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정(타리)/퀴어활동가

 

 

이 세계는 여성이 병역거부 이슈를 자신의 이슈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데 성공한 편이다.

 

최성희의 저 문장으로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원문을 조금 수정하였다). 올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해서 제주에서 평화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세 명의 평화활동가들은 여성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여기에서 ‘여성’은 세 명이 밝히고 있듯이 지정된 여성으로서 병역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제외된 사람을 드러내는 말이며, 성별 이분법의 규범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조건 하에서 보호를 약속받은 사람을 뜻하며, 병역문제에 있어서 비당사자로 치부되기 때문에 질문할 자격이 박탈되어 왔던 사람을 드러낸다. 따라서 여성병역거부 선언은 ‘생물학적인 여성’이기에 차별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인종주의적 전제에 도전하며, 이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질서와 권력의 유지에 공모하게 되는 삶의 조건을 드러냄으로써 반군사주의 운동과 병역거부 운동의 지평을 확장한다.

 

‘선언은 질문이다’

다시 제목을 곱씹어본다. 세계의 성공을 말했으니, 비관적일 수도 있는 문장일텐데 오히려 여기에서 가장 큰 가능성과 ‘희망’을 느꼈다. 이 선언은 세상이 여성을 병역거부 이슈에서 제외해왔다고 평가하고, 그 평가를 출발로 삼았다. 이미 그 성공은 낡았고 이제 부서질 일만 남았다. 세 명의 평화활동가의 선언이 강력한 것은 분명히 제주에서 군사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기지에 맞서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활동가이자, 제주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군사기지 없는 제주에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삶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대에서 길러진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라는 질문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 질문은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군사기지는 왜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가?’ ‘군사주의는 어떻게 혐오와 폭력의 구조를 촘촘하게 만드는가?’를 질문한다. 질문은 여러 의도와 종류가 있겠지만 세 사람의 질문은 선언문에 담겼다는 의미에서 지향이 명확하다. 이들은 평화를 기만하지 않기 위해서 이 질문을 회피하지 말것을 요구한다. 선언문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정체성을 흔들기

왕유쉔은 “권력자들이 만든 정체성의 틀 안에 산다는 것은 군사주의와 함께 하는 승리자의 역사에서 살게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아픔을 나눌 수 없다면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 얼어버린 현상은 세대 이어가는 (역사의)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며 군사주의를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와 국경이 바뀌어도 계속 군사주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힘을 군사주의에 주게 되었지요. 그 힘은 우리가 양도 해주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안전함을 추구하는 방식도 지속적으로 군사주의와 국가안보를 의지하게 합니다.”라고 말한다. (대만 사람이 쓴 아름다운 한국어에 마음을 뺐겼다.) 제주에서 평화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입국 거부가 되었다가,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국 거부가 풀렸다가 하는 경험을 하는 양유웬은 안전을 위한다며 국가경계를 지키는 권력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온몸으로 겪었다고 썼다. 하지만 그 권력은 군사주의가 제공하는 보호 속에서 안착하려고 하는 ‘우리’가 양도했다는 점에서, 양도를 철회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변형시켜낼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할 수 있다.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경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군사주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신체의 감각에서 출발하는 여성병역거부 선언이 얼마나 근원적인 변화와 저항을 말하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전쟁과 국가폭력을 구분하면서 어떤 것을 국가폭력으로 지목하는 것이 오히려 전쟁을 국가정체성 안에서 해석하는 한계를 가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두고두고 고민해볼 일이다.)

나아가 이들은 정체성으로서 국민, 여성이라는 이름을 질문하고 세계시민과 평화시민의 책무를 통해서 징집의 당사자, 보호의 대상자, 저항의 당사자를 새롭게 써나간다. 주어진 자리를 거부하고 불온한 질문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비국민의 자리로 내몰리고 주민 자격을 박탈당했던 경험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되겠다는 선언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 실천으로서의 반군사주의 운동과 병역거부 선언

최성희는 “병역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유지와 재생산 체계에서 핵심적 기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병역거부 이슈는 본질적으로 여성들의 이슈이며, 여성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으로 여성병역거부 선언의 의미를 밝힌다. 또한 엄문희는 “모든 나의 정체성은 주류 권력으로부터 간단히 거부당했습니다. 단, 여성인 것만 빼놓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 묻기로 했습니다”라고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보호와 정상화된 모욕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 폭력의 구조는 여성이 전시에, 재난시에, 안보가 우선되는 상황에서 입는 폭력이 부수적인 피해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부수적 피해라는 프레임 자체가 이미 이 젠더 폭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구조이다.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성’이라는 기표는 이미 지정된 의미를 이탈하여 가장 큰 질문으로 되돌아 온다. 어떻게 “여성인 것만 빼고 모든 나의 정체성은 거부되는가”라는 질문은 전율을 일게 한다.

여성병역거부 선언은 어떤 힘을 가질까. 왕유쉔은 “군사기지는 군인들이 닫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함께 닫게 해야 하는 것이고, 군사기지 안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총을 내리라고 말하기 전에는 제가 먼저 총을 내려야 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제 손에 실제로 총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 폭력의 구조를 깨지 않은 이상 제가 바로 그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든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병역거부 선언으로 무기를 내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선언의 의미를 쓴다. 선언은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것, 공모하지 않겠다는 것, 기지밖에서 기지반대운동을 시작하겠다는 것, 국경을 넘어서 평화를 말하겠다는 것, 젠더를 가시화하면서 젠더이분법에 도전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엄문희가 남겨준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읽으며 나도 어디론가 내몰리는 감각을 가진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갈것인지를 제주보다 훨씬 북쪽에 가까운 서울이라는 나의 자리에서 재차 질문해보려고 한다. 병역거부의 문제를 나의 자리로 더 가까이 당길 수 있게 해준 세 분의 평화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리며. 또한 나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고  지지의 말을 보탤 수 있게 제안해주신 전쟁없는세상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