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루(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군사주의, 학교, 페미니즘

난리가 났다. 인터넷 언론 닷페이스에서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위례별초 A교사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유투브에서 이 영상을 보면, 이를 비난하는 한 유투버의 주장 영상이 이어서 재생되고, ‘울타리가되어주는학부모모임’의 규탄 기자회견 영상이 연관 동영상으로 검색된다. 페미니즘 주장을 담은 스티커와 뱃지가 붙어있는 교무실 칸막이 사진과 SNS에 올린 내용의 캡처가 유포되고, 학교 내 교사들의 동아리인 ‘페미니즘 북클럽’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보수단체와 누리꾼들은 전국 각지의 성평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을 찾아내 학교로 전화 폭탄을 돌려댔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길래, 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정적으로 분노하게 했을까? ‘빨갱이’ 사냥에 이어 ‘꼴페미’, ‘메갈’ 사냥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위협하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그 답 중 하나로 ‘군사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군사주의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 2005)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복합적인 신념 체계로서 군사주의는 군대의 존재와 힘의 부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또한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관리를 위하여 위계와 통제와 훈련이 핵심이라고 믿고, 효율적인 병사 역할을 위해 필요한 남성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민족과 우방이나 대단위 집단의 이름 하에 집단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가치 등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학교의 어디에 군사주의가 숨어있는가?

정의의 마지막 단락부터 되짚어가 보자. ‘집단의 이름 하에 집단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가치’, 학교에서 소위 문제학생들을 처벌할 때 드는 이유는 어떠한가. ‘교내 면학 분위기를 해치므로, 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본보기로’ 처벌이 이루어진다. 그 처벌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학, 강제 또는 권고 전학, 퇴학은 집단에서 개인을 격리시키는 조치이다. 개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퇴출시키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체벌이라는 명백한 폭력이 일부 학교에서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나, 대안으로 등장한 벌점제는 교묘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옥죈다. 벌점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하는 죄명은 ‘교사 명령 불이행’이다. 교사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학생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고, 그 벌점이 쌓이면 학교는 선도위원회를 거쳐 학생을 공간에서 퇴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아닌 집단이 가진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나갈 여지는 사라진다. 집단의 안위를 위해 문제 원인으로 지목된 개인이 책임을 모두 떠안고 집단에서 사라진다. 숨겨진 교묘한 폭력이다.

국방부의 해병대 캠프 모집 홍보물. 해병대 캠프처럼 학교와 교육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군사주의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훨씬 더 일상적으로

국방부의 해병대 캠프 모집 홍보물. 해병대 캠프처럼 학교와 교육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군사주의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훨씬 더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학교 내 군사주의는 만연해 있다.

두 번째로 ‘효율적인 병사 역할을 위해 필요한 남성성에 가치를 부여’. 인간이 가진 성질 중 학교에서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적인, 윗사람에게 순응하는(말을 잘 듣는), 규칙을 준수하는, 인내심이 깊은, 차분한, 적극적인, 계획적인, 용기 있는,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낙천적인, 부지런한’. 반대로 가치를 부여 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감정적인, 윗사람에게 반항하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참지 않는, 산만한, 소극적인, 즉흥적인, 겁 많은,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비관적인, 게으른’. 전자를 남성성, 후자를 여성성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나는 ‘어른성’과 ‘아이성’으로 분류하는 것을 제안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성질을 성숙한 어른의 성질과, 미성숙한 아이의 성질로 분류하고 어른성에 가치를 부여한다. ‘애처럼 굴래?’, ‘중학생이나 되어서 초등학생만도 못해?’라며 당사자의 아이성을 모욕하고 실존하는 연소자를 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는다. 구분 짓는 목적은 무엇인가? 기실 어른성은 곧 아이성을 갖지 않거나, 극복한 상태를 의미한다. 대척되는 의미의 아이성과 혐오와 탈피의 대상인 아이가 없다면 어른성과 어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내재한 아이성을 혐오하고 어른성을 갈구하도록 한다. 효율적인 병사 역할을 위해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으나, 제 1의 목표는 효율적인 노동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 아닐까.

마지막으로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위하여 위계와 통제와 훈련이 필수적’. 이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가 2012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온종일 학교’는 맞벌이 등으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을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정책이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심야 찜질방/PC방/노래방 등의 출입금지, 청소년 대상으로 술/담배 판매 금지,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와 규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상 통제정책, 통제법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보호’라는 가치를 정책명, 법명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보호란, 청소년들 개인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목표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보호란, 그 목표가 청소년 중 다수가 국가에서 원하는 효율적인 어른의 틀에 부합하는 개인으로의 성장하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위계 질서와 벌칙이 주된 동력이 된다. 실수와 시행착오와 다독임보다는 반복적인 훈련과 시험을 통한 우열 가리기가 성장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학교에서 페미니즘 수업을 한다면

그러나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즘 수업은 어떤가? 분명 페미니즘은 군사주의로 점철된 학교에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음의 사례들을 보자.

초등교사 ‘미나리(가명)’ 씨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포궁, 자궁, 발기, 동의, 브래지어, 대안생리대’ 등의 낱말이 적힌 낱말 카드를 이용해 모둠별로 학생들이 낱말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것을 설명해야 하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학생들은 즐거워했다. 집단적으로 호기심과 흥미에 적셔진 공간을 보는 느낌이랄까. 대부분 카드를 연 사람이 설명하기 보다 주변에서 한 단어씩 거들어주어 협력한 설명이 만들어졌다.” ( http://yosm.asunaro.or.kr/258 ) 페미니즘 교육은 내용 뿐 아니라 방식도 인권친화적이다. 남들보다 먼저, 정확하게 정답을 맞추기 위한 훈련의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서로의 경험과 감정,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거쳐 함께 정답을 찾아나간다.
A 교사는 닷페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을 학교로 가져오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미안함이었어요. 특히 아주 어린 여자아이들이 아주 발랄하고 크게 웃고 떠들고 움직일 때 가장 미안해요. 하나씩 하나씩 성적인 사회화가 되면서 깎여나가겠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페미니즘 교육은 효율적인 도구 역할을 위해 특정한 남성성/어른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군사주의의 논리, 가부장제의 논리, 자본주의의 논리를 부정한다. 발랄하고 역동적인 여자아이도, 수줍음을 타고 정적인 남자아이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게 한다.

만일 여러분이 페미니즘이 없는 지금의 여느 학교와 페미니즘 교육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효율성보다 인권이 우선시 되는 학교 중 한 곳을 고른다면 어떤 학교에 다니고 싶은가? 환상 속의 학교 아니느냐고?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이미 실천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결심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