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쥬(파코루도)

전쟁없는세상 주:

지난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에서 여옥이 터키와 이스라엘의 여성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짧게 소개했는데요, 그이들의 선언문과 글 전문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아래 글들은 터키와 이스라엘 여성병역거부자들의 글입니다. 터키는 한국처럼 여성이 징집대상은 아닙니다. 터키의 평화활동가 페르다의 여성 병역거부 선언문은 병역거부 운동이 반군사주의 운동으로서 어떤 고민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여성 또한 징병 대상입니다. 이단 할리리는 페미니스트로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군사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평화활동가들의 고민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들은 <Conscientious Objection: A Practical Companion for Movements>에 실려있으며, 조만간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할 예정입니다.

 

페르다 울케Ferda Ulker의 선언

 

나 자신을 반군사주의자이자 여성주의자로 규정한 이래로, 자연스레 나는 병역거부자라고 생각했다. 이 선언을 통해, 나는 이 ‘비공식적’ 지위를 ‘공식적’ 지위로 전환한다!

병역거부 운동은 ‘강제 징집’에 반대하는 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더 광범위한 차원을 포함한다. 그리고 우리 여성은 그저 운동의 ‘지지자’보다 더 큰 목소리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 병역거부는 군사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대상에 직접 저항하는 것이다. 군사주의적 사고는 군대의 담장 안뿐만 아니라 일상을 지배하는 군사적 세계를 형성한다. 이 세계에서 여성은 모욕되고 무시된다. 여성은 지위는 앞으로 나서야 할 때조차도 언제나 뒤로 밀린다.

권위와 위계, 복종의 이름 아래.

이 단어들은 우리 여성에게 아주 친숙하고 의미심장하다.

이것이 우리를 끊임없이 뒤로 밀어내는 잘 알려진 세계의 장벽이다. 특히 이 지역에 사는 여성에게 군사주의는 언제나 삶의 모든 영역에 나타나는 예고 없는 불청객이다. 거리, 가정, 직장, 인간관계, 투쟁 현장, 그 밖에 모든 곳에.

나는 오늘, 전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군사주의의 모든 암시적, 명시적 형태를 거부하며,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모든 이에게 연대를 표할 것이다.

군사주의가 내 삶에 개입하는 만큼, 나는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거부한다!

 


 

 

이단 할리리 Idan Halili의 이야기 

 

나는 우여곡절 끝에 19살 때 병역을 면제받았다. 여기서 나의 병역거부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것, 그리고 그것이 낳은 결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나는 병역의무가 내가 믿는 페미니즘 가치와 충돌하는 원칙을 가진 조직에 가담하기를 나에게 강요할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페미니즘 가치에 따라 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사회 내 서로 다른 집단과 개인의 욕구에 대한 고려, 억압에 대한 거부를 위해 헌신하기로 했다.
원래 나는 군대 내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등을 다루는 참모총장실 여성정책보좌관을 찾아가 그곳에서 군복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때는 나의 의식이 빠르게 고양되던 시기였고, 페미니즘의 딜레마를 의식할수록 입영 문제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반되는 두 관념 사이의 난해한 갈등을 극복해야 했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길러온 ‘군대가 유익한 제도이고 군복무는 사회에 기여하는 매우 명예로운 길이라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존엄과 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즘의 가치였다.
군대라는 조직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부터 페미니즘의 가치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군대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위계로 그 정의 자체로 평등과 반대된다. 군대가 요구하는 획일성과 순응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욕구를 표현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군대에 뿌리박힌 왜곡된 평등 관념은 젠더적인 시선으로, 즉 남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활동 분야에 여성이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측정할 수 있다. 군대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조직이기에 사회 내 폭력의 증가에 대한,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증가에 대한 책임도 있다.
위계적 조직구조, 남성 중심성, 선후임의 명확한 구분, 업무 환경의 비전문성 같은 군대의 전형적인 조직적·구조적 특성은 성폭력을 부추기는 요소로 지목되기도 한다. 따라서 여성에게 입영을 요구하는 것은 성폭력을 부추기는 환경 안에서 그것을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대가 이스라엘 사회의 중추적인 제도라는 점에서 이런 성폭력 문화는 민간 사회에도 확산되고 깊게 뿌리박힌다. 남성은 인생의 정해진 기간을 군대에서 보내면서 완력과 폭력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들의 삶에서 긍정적인 보강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배와 통제를 핵심 가치로 하는 조직에서 이런 행동은 특정한 군사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에서도 흔히 장려되기 마련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 보장을 위해 헌신할 책임을 느낀다.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로든 부추기는 조직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입장에서 페미니스트인 것과 입영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하지만 군복무가 내가 믿는 가치와 충돌하는 것이 명확함에도, 나는 페미니즘 사상이 병역면제의 조건이 아닌 것을 알았고, 군대는 중요하고 병역거부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어릴 때부터 길러진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어떤 대안이 있는지 알아봤다. 여성에게 가능한 한 가지 방법은 종교적 신념이었다. 나는 분명히 종교인이 아니었고, 내가 자란 지역은 꽤나 세속적인 곳으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면제를 신청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또 다른 방법은 결혼이었다. 정략결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지만 금세 사라졌다. ‘거짓말’하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고, 극히 가부장적이라는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은 이스라엘의 결혼 제도에 조금도 기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도 여성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명백한 이유로 정말 단 한 순간도 고려해보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신과적’인 이유로 면제를 받는 것이었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이 군복무에 정신적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이유로는 내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방법은 ‘양심위원회’라고 군사 기관에 신청하는 것이었다. 이 위원회는 개인의 양심을 근거로 병역면제를 허가할 권한이 있다. 실질적으로 위원회가 허가하는 것은 오로지 신청자가 평화주의자로 간주되는 경우뿐이었다. 오직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하고 어떤 군대에도 들어가지 않을 사람만이 때때로 이스라엘에서 양심을 근거로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나는 스스로 평화주의자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지만, 이 과정을 밟을 당시에는 아직 나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행동에 있어 완벽히 확신하고 아무런 의구심도 없어야 한다는 과도한 기준을 나 스스로 적용했기 때문에, 평화주의를 이유로 면제 신청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입영을 거부하기로 최종 결심한 순간을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묘사하면, 캐릭터 머리 위에 전구가 켜진 장면이 될 것이다. 일종의 계시와도 같았다. ‘페미니즘을 근거로’ 병역면제를 신청하는 선택란이 없다지만,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페미니즘에 근거한 병역거부는 특정한 정부 정책이 아닌 모든 종류의 군대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양심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나의 페미니즘 신념을 자세히 기술하고, 페미니즘이 군사주의에 대한 거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최대한 공들여 설명했다. 군을 대표하는 사람들 앞에서 재판을 받고, 여군 교도소에서 징역 2주 형을 선고받았다. 그곳에는 내 또래의 여성 50여 명이 있었다. 탈영으로 수감된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많은 경우 군대 체제 내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여성 지휘관의 성희롱을 피해 달아난 병사, 장애인 부모와 대가족의 유일한 부양자인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일을 해도 된다는 허가를 군대로부터 받지 못한 소녀, 질투심 많은 애인에 의해 집에 감금되어 결국 부대에 제때 복귀하지 못한 병사 들이 있었다. 군대는 이들의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이런 ‘쓸모없는’ 병사들을 처리하고자 감옥에 보내고 있었다. 감옥 생활은 몹시 우울했고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한편 일부 병역거부자가 자진해서 감옥에 가는 것이 병역거부 운동에서는 영웅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듯하다. 자신의 자유는 물론 감옥에 있으면 흔들리게 마련인 정신건강마저 기꺼이 희생하려는 의지와 투지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것은 군사주의적 행동 양식의 답습이고, 나는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감옥에 가서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뼛속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영웅적 병역거부자’의 이미지에 일조하기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시에 나와 군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나의 신념과 거부의 이유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데 군대의 허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병역을 면제 받는 것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출소하고 나서 항소심 절차에 따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양심위원회’ 앞에 다시 설 기회가 주어졌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며칠이 뒤 나는 ‘군복무에 부적합하다’는 근거로 면제를 받았다. ‘페미니즘’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면제 사유가 아니라는 설명도 첨부되어 있었다. ‘양심위원회’의 가장 큰 농간 중 하나는 내가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군대를 ‘내부에서’ 바꿔나가는 ‘능동적인’ 방법에 비해 ‘수동적인’ 방법이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남성 우월주의가 심한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페미니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학계에도, 많은 직장과 거리에도 위계나 폭력, 가부장제의 공기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많은 억압적 요소가 그토록 극단적인 방식으로 조합된 곳은 오직 군대뿐이고, 이 요소들이 조직의 핵심적인 본질을 이루는 곳도 오직 군대뿐이다. 위계적이지 않거나, 호전적이지 않거나, 비폭력적인 군대는 애초에 군대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이 그 모든 곳의 초석은 아니다. 호전적 남성성을 숭배하는 경향이 없다면, 사람들은 군대의 본질인 전투병과에 흥미를 잃기 시작할 것이다. 감정의 억압과 지배와 호전성에 대한 찬양이 없다면, 사람들은 자비와 인류애 같은 성품을 기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인구밀집 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리거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총으로 쏘거나, 매일 같이 온 동네 사람에게 수치를 주거나, 언제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처럼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병역거부 과정에서 삶 전체에서든, 내부로부터든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다. 군대를 내부로부터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군대 내에서 내가 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나는 군사주의가 약화되고, 더 평등하고 상호존중적이며, 폭력과 억압이 보다 적은 사회에 살고 싶다. 나 한 명이 병역거부를 한다고 이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의 운동이 커가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