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전쟁없는세상 주:
김수정 변호사님은 병역거부운동 초창기부터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해 온 인권변호사입니다. 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형사정책연구소식 2019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1. 맨부커 상 수상자로 유명한 소설가 한강은 어린 시절 읽었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통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이 자신의 내면에서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고백했다. 판타지 세계 낭기열라에서 죽음과 부활을 맞이한 소년들의 이야기가 5. 18. 광주시민항쟁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우리나라에서는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로 더 알려진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1983년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스웨덴에서 1960년대에 발표된 소설이다.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판타지가 펼쳐지는 세계는 형제가 죽은 사후의 세계다. 형 요나탄과 동생 칼은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고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사후 세계에서 재회하여 살아가지만, 실은 낭기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빌어 사람들을 지배하는 곳이다. 형 요나탄은 낭기열라에서 사자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가장 용감하게 독재에 맞선다. 낭기열라 사람들은 독재자 무리를 물리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하게 되는데, 사자왕 요나탄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며 칼을 들지 않는다. 요나탄은 단지 말을 타고 깃발을 들 뿐이지만, 종래에는 스스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수행한다. 칼을 들지 않겠다고 하는 장면은 그저 몇 줄 나올 뿐이고, 어린시절에는 줄거리를 쫓느라 책장을 넘기기에 바빴던 탓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새삼스레 이 장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역거부자들을 이십년 가까이 변론해온 내게 이 장면은 매우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2. 2001년 한 일간지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재가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나는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변론해왔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정하고 있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헌법재판소 6. 28. 선고 2015 헌바73, 2016헌바 360 등 결정)을 하였고, 대법원은 같은 해 11월 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위반 사건에서 무죄 판결(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 판결)을 하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변론을 시작한 이후 18년만이었다. 나는 위 헌법재판소 사건의 대리인으로서 2015년 4월에 진행된 공개변론에도 직접 참여하였었다. 결정문과 판결문에 새겨진 주옥같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18년 동안 수많은 사건을 변론하면서 나와 동료들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변론하고 서면으로 작성하였던 그 문장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보편타당하므로 보호하여야 한다거나 보편타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다수 국민의 신념과 정의감에 배치되지만 그 양심이 헌법상 양심으로 보호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를 보호하고 관용하자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권리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1939년 일제 강점기 여호와의 증인이 첫 양심적병역거부자(일명 등대사 사건)로 처벌된 이래 지금까지 80여 년 동안 1만 9천여 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생명을 잃기도 했다. 판결문에 새겨진 저 문장을 얻기 위해.
3. 헌법재판소는 위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19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여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주문하였다(국회는 올해 말까지 법 개정을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기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많은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었기에 솔직히 법 개정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처음 병역거부자의 존재가 알려졌을 당시 부정적 여론이 매우 거세어 변호인인 나한테까지 인신공격이 있을 정도였고, 법정에서 판사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어 총을 들라고 한다거나, 부모가 시켰냐며 부모를 일으켜 세우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 이외의 평화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의 등장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병역거부를 평화의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 있을 무렵에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이상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기도 하는 등 사회적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된 상황 속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과 대법원 무죄 판결이 있었기에 국제적 인권 기준에 맞는 입법에의 기대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법 개정 작업이 시작되고 보니 벽은 생각보다 높고도 두터웠다. 국방부가 법 개정을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다시 18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던, ‘병역거부자들은 양심적이고, 군대가는 사람은 비양심적이라는 것이냐’라는 질문, 병사들이 한겨울에 계곡물 깨서 목욕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고생하는데 병역거부자들에게는 극한의 고역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이 그것이다. 그것도 저잣거리의 이야기가 아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토론회 자리에서 말이다.
징집된 병사와의 형평성을 위해 병역거부자들의 복무에 가중치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예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병역복무 기간에서 가중치를 두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점차 차이를 줄여가는 방식으로 시행하였다.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민의 인식을 고려해보면 시행초기에는 다른 나라의 예보다 좀 더 가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다시 양심 비양심 논쟁이 반복되고, 그저 반감의 표현일 뿐인, 십수년 전에나 있을 법한 군대의 열악한 상황(겨울에 얼음 깨서 목욕을 하다니 이게 사실이면 병사들 대우에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 항의해야 할 일 아닌가)을 이야기하며 병사들이 고생하니 병역거부자들은 지뢰 제거 등의 위험한 고역을 수행해야한다는 식의 셈법을 들고 나오는 데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판결문에 새겨진 이런 소중한 문장들이 눈앞의 현실에서 희미해져 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기약도 없이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던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대체복무가 지뢰 제거 정도의 위험한 일은 되어야 현역병과의 형평성에 부합하는 것일까.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을 병사들의 인권에 대한 국방부의 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 병사들의 처우도 더 좋아져야 한다는, 군복무자와 대체복무자 사이의 더 좋아지기 경쟁으로 인식을 전환해볼 수는 없는 것인가.
결국 국방부가 최종적으로 마련한 안은, 교도소 내(합숙)에서 현역병의 두 배를 복무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간 병역거부자들은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는데, 입법 예고된 국방부의 최종안에 따르면 1년 6개월의 실형이, 대체복무라는 이름으로 3년으로 늘어나는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3년이라는 장기간 복무는 그렇다 해도, 다양한 특기와 배경을(의사, 과학자 등 다양한 특기의 병역거부자를 변론했었다) 가진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역에 대한 아무런 선택지도 주지 않고 교소도 수감에서 교도소 복무로만 변경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양한 특기와 배경을 가진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특기에 맞춰 복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의 대체복무제도에서도 교도소라는 단일한 기관에서 대체복무를 하게 하는 예는 찾아보지 못했다.
국방부는 법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이 비양심, 비신념적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를 고려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에 대해, 보이지 않는 양심까지 보장하는 인권의 확장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해나갈 수는 없었던 것인지,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라고 당당하게 설득해갈 수는 없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4.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중단되었던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속속 재개되었다. 많은 경우 무죄가 선고되고 있지만, 법정에서 양심의 판단이 엄격해지면서 드물게 유죄가 선고되기도 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 항쟁에 참여했다면 총을 들지 않았겠느냐는 류의 질문들이 법정에 등장하고 있다. 독재의 총탄에 시민이 위협받고 있는 현장이라면 어쩔 수 없이 총을 들지도 모르겠다는 답변은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한다. 양심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면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이다. 이러한 질문은 처음 병역거부 변론을 시작하였을 때 ‘너의 부모 형제가 총칼의 위협 앞에 놓이면 어찌 할 것이냐’는 판사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어찌 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자신의 몸을 던져서 막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것을 지켜봤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라는 것은 양심을 시험하는 질문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설혹 병역거부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총칼을 들 수 없다고 대답한다 한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어찌 행동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런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총칼을 들게 된다면 그의 양심은 과연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아닌 것인가. 폭력에 대한 거부, 생명에 대한 종교적 양심, 평화에 대한 신념이 마주하는 현실의 폭력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대면하게 된 급박한 폭력 앞에서 목숨을 던져 신념을 지킬 수 있을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법정에서 끝까지 총칼을 들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말로서 그 양심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 것이다. 복잡다난한 현실 속에서 양심을 지키고 살기 위하여 애쓰고 또 애쓰는 것, 감옥에 투옥되고, 전과자로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때로는 대를 이어 이어져 온 것, 그것이 내가 본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었다.
5. 소설가 한강은 어린 시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그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성인이 되어 『소년이 온다』를 썼다.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117쪽)
입법자들과 검사와, 판사와 정부의 높은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스스로 삶과 양심에 대해 어떤 성찰 속에서 인간의 양심을 입법하고 판단하고 있는가.