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비폭력트레이너 네트워크 망치)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은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망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망치에서는 외부 단체의 트레이닝 요청이 있을 때 트레이닝을 나가기도 하고, 또 늘 효과적인 트레이닝을 위해 공부도 하고 툴을 개발하기도 하고 트레이너들를 위한 트레이닝을 받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에는 ‘변화의 물결’이라는 트레이너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앤드류를 초청해서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을 진행했습니다. 사회운동 전략 짜기에 대해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열쭝님이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전쟁없는세상에 비폭력 트레이닝을 요청하시려거든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나는 작년에 망치에 입덕한 새내기 트레이너다. 2017평화캠프가 너무 재미있고 신기해서 그 해 말부터 망치 활동에 합류했다. 마침 지난해 말부터 백수로 신분을 바꾼 지라 다른 트레이너보다 시간이 좀 여유로웠고, 덕분에 지금까지 몇 번 트레이닝 기획과 진행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지금도) 트레이닝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생초짜인데 과연 내가 트레이닝을 진행해도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구체적인 상담을 요청한다면, 안 그래도 진행울렁증이 있는 나는 엄청나게 버벅대면서 진땀을 흘릴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런 점이 망치 트레이닝의 특성일 것이다. 사회운동 전략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로서 다른 활동가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 활동가로서 트레이닝 과정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것 말이다.
이렇듯 망치 트레이너들은 계속 고민하고 질문하며 배우는 활동가들이기에, 망치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12월 7~9일 동안 진행된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이 바로 그런 자리였다. 영국의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변화의 물결’ 활동가 앤드류 씨가 트레이너라고 하니, 더 기대가 컸다. 외국 신문물을 배워서 엄청 똑똑해져야지~
‘침묵토론’하고 ‘문제나무’ 그리며, 즐겁고 빡셌던 2박3일
그래서 트레이닝을 마치고 내가 엄청 똑똑해졌을까?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트레이닝이 안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매우 좋았다. 2박3일 내내 참 빡세게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했다.
기대했던 대로 신문물도 많이 배웠다. 이론적 측면에서 ‘SMART’라는 점검 포인트를 알게 되었다. SMART는 ‘Specific(구체적인)’, Measurable(측정 가능한)’, ‘Achievable(달성 가능한)’, ‘Relevant(연관성이 있는)’, ‘Time-bound(기간이 정해진)’이다. 약자부터가 참 똑똑하지 않은가? 좋은 캠페인의 목표는 이러한 요소들이 잘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중 인식 확산” 같은 목표는 좀 부족하다. 대중 인식을 어떻게 확산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이지 않다. 또한 인식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 그것이 병역거부 운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목표를 수정한다면, 분명 더 효과적인 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 전략의 여러 요소를 논의하는 세션도 흥미로웠다. ‘문제 이해하기’, ‘맥락도 문제의 일부’, ‘명확한 목적’, ‘메시지와 전달자’, ‘시의적절성(타이밍)’, ‘전술’, ‘자원, 기술 활용’, ‘사람’…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그 동안 나를 거쳐간 전략들이 떠오른다. 내가 ‘전략’이라고 거창하게 떠들었던 것들이 지금 보니 그냥 ‘썰’이었구나…. 좀, 부끄러웠다.
트레이닝 기법 역시 흥미로운 사례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음에 꼭 써먹어보고 싶은 방식은 ‘침묵 토론’. 전지에 전략의 요소를 하나씩 적은 뒤에 참가자들이 돌아다니면서 각 전지에 의견을 적는 방식이다. 해당 요소와 관련해서 고민되는 점이나 궁금한 점 등을 자유롭게 적는데, 다른 사람이 남긴 글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도 된다. 그림을 그려도 된다.
전지를 이용하거나 테이블을 옮겨 다니는 방식은 이미 익숙하지만, 이 세션의 독특한 점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차피 글로 쓰는데 말만 안 하는 게 무슨 의미지?’ 싶었지만, 해보니 전혀 달랐다. 말하는 사람이 바로 드러나지 않기에, 권력이 있는 사람의 영향을 덜 받고 내 의견을 적을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말의 ‘방해’ 없이 편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 나무 그리기’도 좋았다. 나무 몸통에 문제를 적고 뿌리에는 원인을, 가지에는 결과를 적는다. 이 때 뿌리나 가지는 좀더 가늘게 분화할 수도 있고, 다시 합쳐질 수도 있다. 덕분에 그냥 글이나 도표로 문제를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면서도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실제 현실의 문제가 그렇듯이 나무의 뿌리와 가지도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여전히 남은 질문들, 활동가들과 함께 찾아야지
이 모든 학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대했던 것처럼 똑똑해지지는 않았다. 내게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잔뜩 남아있다. 조직(또는 운동그룹) 안에서 운동의 목표와 전략을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목표를 측정하는 데도 자원과 기술과 시간이 필요한데, 좀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전략의 타이밍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핵심 타깃은 어떻게 분석하지?
어쩌면 강의가 아닌 트레이닝에서, 그것도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해답을 얻으려는 것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의 답은 오랜 시간 꾸준히 헤매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 문제의 맥락과 연결되기에 일반적인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니까. 누군가 ‘짠’ 하고 선물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여전히 나는 진행울렁증이 매우 심한 좀 이상한 트레이너이지만, 이번에 배운 것과 남아있는 질문들을 다른 여러 활동가들하고 나누고 싶다. (꼭 사람들 앞에서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다양한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이 서로 질문하고 서로 답하면서 함께 헤매면 좋겠다. 그 힘으로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략을 만들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그래도 어쩌면 아마도 나는 트레이너인가 보다.
*이 행사는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프로젝트 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