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석 (전쟁없는세상 회원)

 

 

죽어도 싼 테러리스트

흔히 혐오표현(hate speech)의 해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는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평화와 공존을 해치는 해악도 존재한다. 예컨대 “재일조선인은 나가라”라던가, “예맨 난민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등의 인종혐오표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표현은 또한 테러리즘이나 제노사이드나 인종학살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도 보고된다. “히틀러가 옳았다”거나 욱일기를 내거는 등의 전쟁범죄를 미화한다던지, “아우슈비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안부나 731부대는 날조된 것이다” 같이 전쟁범죄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역사부정표현 역시도 혐오표현에 해당된다.
혐오표현은 평화를 위협한다. 르완다내전에서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박멸해야 한다는 라디오 방송 이후 투치족 학살에도 영향을 주었고, 터키와 쿠르드족 노동자당 간의 군사적 대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쿠르드족과 터키의 군사분쟁이 일어나서 터키 군인들이 24명 사망한 뒤 며칠 뒤에 쿠르드족이 거주했던 도시 반Van에서 지진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지진을 가리켜서 “잘 죽었다”, “신의 경고이다”, “군인에 대한 복수”, “죽어도 싼 테러리스트”같은 트위터들이 폭증했다고 한다.

이처럼 혐오표현은 인종대립과 갈등, 타자에 대한 절멸을 부추김으로써 평화와 공존을 해치고 폭력와 학살을 부추기기도 한다. 인종뿐 아니라 “서방님한테 밥은 잘 챙겨주냐?” “동성애자들은 나대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 같은 여성혐오표현, 성소수자혐오표현도 마찬가지다. 성차별과 성소수자혐오를 부추기고, 혐오범죄를 선동하기도 한다.

 

“모든 무슬림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보내달라”

반대로 대항표현(counter speech)는 혐오표현을 논박하고 약화시키는 맞받아치기, 되받아쳐서 말하기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 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며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일침을 놓았던 스웨덴 청소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발언은 대표적인 대항표현이다.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을 향한 반이슬람 근본주의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 당시에도, “모든 무슬림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보내달라”며 총격 테러 이후 히잡을 쓰고 추모에 나선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행보 역시 대항표현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항표현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 연구자인 외자스랍 제이넵에 따르면,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군사분쟁과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가 “신의 징벌”이라는 혐오표현의 빈발 이후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구조하고 도우자”는 식의 반대 트윗, “죽어도 싸다”혐오자들을 비난하는 트윗도 같이 증가했다고 한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군사분쟁을 비난하는 트윗들 역시도 대항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트위터를 통해 지진 당시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돕는데도 트위터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 역시 혐오의 도구도 될 수 있지만, 연대와 공존의 도구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대항표현을 연구한 정치학자 캐서린 겔버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불평등을 지지하고 차별을 옹호하며 혐오를 드러내는 반면, 대항표현은 역으로 평등을 지지하고 차별반대를 옹호하며 역량강화를 드러낸다. 평등, 차별반대, 소수자들의 역량강화를 드러내는 모든 표현들은 대항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터키는 반인도적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하라”

평화와 공존을 부추기고 폭력에 단호히 맞서고자 하는 표현, 전쟁이나 테러리즘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표현, 전쟁범죄를 비난하는 표현들은 모두 차별과 불평등, 혐오를 약화시키고, 평등과 반차별, 역량강화를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대항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항표현은 개인이 그 자리에서 행할 수도 있겠지만,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보다 집단적으로 장기적으로 할 수도 있으며, 오프라인에서 할 수도 있지만 온라인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국가가 테러나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주는 것도 대항표현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나 평화수감자들의 소견서, 무기거래와 군산복합체에 반대하는 적극적 평화행동의 구호들 역시 대항표현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럴 것 같다. 이런 대항표현들은 차별과 불평등, 혐오와 적대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이에 맞서서 평등과 반차별, 평화와 공존이라는 다른 가치와 규범들을 내세운다.

터키 정부는 ‘평화의 샘’(?) 이라는 반인도적 군사행동으로 다시금 쿠르드족 자치 지역을 향한 공습을 시작했다. 작고 미미하지만 10월 21일에 ‘터키의 쿠르드 침공을 규탄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터키는 반인도적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하라”, “한국 정부는 터키로의 무기 수출 즉각 중단하라”라고 외쳤던 메시지 역시 다른 목소리를 통해 다른 가치와 다른 규범,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평화주의자들이 해왔던 일들 중 일부였던 것이다.

대항표현

평화활동가들이 외쳐왔던 구호와 메세지들 역시 혐오와 폭력에 맞서는 대항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의 쿠르드 침공 규탄 한국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사진.

보통 혐오표현의 효과는 (1) 사적인 자유를 제한하도록 만들고, (2) 피해자로 하여금 차별적인 메시지를 내면화하게 만들며, (3)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4) 소수자 집단을 종속시키는데 복무하고, (5) 침묵시키게끔 만든다고 한다. 반대로 대항표현은 (1) 혐오발화자의 주장을 논박하고, (2) 차별에 반대하며, (3) 평등을 지지하고, (4) 피해자들의 표현 역량을 강화하기도 하고, (5) 마지막으로 혐오자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진정으로 설득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회적인 압력을 가하여 처신에 주의하게끔 교화시키는 힘도 있다.

혐오표현은 물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차별을 선동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법으로 억제하여 금지할 경우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검열과 사상검증, 독재 권력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대항표현의 활성화는 그런 우려가 없다. 사법부의 법적 다툼으로 운동이 축소되지도 않으면서, 근본적으로 침묵 당해왔던 소수자들이 직접 말대꾸함으로써 혐오표현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침묵시키는 해악을 상쇄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언어철학자 린 티렐Lynn Tirell의 말대로, 언어는 세계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세계를 변화시키도 한다. 평등과 반차별의 메시지를 담은 대항표현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