀 2.일용직 노동 3.공연 4.예술지원사업 등등으로 감당하고 있어요.

작년 5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부과된 16개의 훈련(훈련에 불참하여 다시 부과된 보충 훈련 포함)을 모두 거부했어요. 점점 잦은 빈도로 발송되는 통지서를 보며, 고발과 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어요. ‘상상’이 아직은 ‘실재’로 오지 않은 시간임에도, ‘상상’이 그 시간들에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긴 시간을 가정에 둔 활동이나 약속, 계획을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답답함과 막연한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하락 또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고요(지금도 마찬가지예요).

 

2017년 나의 훈련현황. 총 15개의 훈련이 예정되어 있고, 9개의 훈련에 불참. 6개의 훈련은 아직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15개의 훈련에는 이전의 훈련에 불참해서 다시 부과된 훈련이 포함되어 있으며, 같은 이유로 2017년 내게 부과될 훈련은 15개 플러스 알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월 달의 경우, 보름(15일)동안 4개의 훈련이 부과되었었다.

2017년 나의 훈련 현황. 총 15개의 훈련이 예정되어 있고, 9개의 훈련에 불참. 6개의 훈련은 아직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15개의 훈련에는 이전의 훈련에 불참해서 다시 부과된 훈련이 포함되어 있으며, 같은 이유로 2017년 내게 부과될 훈련은 15개 플러스 알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월 달의 경우, 보름(15일)동안 4개의 훈련이 부과되었다.

지난 7월 21일, 첫 고발이 시작되어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되었어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 천천히 고민하며 조사받을 준비를 했어요. 마음과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더 이상 떨리지 않았어요. 다음은 경찰조사 문답 내용입니다.

문 :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최종학력이 어떻게 되세요? 신앙하는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 현재 누구와 함께 살고 있나요?

답 : 답하지 않겠습니다.

문 : 계속해서 질문에 답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답 :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인적사항을 묻는 질문들이 이 사건-사안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묻는 매뉴얼들이 나는 사법부에서 개인의 개인정보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관리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문 : 현재 직업은 어떻게 되세요?

답 : 생명평화강정마을에서 전쟁과 군사기지,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문화에 저항하는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를 담은 창작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고, 생존을 위해 간간히 일용노동을 나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문 : 불참한 사유가 있어요?

답 : 네. 저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양심, 그 권리에 의거하여 평화적 신념으로 일체의 군사행위와 전쟁연습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불평등한 문화와 구조를 교육시키고, 재생산하는 조직의 행위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당한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문 : 추가로 더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답 : 저의 정당한 사유에 대해서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어쩌면 나에게 부과될 벌금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어쩌면 앞으로 계속 받게 될 재판들을 내가 알고 있음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양심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내가 전역 이후,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는지, 나의 활동들이 정리된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하고, 그 자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첨부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증거자료까지 준비하며 경찰조사에 임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요. 보통의 경우에는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뒤, 검찰에서 약식 기소를 하고, 재판부에서 벌금형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제게는 벌금을 내던가, 노역을 가던가, 정식재판을 청구하게 되는 선택권들이 남게 되는데요. 재판을 가정해 둔 상황에서, 저는 약식으로 기소를 한 검찰과 벌금형을 내린 판사에 대해 그들이 어떤 이유로 기소를 했고, 벌금형을 내렸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 이유는, 사법부에서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과 결과들이, 관성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관성적으로 기계처럼 일을 수행한 것인지, 과도한 노동량으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판사와 검사에게, 저는 질문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 또한 저의 일상과 행위들,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는데 있어, 끊임없이 그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나의 행위에 대해 법리적인 판단을 내린 사람들에게 또한, 던지고 싶었어요.

열흘이 지나, 검찰에서 한 통의 편지가 집으로 도착했어요. 당시 저는 ‘2017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참석하고 있었고, 행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8월 6일 편지를 확인했어요.

검찰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 됨)

검찰 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 –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 됨)

예상과 달리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고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 됨)’으로 사건을 종결시켰어요. 얼떨떨하기도, 기쁘기도, 김칫국 마시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어요. 차분한 마음을 되찾고 난 뒤, 검사가 무혐의 처분한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법원에 가서 불기소결정서를 확인했어요.

 

불기소 결정서

불기소 결정서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일주일 전에 통지서가 본인에게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처분이 내려진 것이었어요. 허탈감과 분노가 밀려오고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내 안의 평화를 위해 콩나물 국밥을 흡입하고, 돌아왔어요. 시간이 지나,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만하면,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찌되었건, 이렇게 저의 첫 고발은, 웃픈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어요. 그럼에도 무혐의 처리된 이 훈련은, 다른 훈련들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부과될 것이고, 나는 거부할 것이기에, 계속해서 고발을 당할 것이고, 벌금과 재판 어쩌면 실형의 상상과 실재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게 되겠지요.

이야기가 길었네요. 아무쪼록,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이든,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능할지 저도 모르겠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가보려 합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안녕-

 

제주도 남쪽마을에서,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