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징병제폐지를위한 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군대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면서 필자는 정말 많은 메일과 메세지를 받곤 한다. 물론 대부분 욕이나 ‘뭘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내용이다. 이런 메일들은 주로 군 복무를 경험한 예비역들이 보낸다. 주로 자신들도 원해서 군대에 갔다 온 것이 아니며, 전쟁은 자신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고, 군대는 살인집단이 아닌 국방의 의무의 일부라는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적혀있다. 이런 메일들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내가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예비역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면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예비역들은 자신들이 군대와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전을 경험한 예비역들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으며 과연 한국의 군대가 오롯이 국방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온다. 한국군은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이나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도 굉장히 많으며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랜 기간 권력의 몽둥이 역할을 자임해 왔다. 둘째로, 한국의 징병제는 전쟁 수행보다는 강제 합숙 교육을 통해 남성들에게 남성성을 주입하여 1등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그래서 여성들, 장애인들, 미필자들, 이민자들은 2등 시민으로 취급 받는다). 국방부는 그저 60만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 신검 기준을 오르락 내리락 조정하여 군대에 적합하지 않은 인원들을 강제로 입대시키고 있는데, 과연 이런 사람들과 작전 수행이 가능한가? 단순히 교육 내지는 국민개조 과정이라는 설명이 전쟁수행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피와 살점이 튀는 살육이며, 군대는 그 살육을 준비하기 위한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살인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집단이긴 하나, 그 자체가 살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자신들이 살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적합한 변론이 될 것이다. 군대의 본질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사건이 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이른바 “킬 팀” 사건으로 불린다(정식 명칭은 Maywand District Murders). 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 사건은 종종 발생하지만, 대부분 작전 중 오인에 의한 행동이거나 불합리한 명령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군들이 오로지 재미를 위해 민간인을 죽인 사건으로 밝혀져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리더인 캘빈 깁스 하사는 2011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 세 명의 주동자들 또한 징역 24년에서 5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에 연루된 애덤 윈필드 상병의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바로 “킬 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군대를 좋아하고 군인이 되고 싶었던 평범한 젊은이가 불합리한 과정에서 어떻게 살인 집단의 일원이 되어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군인은 어떻게 살인에 동조하게 되었나

애덤 윈필드 상병은 아버지도 해병대였기 때문에 군대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프간에 도착하고 나서, 소대원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소대원인 제레미 모얼락 상병(사건 주동인물, 후에 징역 24년 선고)은 자신의 지휘관이 한 말을 인용해 “아프간은 전사들의 낙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검증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고 진술한다. 전투는 “충분히 남자다운지, 총을 쏠 수 있는지, 살인 할 수 있는지, 생존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었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킬 팀>의 한 장면. 캘빈 깁스 하사의 다리에 새겨진 ‘킬마크’

윈필드 상병은 소대원들 중에서 이라크전에도 참전한 경력이 있는 노련한 군인인 캘빈 깁스 하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다리에 ‘킬마크'(과거 공군 전투기 옆에 그려져 있던, 격추한 적군기 숫자를 나타내는 그림)로서 해골 문신을 잔뜩 새긴 인물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가 부대원들을 데리고 민간인들에게 가혹행위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깁스 하사는 등록하지 않은 여분의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가지고 상황을 조작해 낸다. 민간인을 살해 한 후에 그 옆에 여분의 수류탄을 놓아두고 “기습 공격을 당해서 사살했다”라고 둘러대는 식이다. 이들은 시체를 훼손하고 그 옆에서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시체의 옷을 벗기고 눈과 입을 잡아 당겨서 웃는 얼굴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두고 윈필드 상병은 갈등에 빠진다. 그는 처음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렸고,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 답게 “지휘계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깁스 하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실제로 그는 굉장히 유능한 인원이었기 때문에 부대 내부에서도 높이 평가 받고 있었다. 윈필드 상병은 점점 소대 내에서 왕따 신세가 되어간다. 그의 아버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군 당국과 접촉했으나,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지휘관들 또한 어느 정도는 이러한 상황을 묵인했다는 정황이 있다. 그는 불합리한 상황에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적응해 간다.

깁스 하사의 행위는 도저히 용서받기 힘든 일이었다. 수색 정찰 중에 살해한 시체에서 손가락을 잘라 오고, 그 손가락 뼈로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소대원들 사이에서는 “똘끼가 좀 있지만 그래도 침착하고 유쾌한 사람” 정도로 취급 받았다. 결국 이들은 크고 작게 깁스 하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연루되었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갔다. 군대란 조직력으로 굴러가는 집단이다. 조직되지 않은 군인들은 그저 총을 든 군중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은 군대라는 이유로, 전쟁터였다는 이유로 조용히 묻힐 뻔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뜻밖의 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어느 날 소대원들 중 일부가 저스틴 스토너 일병의 방에서 대마초의 일종인 해시시를 피웠다. 스토너 일병은 “냄새 나니까 내 방에서 꺼지”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깁스 하사와 공모 하에 일부 소대원들이 스토너 일병을 밀고자 취급하여 구타한다. 스토너 일병은 당장 헌병 수사대에 신고했고,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일부 인원들의 방에서 인골과 신체 조직들이 발견된다.

군 당국과 미국의 대중은 경악했다. 각종 매체들은 용의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윈필드 상병은 애초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모로 정보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군 당국에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공익 제보자로 취급해 주길 바랬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살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3년형을 선고 받는다. 일단 상황을 인지한 직후 해당 내용을 상관에게 보고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당시 잠재적인 위험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이러한 결론이 나왔다. 왜냐하면 어쨌든 살인은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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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 팀>의 한 장면. 윈필드 상병은 캘빈 깁스 하사의 만행을 접하고 나름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결국 구조적인 벽에 막혀 동조자가 되어간다.

‘군인 되기’의 본질에 대한 질문

한국에서는 이들의 행동이 일종의 돌출 행동으로 평가 받거나, 모병제 이후 미국 병사들의 질적 저하에 따른 결과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어디선가 이미 보고 겪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한국군에서도 실력 있는 병사가 후임들을 구타하는 경우, 최대한 부대 내에서 해당 인원을 감싸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부대의 조직력부터 실무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해당 인원이 빠지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려고 해도 결국 군대라는 전체주의 시스템 하에서 이러한 노력은 부질없어지기 일쑤다. 과거의 고문관이 오늘의 가혹행위자가 되는 경우부터, 신병 때 깨어있던 사람이 고참이 되고 나서 부조리를 묵인하거나 이용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모병제로 인한 일부 인원들의 질적 저하로 인한 사건이라기에는 군대라는 조직의 본질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징병제 하의 베트남전에서도 비슷한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군대는 그 자체로 살인을 위한 집단이고, 이 살인이 국가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허용 될 때 그 효용성이 빛을 발하는 집단이다. 그저 이들의 살인은 그 당시에 국가 공동체가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 이들이 평소에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유능함을 평가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 번 교전을 겪고 나서야 신병들이 부대원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모얼락 상병의 진술은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의 말미에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 스토너 일병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입대 직후부터 밤으로 낮으로 훈련을 받는다. 살인을 위해서. 우리는 보병이고 보이는 대로 죽이는 게 우리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면 화를 내는가? 나는 공익제보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만약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둘러싼 미디어와 군 당국의 행동을 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미디어는 우리가 끔찍한 사람들이고 도살자들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는다. 군 당국이 뭐라 말하든, 우리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저 걸려든 사람들(Caughted ones)일 뿐이다.

흔히들 픽션에서는 아프간에 파병된 군인들을 거친 상황에 놓인 애국자들처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군대의 본질일 뿐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러한 일이 벌어질 위험성은 언제든 따라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