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다. 1심 무죄 판결은 작년 한해에만 40건이 넘어가는데 항소심 무죄 판결은 2016년 광주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 유일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무죄 판결이 더 많은 항소심 무죄 판결로 이어지고, 나아가 대법원에서도 병역거부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는 둘 다 모두 헌법상의 가치이고 “어느 하나의 가치만을 선택하고 나머지 가치를 희생시킬 것이 아니라 충돌하는 가치나 법익이 모두 최대한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 내지 경계를 찾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병역거부자의 경우 예방이나 교정, 교화의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제재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형사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수단의 적절성이나 침해의 최소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소수의 병역거부자들이 국방력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하며, 군복무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를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면서도 국민개병제의 근간을 유지할 수 있는 경계를 국가가 찾지 않은 채로 “양심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으로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지 못한 것이 된다”며 무죄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국내외의 많은 국제기구와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오고 있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차례 국방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으며 2007년에는 정부가 나서서 대체복무제도를 골자로 한 사회복무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결정 내린 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임명된 법무부 장관과 헌법재판관들, 대법관들도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제 더 이상 대체복무제도를 늦출 이유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이 아니다. 어떤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로 하면서도 인권과 평화를 위한 합리적인 방향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결정해서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300여 명의 병역거부자들과 재판을 받거나 기다리는 예비 수감자들에게 평화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전쟁없는세상은 참여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지난해 7월 합리적인 대체복무의 요건에 대해 기준점을 제시한 바 있다. 대체복무 판정 및 운영 기관이 국방부나 병무청과는 무관한 민간기관이어야 할 것, 대체복무제도가 지나치게 가혹해서 또 다른 형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군입대 전뿐만 아니라 현역병과 예비군도 병역거부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이 시민사회단체에서 제시하는 합리적인 대체복무제도의 기준이었다.

작년 한해 동안 1심 재판에서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문제에 대해 법률적인, 제도적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든, 국방부든, 정부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진정으로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미룰 까닭이 없다.

 

2월 5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