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참여연대 간사)

 

 

지난 4월, 세계 인공지능(AI) 분야 과학자들이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보이콧을 선언했다. 카이스트와 한화시스템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인공지능 무기 연구가 살인 로봇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카이스트는 살인 로봇을 연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이콧에 참가한 학자들은 카이스트에 공개서한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공지능 무기가 개발되면 전쟁의 제3의 혁명이 일어난다. 한번 열면 닫기 어려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 1984년,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던 해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터미네이터는 SF영화가 아니라 다큐가 되어가고 있다.

알파고가 바둑계를 ‘점령’하고 은퇴했듯이 과학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인간은 더 이상 과학기술을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살인 로봇, 터미네이터의 개발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일까.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의 저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피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연구실골방에서 과학연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게 됐을 때 비로소 인류가 과학기술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저자는 답할 것이다.

 표지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표지.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저자는 과학자가 연구에만 몰두 할 것이 아니라 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고개를 들지 않는 과학

과학자가 과학연구에만 매달리는 게 어떻기에 고개를 들라는 것일까. 과학 덕후가 연구에 몰두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인류에도 이로운 거 아닐까. 대부분의 덕질은 사랑이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덕질은 인류에게 공포와 위협이 될 수 있다. 과학자가 열심히 연구를 해서 성취한 기술이 탱크와 전투기를 만드는 데 쓰이고, 소이탄을 만드는 데 쓰이고, 핵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TV전파가 건물에 반사돼 화면이 흔들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만든 ‘전파 흡수 도료’가 스텔스 전투기에 사용되고, 노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쓰였다. 유대인 과학자 하버가 살충제로 개발한 치클론B는 나치에 의해 유대인을 학살하는 독가스로 사용됐다.

과학자가 고개를 들지 않았을 때, 즉 자신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 생기는 폐해는 차고 넘친다. 군사 무기에 대한 과학연구는 특히 더 그러하다. 군사 무기는 완성된 시점부터 연구자, 개발자의 손에서 떠나 정부의 것이 된다. 개발자 당사자는 무기 사용에 개입할 수 없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가한 과학자 실라르드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선 안 된다며 과학자들과 함께 강하게 반대했지만, 일본에 두 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독재자나 범죄자의 손에 넘어간 과학기술은 개발자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은 명백하다.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자들

일본 원자폭탄 투하를 계기로 많은 과학자들이 핵무기 폐기를 목표로 평화 운동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자 러셀과 함께 핵군축과 평화를 촉구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1955년)’을 발표했다. 선언이 계기가 되어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핵무기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군축과 세계평화를 논의하는 제1회 퍼그워시 회의(1957년)가 개최됐고, 퍼그워시 회의를 통해 과학자들은 두 번 다시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해왔다. 퍼그워시 회의는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은사인 이론물리학자 사카타 쇼이치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저자에게 남긴 글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학문을 사랑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인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에 따라, 과학자들이 사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할 것을 호소한다. 과학자들에게 시위나 집회에도 나가 보라는 조언하고, 실천적인 과학자의 예시로 도모나가 신이치로 박사를 언급한다. 양자전자역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도모나가 신이치로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파 무기 개발에 동원됐지만 “나는 그런 연구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라며 저항해 감옥에 갔을 정도로 실천적인 과학자였다.

노벨상 수상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개발 연구를 거부해 감옥에 갔다. 전쟁에 동원되기를 거부한, 넓은 의미의 병역거부자라 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개발 연구를 거부해 감옥에 갔다. 전쟁에 동원되기를 거부한, 넓은 의미의 병역거부자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 제도화

과학기술이 평화를 해치는 데 사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과학기술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사회적 책임 제도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참고할 사례는 충분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끔찍했던 인체실험을 했던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바탕으로 과학자의 연구윤리 기준인 뉘른베르크 강령(1947년)이 만들어졌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수정 보완되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 대한 윤리적 원칙’이 담긴 헬싱키 선언(1964년)으로 이어진다. 헬싱키 선언은 각 대학교들의 연구윤리위원회 설치의 토대가 됐다. 미국의 ‘벨몬트 보고서(1979년)’도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40여 년간 흑인들의 인권을 유린한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1)’이 세상에 폭로되자 충격을 받은 미국 의회는 1974년에 국가연구법을 통과시키고, 이어 임상시험의 인간 피험자를 보호하기 위한 윤리원칙과 가이드라인인 ‘벨몬트 보고서’를 발간했다.

냉전의 한 가운데에서 제정된 일본 나고야대학의 평화 헌장(1987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평화 헌장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들이 있다. “어떤 이유라도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 연구와 교육을 따르지 않는다”, “그를 위해 국내외를 불문하고 군 관계 기관과 그 기관에 소속된 사람과 공동 연구하지 않고 그런 기관으로부터 연구 자금을 받지 않는다. 또 군 관계 기관에 소속된 사람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황우석 사태를 비롯해서 과학기술 윤리 관련 문제들이 생기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2006년 1월부터 전문가 포럼 등을 개최하여 각계의 의견을 모아 ‘과학기술인 윤리강령2)’(2007년)을 제정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갈수록 과학기술은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개입될 것이고, 과학기술에 대한 복잡성이 더해질수록 과학기술을 통제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저자가 호소한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무, 과학에 대한 몇몇 윤리강령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터미네이터가 다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과학자들의 역할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할 또한 아주 중요하다.

‘타락한 권력과 무책임한 과학’이 만나지 않게끔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도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평화에 있어서 중요한데, 과학기술은 무기개발과 같은 산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평화운동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는 과학행정 감시를 통해 국가예산이 어떤 과학기술 개발에 쓰이는지 지켜봐야 한다. 카이스트의 사례처럼 비윤리적인 기술개발에 예산이 쓰인다면 적극적으로 반대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다. 국내외 방위산업체가 어떤 무기를 개발하고 수출하는지 지켜보고 견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 한화는 전 세계 전쟁터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해서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되는 확산탄(cluster munitions)을 만드는 곳인데, 한화가 확산탄 개발·생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활동이 곧 미래의 터미네이터를 막는 활동인 셈이다.

무기박람회 아덱스에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무기박람회 아덱스에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무기들이 전시, 판매된다. 전쟁없는세상과 평화활동가들은 전쟁무기가 과학기술과 결합되어 첨단화 되는 것을 경계하며, 이를 감시하고 이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의 무기 감시 프로그램 보러 가기 

 

무기개발·거래에 대한 감시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제도화 될 수 있도록 과학자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제정한 ‘과학기술인 윤리강령’을 일본 나고야대학의 평화 헌장 수준으로 높이고, 국가차원에서 과학기술 윤리강령의 구속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민해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첨단 과학기술의 융합인 ‘4차 산업혁명’ 또한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명윤리, 환경윤리, 노동윤리, 정보윤리, 등 수많은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심화될 것이다. 시민사회가 먼저 고민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고, 과학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 수 있게끔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고,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감시하며 견제할 때,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터미네이터의 ‘아윌비백’은 영화의 명대사로만 남을 것이다.

 

 

각주

  1.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에서 매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터스키기의 흑인들이 매독에 많이 감염되어 있고, 가난한 탓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생체 실험을 한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매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 매독으로 고통 받는 흑인들에게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고 나눠주며 결과를 관찰했다. 40여 년 간.
  2. 연구윤리강령은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국내 관련 법령 및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을 성실히 준수할 것과, 특히 날조·변조·표절·중복발표와 같은 부정행위를 배격할 것 등의 다짐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