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피망팀)

 

 

※ 이 글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워게임>과 게임 <퍼스트 스트라이크>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국면이 펼쳐지며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이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핵무기 감축과 일반적인 군축의 문제를 수학의 한 분야인 게임이론과 핵전쟁을 소재로 한 몇 가지 영화와 게임을 통해 바라보고자 한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을 풍자한 영화로 스탠리 큐브릭의 1964년 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가 있다. 이 영화에서 소련은 자국이 핵 공격을 받을 시 컴퓨터가 이것을 감지하여 전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다량의 핵무기를 자동으로 발사하는 ‘심판의 날 병기’를 개발한다. 그런데 미국의 편집증적인 전쟁광 잭 리퍼 장군이 상부의 명령도 없이 휘하 부대에 소련에 대한 전면적 핵 공격을 명령한다. 양국은 상호 협조하에 폭격기들을 격추하고 통신 암호를 알아내 철수 명령을 내리지만, 통신 장비가 고장 난 폭격기 한 대가 비장하게 임무를 완수하면서 세계는 멸망한다.

냉전 후기인 1983년에 나온 <워게임 WarGames>의 줄거리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된다. 미군은 핵전쟁 대비 기습 훈련에서 자국의 많은 장교가 핵미사일 발사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인간의 충성심을 의심하며 이를 대체할 AI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한편 고등학생 해커 데이비드는 우연히 군 시스템에 접속해 발견한 핵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소련으로 미국을 공격하는데, AI가 이것을 실제 상황으로 인식하면서 지구적 핵전쟁의 위기가 벌어진다.

<데프콘 DEFCON: Everybody Dies>은 이러한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어 2006년에 나온 게임이다. 플레이어의 목적은 한 국가를 조종하여 자국의 핵 역량을 총동원해 다른 나라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워게임>의 상황실(오른쪽 위)과 <데프콘>(오른쪽 아래)의 게임 화면이 매우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에 모바일 게임으로 처음 출시되어 PC 버전으로도 나온 <퍼스트 스트라이크 First Strike: Final Hour>는 보다 간단한 게임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의 내용과 목적은 비슷하다. 이것과 앞서 소개한 영화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워게임> <데프콘> <퍼스트 스트라이크>

 

죄수의 딜레마와 군비경쟁

‘게임이론 game theory’은 행위자(플레이어)들의 선택(전략)에 따른 결과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문화로서 게임(놀이)을 사회학적·공학적·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게임학 game studies’과는 구분된다. 게임이론은 수학 외에도 미시경제학이나 국제정치학, 진화생물학 등의 분야에서 개인,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나 국가, 생물종 등의 행태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이론의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하나로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보통은 두 공범과 검사의 양형거래에 비유하지만, 여기서는 군비경쟁의 비유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현재 대등한 군사력을 가진 두 국가이다. 각국은 군비 축소(협력)와 증강(배신) 중에 하나를 동시에 선택한다. 만약 한쪽은 군비를 증강했는데 다른 한쪽은 축소하면, 군사력의 균형이 깨져 전자는 승리하고 후자는 패배한다. 두 국가가 모두 군비를 축소하면, 균형은 유지된다. 두 국가가 모두 군비를 증강하면, 마찬가지로 균형은 유지되지만 둘 다 예산 낭비로 인한 손해를 본다.

각국의 입장에서 먼저 상대가 협력한다고 가정할 때, 자신도 협력하면 균형이 유지되지만 배신하면 승리한다. 한편 상대가 배신한다고 가정할 때, 혼자 협력하면 패배하지만 같이 배신하면 손해는 보더라도 균형은 유지된다. 따라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상대가 협력하든 배신하든 관계없이 자신은 배신하는 것이 유리하다. 게임의 딜레마는 둘 다 이렇게 생각해서 배신을 선택할 경우 군사력의 균형은 유지되는 대신 예산이 낭비되지만, 만약 둘 다 협력을 했다면 예산 낭비 없이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래 왼쪽의 표는 군비경쟁(죄수의 딜레마)을 단순화하기 위해 승리(3)와 패배(0), 균형 유지(2), 균형 유지 및 예산 낭비(1)에 각각 숫자로 점수를 부여한 것이다. 왼쪽의 군축과 군증은 플레이어 A의 선택을 나타내고, 오른쪽의 그것은 플레이어 B의 선택을 나타낸다. 각 플레이어의 점수는 각자가 선택한 전략이 교차하는 사각형 칸의 왼쪽(A) 혹은 오른쪽(B) 숫자를 읽으면 된다. 예를 들어, A가 군증을 선택하고 B가 군축을 선택했을 때의 결과는 왼쪽 가운데 칸을 읽으면 된다(A는 3, B는 0).

군비경쟁/죄수의 딜레마(왼쪽)과 군비경쟁의 변형/사슴 사냥(오른쪽)

군비경쟁/죄수의 딜레마(왼쪽)와 군비경쟁의 변형/사슴 사냥(오른쪽)

결과적으로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낳지 못하는데도, 각국이 군비를 증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임이론의 결론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게임 자체와 그것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둘 다 배신하는 것은 게임이론의 언어로 ‘효율적’ 혹은 ‘최적’은 아니지만, 이 게임의 유일한 ‘순수 내시균형 pure Nash equilibrium’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델 자체나 그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모델의 현실 적합성에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게임의 결론이 그것이 모델링하고자 한 현상의 실제 결과와 다르다는 것은 그 현상을 모델링하기에 부적합한 모델이라는 뜻이다.

만약 두 국가가 군비 축소로 절약한 예산을 모두 복지에 사용해 기대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때의 점수가 2가 아닌 4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게임이며, 이러한 구조의 게임을 사슴 사냥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같이 사냥을 나가는데 사슴을 잡는 데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하며, 혼자 사슴을 잡는 것(협력)은 헛수고가 된다. 한편 토끼를 잡는 것(배신)은 혼자서도 가능하나, 만약 둘 다 토끼를 잡으면 서로 방해가 되어 모두 손해를 본다.

사슴 사냥은 죄수의 딜레마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만약 상대가 토끼를 잡는다면, 혼자 사슴을 잡으려다 허탕 치는 것보다는 자신도 토끼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에 상대가 사슴을 잡는다면, 혼자 토끼를 잡는 것보다 같이 사슴을 사냥해 나눠 갖는 것이 낫다. 따라서 사슴 사냥과 같은 상황에서는 충분히 상호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여전히 둘 다 배신하는 결과도 가능하다. 게임이론의 언어로 말하면, 이 게임에는 상호 협력과 상호 배신이라는 두 개의 순수 내시균형이 존재한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그러나 군비경쟁에 대한 모델로서 죄수의 딜레마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국가 간의 관계는 한번 만나고 끝나는 일회성 게임이 아니라, 일정 기간 혹은 무한정 지속되는 게임이다. 이처럼 죄수의 딜레마를 일정 횟수 혹은 무한정 반복하는 것을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는 그 자체로 별도의 게임으로 전쟁-평화 게임이라고도 부른다. 군비경쟁의 비유를 생각하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의 전략은 현재까지 자신과 상대의 행적으로부터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내가 그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유리할지 판단하는 데 달렸다. 이때는 죄수의 딜레마처럼 항상 배신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매번 서로 배신해서 같이 망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상호 협력으로 높은 점수를 쌓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게임의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대개 ‘무자비한 보복’과 ‘눈에는 눈’으로 여겨진다.

무자비한 보복은 처음에 협력하고 상대가 협력하는 한 이를 유지하다가, 상대가 한 번이라도 배신하면 그 이후로 영원히 배신만 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자신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상대도 알 때 더욱 효과적이다. 영원한 배신의 공포가 상대의 배신을 막는 억지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역시 처음에는 협력하고, 그 뒤로는 상대의 행동을 따라하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상대가 이번에 배신하면 자신은 그 다음 차례에 배신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다음 차례에 협력한다.

그런데 만약 게임에 현실처럼 의사소통 오류가 존재할 경우 기본적으로 눈에는 눈과 같지만 때때로 상대의 배신을 용서하는, 즉 상대가 배신하더라도 작은 확률로 다음 차례에 협력하는 관대한 눈에는 눈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무자비한 보복’ 과 ‘눈에는 눈’ 전략은 협력해야 할 때 배신하는 한 번의 실수(의사소통 오류)로 끝없는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관대한 눈에는 눈’ 전략은 용서를 통해 악순환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와 그것의 다양한 전략에 대해 더 쉽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신뢰의 진화 Evolution of Trust>라는 짧은 웹게임을 추천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워게임> <퍼스트 스트라이크>의 교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무자비한 보복 전략이 의사소통 오류와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두려운 결과를 보여준다. 소련의 심판의 날 병기가 무자비한 보복 전략이고, 잭 리퍼 장군의 독단적인 핵 공격 명령이 의사소통 오류이다. 만약 미국이 병기의 존재를 사전에 알았더라면 사태를 미연에 예방할 수도 있었겠지만, ‘깜짝 쇼’를 좋아하는 소련의 디미트리 서기장이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불완비성은 무자비한 보복의 억지력을 약화시킨다. 이것은 눈에는 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보의 공유는 신뢰와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퍼스트 스트라이크>에서 플레이어는 한 국가를 조종해 기술 개발을 통해 발사체의 사정거리, 탄두 보유량, 조기 경보, 미사일 방어체계 등을 개선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다른 나라를 핵무기로 공격한다. 게임의 백미는 제목과도 같은 ‘선제공격 first strike’으로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심판의 날 병기처럼 자국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일제히 발사해 일정한 구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끝없는 핵무기의 향연과 스텔스기, 특수부대, 방사능 폭탄 등 특수무기를 총동원해 다른 나라를 모두 파괴하면 “승리했나요?”라는 문구가 뜨며 게임이 끝난다.

“승리했나요?”

“승리했나요?”

하지만 게임의 진엔딩은 따로 있다. <워게임>에서 AI는 모든 핵전쟁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 끝에 어떤 경우든 결과는 쌍방이 전멸해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 ‘무승부’임을 깨닫고 이렇게 말한다. “이상한 게임이군요. 이기는 방법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뿐이네요. 체스나 한 판 할까요?” <퍼스트 스트라이크>에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하나씩 해체하면, 다른 나라들도 뒤따라 핵무기를 해체하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세계평화’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여기서 승리의 주체는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이다.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공동 승리인 것이다.

“여러분의 군비 축소는 전 세계에 평화의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그것은 큰 위험을 감수한 용감한 선택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군비 축소는 전 세계에 평화의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그것은 큰 위험을 감수한 용감한 선택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퍼스트 스트라이크>와 게임이론이 시사하듯 서로 더 많은 무기를 확보하고자 경쟁하는 것은 결코 평화와 승리의 길이 될 수 없다. 끝없는 군비경쟁의 종착지는 피할 수 없는 전쟁과 ‘상호확증파괴 MAD’이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았듯 상호 협력을 통한 군축이 가능하려면 내가 먼저 협력의 손을 내밀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다만 상황에 따른 ‘적절한 제재’도 필요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은 일방적인 압박과 제재, 소통의 단절로 그와 정반대였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게임 모델이 국제정치의 세밀하고 복잡한 현실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대원칙은 교훈으로 새겨둘 만하다.

특히 남·북한처럼 현재 양쪽의 상황이 불균등하고 한쪽이 사회·경제·정치·군사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우위에 있을 때, 우위에 있는 쪽이 먼저 협력의 제스처를 취해야 함은 자명하다. 북한이 핵무기라는 비대칭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밖의 무기체계에서는 남한이 압도적 우위에 있고,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와 남한의 재래전력 감축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군복무 기간 단축을 통해 병력의 규모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부터 역대 정권이 항상 그래왔듯 군 인력의 정예화와 무기체계의 첨단화를 통한 ‘작지만 강한 군대’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작지만 강한 군대’가 아니라 ‘더 작고 약한 군대’임을 이제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