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틸드(싱어송라이터)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육군 현역병으로 만기제대했다. 군대에 갈 땐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군대 안에서 교회를 만났을 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억압의 바다에서 자유의 섬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의 이런 감상을 부순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선교의 꽃’인 진중세례식이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는, 가장 축하할 만한 순간에 기쁨이 아닌 부조리함을 느낀 것이다. 그곳은 초코파이와 특별한 간식을 위해 자신의 종교를 정하는 병사들, 세례 숫자를 채워 군선교의 효과를 선전하려는 목사들이 만나는 현장이었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저들이 제대 후 사회에 나가 계속 교회에 나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군종으로 군복무를 하다
그런 군선교의 부조리를 목격한 내가 군종이 되었다. 아무리 부조리해도 교회는 여전히 억압의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교회로 달려가 초코파이와 라면을 먹으며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군종이 되어야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군종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신앙전력화’니 ‘무형의 전투력 함양’이니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대대의 군종이 되고 나서, 나는 병사들의 ‘인간적인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억지로 끌려와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종교가 말하는 거창한 구원도, 군대가 주입하는 주적관도 삶에 와닿는 것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억압의 바다 속에서 내가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해내는 것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구라도 한국의 군대 안에서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천국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함께 지내던 연대 군종목사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복무기간을 마치면 좀 더 나은 코스를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끌려 군종목사가 된 그 사람은 그래도 자신의 신앙에 입각해서 나름 열심히 종교적인 활동을 벌였다. GOP에 근무하던 나와 함께 밤이고 새벽이고 커피와 초코파이를 들고 초소를 돌며 병사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군 내 비리의 고발자가 될 수도 없었고 병사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가 교단으로부터 배운 교리와 현재의 군종 제도는 그런 활동을 전혀 독려하지 않았다.
<종교와 군대>를 읽다보니 먼 과거가 되어버린 군 시절의 경험이 다시 떠올랐다. 군종의 신분으로 겪었던 경험들이 이 책의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분석과 연결되어, 군대와 종교가 동시에 억압적으로 작용할 때 그 앞에 선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깨닫게 했다.

한국 군종 제도의 역사와 정당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강인철 교수의 책 <종교와 군대> 표지
한국 군종 제도의 발전
한국 군종 제도의 흐름은 해방 후 한국 개신교의 발전 양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대한민국 건립 초기에 개인에서 시작된 군종 설립 운동이 미국(군)과 정부가 쥐고 있던 헤게모니와 만나 당시의 미군 군종 제도를 ‘이식’하여 형성된 한국 군종 제도는, 군대 내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개신교단의 정서와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심화시키는 첨병이 되었다.
개신교단이 분열을 거듭하면서도 6-70년대 이래 급격한 산업화를 계기로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이뤘듯이, 70년 베트남 전쟁 참전은 한국 군종 제도가 ‘완전한 통합 유형’으로 굳어져 미국의 군종 제도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하여 국가가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에 부응하는 종교가 적극적인 군선교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이 위협 당하고 종교간 경쟁이 심화되었다. 군종 ‘시장’ 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다 최근 성공한 원불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양심적 집총거부’ 교리 철회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군종 제도는 종교간 경쟁을 열화된 방식으로, 신자 수 확보를 위한 ‘황금어장’으로의 진입이라는 목적이 종교 본연의 색깔을 위협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60년이 넘는 군종 제도의 변천 속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다름아닌 개신교단이었다. 개신교단은 여전히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군선교를 지속하며 이익을 보고 있고, 군사정권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교유착을 유지하는 도구로 군종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득이 교단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몰라도 신앙인 개인에게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데 있다. 내가 군대에서 신앙인으로서 겪었던 모순과 딜레마를 군종 제도는 전혀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저자인 강인철은 결론부에서 ‘개인’에게 주목한다. 군종 제도가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상을 지닌 군대와 종교가 공존하는 영역에 복무하는 군종 성직자들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징병제 하에서 의무적으로 군인이 되어 병역을 수행하면서도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는 군 장병들 때문이다. 군내 동성애자에 대한 반인권적인 처우나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 때문이다. 나아가 – 미국의 군종제도가 변화된 방향성대로 – 군인의 ‘인간화’를 도모하고 평화주의를 위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종교의 역할 때문이다. 또한 종교적 이유와 양심적 이유로 자신을 전쟁과 살상의 도구로 만들지 않겠다는 ‘인간적’ 결단을 내리는 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지지하며 그들을 위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 애쓸 의무가 종교에게 있기 때문이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더불어 나는 제도가 개인을 규정할 때 일어나는 효과에 주목한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려 전투복을 챙겨입고 집을 나서는 순간 주머니에 손을 꽂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전투모를 비뚤게 쓰게 되더라는 많은 이들의 흔한 경험담은 실은 제도가 빚어내는 결과물에 대한 섬뜩한 경고이다. 맑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가 갈파했듯 합법적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주조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인 군대가 한국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은 이미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를 ‘병영사회’로 규정하고 비판함으로써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병영 사회를 만드는 개인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해내는 군대와 그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는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군인권센터가 외부에서 군사문화를 비판한다면, 이제는 군 내부에서 그것을 정면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목소리가 절실하다. 책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그 목소리는 군종들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자료를 통해 드러내는 바, 군대 내의 양심적이고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독교인은 ‘권력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십자가로서 새 길을 열어낸’ 예수를 믿고 따른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 로마 군인이었던 이들 중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군인의 삶을 포기하며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이들도 있었다. 혹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도 비전투요원으로서 군인 개개인의 생명을 돌보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승인을 받은 주류 종교로 거듭나며 이 전통은 사라져 버렸다.
한국의 개신교단은 이미 자정능력조차 상실해 버렸지만 그루터기와 같이 남은 이들이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군대 안으로 들어가 예전의 나처럼 군대와 종교가 공존할 때 발생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디 ‘군대의 남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군종 제도의 변화를 열망하게 되고 나아가 초기 기독교의 평화주의적 전통을 오늘날에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독일 판화가 오토 판콕의 작품 ‘총을 부수는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