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안 씨의 지인
전쟁없는세상 주: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병무청은 내부의 간단한 심사를 거쳐 병역거부자들의 입영영장을 2019년 12월 31일 이후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내부 심사에는 본인의 소견서와 부모님의 소견서, 제 3자의 소견서 및 기타 증빙 자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병역거부자 이평안 님이 병무청에 제출한 서류 가운데 이평안 님의 지인이 써준 소견서입니다. 개인적인 관계에 입각한 소견서지만, 병역거부의 의미와 병역거부자의 자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올립니다.
본인은 문화비평과 공연기획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단법인 한국민예총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병역 의무자 이평안 씨는 2018년 서울시가 주관하고 본인이 연출한 제주 4.3 제70주년 사업의 무대스텝이었습니다. 본인은 이평안 씨를 수년 전 어느 음악 공연장에서 처음 만난 이래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으므로 업무 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평안 씨는 마터스라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에서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음악사적으로 분류한다면 정통파 펑크 계보에 속합니다. 이평안 씨의 노랫말들은 다소 파편적이고 분열적이긴 하여도 분명한 반군사주의적 심상을 담고 있습니다. 흔히 종교적, 신앙적 병역 거부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극단적 평화주의와는 다소 다른 방식이며, 그의 노랫말들은 주로 ‘강제성에 대한 비동의’를 표현합니다. 이는 그의 평소 삶의 방식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지시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이 합리적으로 납득하여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급자에게 반말을 하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존대하는 등, 일반적인 통념에 비춘다면 기행이라 할 만한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본인은 이평안 씨를 수년 간 알고 지낸 바 그의 그런 행동들이 그 나름의 신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평안 씨가 하고 있는 펑크라는 장르는 형식이나 스타일보다 사상적, 신념적 태도를 중시하는 독특한 음악입니다. 펑크의 사상적, 신념적 태도란 아나키즘을 뜻하는데, 아나키즘은 일체의 규율과 권위, 관습을 배제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의 선택과 합의로써 사회를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이는 단순히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나 허무주의적 폭동 등으로 비쳐지는 대중적 인식과는 매우 다릅니다. 오늘날 펑크 아나키스트들은 서구사회 거의 모든 도시에서 만날 수 있으며 덴마크와 핀란드 등에서는 한 마을 전체가 펑크족들에 의해 국가의 행정 관리를 받지 아니하는 자치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펑크족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름의 작은 군락적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며, 그들의 생활 방식은 대개 도시농업, 채식, 자전거 타기(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음식과 의복 나누기, 반핵 운동, 젠더평등 운동, 동물권리 운동 등으로 매우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이평안 씨의 평소 태도나 삶의 모습 또한 그러합니다. 그의 삶은 나름의 자율적 질서를 따릅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급자족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자신이 다른 이의 지시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타인에게도 그렇게 대합니다. 그는 공연장 주변에 버려진 담배 꽁초나 쓰레기들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며, 동료 음악가가 실수로 파손한 기물을 변상하기 위해 자신의 두 달치 생활비를 내어놓은 사람입니다. 그는 선악도덕을 판단하기 이전에 전체의 조화를 신경 쓰지만, 그것도 타인이 지시하였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평안 씨는 어려서부터 홍대 근교와 서울 문래동 등에 자생적으로 나타한 한국 펑크족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후 호주 생활을 거치면서 그곳의 펑크 공동체에 오래 머물렀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나 삶의 태도에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작년 제주 4.3 70주년 추모 무대를 꾸리면서 4.3학살에 개입한 군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전에도 5.18 등에 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태도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관점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신앙심 깊은 종교가와 대화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평안이고 그의 형제의 이름이 복음인 데서 보여지듯, 독실한 기독교적 가정 환경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한편 국가 단위의 전쟁과 그에 수반되는 징병 제도는 펑크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제도적 규율로 간주되는 바,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펑크족들이 병역을 거부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강제적 군복무 제도가 남아있던 1980년대 초반 스페인에서 펑크족들은 병역거부자 단체인 ‘불복종 운동(Movimiento insumiso)’의 중요한 멤버로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스페인 사법기구가 비폭력적 신념을 매우 좁은 범위로 제한하여 이해하였으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등으로 주장하여 병역 거부 선언을 하거나 또는 아예 타국으로 망명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후 폴란드의 ‘자유와 평화(Wolność i Pokój)’라는 반군사주의 연대를 통해 펑크족들의 병역 거부가 촉발되었으며,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펑크 기타리스트인 잇샤이 베르거(Ishay Berger)의 병역 거부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서양 대중음악사의 한 챕터를 차지합니다.
많은 근대국가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오늘날, 하위문화는 종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형성한 하위문화가 젊은이들의 사상과 신념, 행동양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는 이미 오래 전 더글라스 켈너나 딕 헵디지 등의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주제로, 특히 성공회대학원 김태윤 씨의 논문 ‘서울의 구 공업지대로 전치한 급진적 청년 음악가들의 지역적 및 초지역적 하위문화 생산’이 이평안 씨가 주요 음악가로 활동하는 문래동 펑크 공동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펑크는 지난 수십 년간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너머 세계 수많은 도시들의 자발적 문화 네트워크를 형성한 주요 하위 문화입니다. 따라서, 그 영향에 따른 신념이 크게 반사회적이지 않은 한에서는, 이평안 씨의 경우를 종교적, 신앙적 양심에 준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