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강정평화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예멘 난민 문제로 온나라가 시끌거립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난민’ 발생의 원인이 ‘전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이득을 취하는 국가, 기업, 개인들이 난민 발생의 원인을 제공했고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난민에 대해 우리의 생각과 지식을 넓힐 수 있는 글을 기획해봤습니다. 두 번째 글은 강정평화활동가 호수 님이 써 주셨습니다. 호수 님은 현재 제주도에 온 난민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야스민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야스민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예멘에서 왔다. 올해 1월 수단에서 카타르, 벨라루스, 그리고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에 왔다.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가져 온 얼마의 돈으로 호텔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다 한 달 전쯤 제주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낼 곳을 찾았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 한 번도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그는 혼자 사는 자신의 아파트에 있는 두 방을 모두 우리 가족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 

지난 주 드디어 외국인등록증을 받았다. 일단 6개월은 제주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남동생과 형부는 오늘도 일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세 사람이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고는 있지만 쉽지가 않다. 얼마 전 농사일을 할 여성을 구한다는 곳에 고용주를 만나러 갔다. 형부와 남동생이 함께 일해도 되는지 물었다. 되돌아 온 대답은 ‘무슬림 남성은 무서워서 함께 일하기 어렵다’였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고용주와 나 역시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이야기를 중단했다.

형부는 예멘에서 정부기관에서 일했다. 수입이 괜찮은 꽤 좋은 직장이었다. 언니와 조카들은 다른 도시에 살다 지금은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남동생은 어제도 아는 친구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멘 TV 뉴스에도 그 소식이 전해져 영상에서 친구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매일같이 들려오는 슬픈 소식에 우리는 제주에서도 여전히 예멘에 살고 있다.

 

삶의 권리를 되찾고 싶다

제주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여성친구들을 만났다. 정작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나를 만나러 온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제주에 있는 예멘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조금 다른 존재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혼자 여행을 다닌 것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지내는 것도 굉장히 낯선 풍경이다. 이곳에서 만난 예멘 친구들이 말한다. ‘너는 왜 여자가 혼자서 이곳에 있니?’

전쟁이 일어나고 3년이 지났다. 3일이면 끝난다는 전쟁은 아직도 계속 중이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나에게 의존하는 엄마와 이모, 조카들은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내게 물어온다.

“도대체 전쟁은 언제 끝나?”

나 역시 마땅한 답을 주지 못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말 밖에는.

내가 예멘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더 이상 집에서 앉아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폭격이 일어날지 몰라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다. 음식, 전기, 가스, 일자리, 학업,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호흡마저도 빼앗아 가버린 시간을 보내며 삶을 살고 있다고 차마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가 가진 권리들을 되찾고 싶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권리들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겨우 살아남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신은 안전하고 싶나요?

어떤 제주 사람들이 예멘에서 온 우리들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부디 우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풀리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좀 더 이해해줬으면 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가짜 난민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은 안전함을 느끼기를 원하는가? 나 역시 당신처럼 안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예멘에서의 삶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삶을 살고 싶다. 안전한 삶을.

6개월 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만약 제주에 더 이상 지낼 수 없게 된다면, 어디론가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글쎄… 지금은 3일 뒤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3일이면 끝난다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 계속 될지도.

야스민과, 나 그리고 지윤의 손

야스민과, 나 그리고 지윤의 손

이 이야기는 저의 친구 야스민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입니다. 야스민은 무슬림 비혼 여성으로 용기 있게 난민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들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예멘 난민이라고 부릅니다. 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예멘의 상황과 가족을 떠올릴 때면 이내 눈물을 떨굽니다. 그럼 저도 같이 눈물을 흘립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야스민의 눈빛 속에 예멘 사람들의 고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야스민이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아주 많이 다를 것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히잡을 쓴 여성으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예멘의 가족들에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호스트 가족의 집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6개월 뒤 비자 연장이 어렵게 된다면, 모든 것이 가정해야만 하는 삶입니다. 그 어떤 것도 확보되지 못한, 보장받지 못한 하루를 오늘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야스민의 눈빛은 살아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예멘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예멘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무언가 하기를 그토록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야스민은 예멘 난민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고군분투 하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한 동료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